참전용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를 소개하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한국의 최향숙입니다.

몇 년 전이었습니다. 제 아들이 워싱턴 D.C.에서 상을 받으러 오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P.N.A.S에 아들의 연구논문이 실렸는데, 그 논문이 분야에서 1등으로 선정되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주는 코자렐리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제 남편과 저는 너무나 기뻐서 아들도 보고 수상식에도 참석할 겸, 워싱턴 D.C.에 가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예전에 한번 D.C.에 가본 적은 있습니다. 그것은 약 25년 전, 제 아들이 5세쯤 되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방문한 것이었고, 그때는 D.C. 지역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시상식이 끝난 다음 날, 우리는 아들이 보스턴 하버드대학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들, 며느리를 본 것도 좋았고, 아들과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4월의 봄이었지만 날씨는 벌써 덥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저곳에 꽃이 만발한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내셔널 몰은 정말 엄청나게 넓었습니다. 바람이 솔솔 불고, 주변의 나무에 핀 꽃향기가 기분을 참 맑게 해주었습니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관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관에 있는 조각상과 비석. 비석에는 ‘One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aver met’(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었던 한 나라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었던 사람들을 지켜내라는 나라의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 딸들을 기립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The U.S. National Archives
우리는 링컨 대통령 기념관에 제일 먼저 갔습니다. 그 기념관을 다시 보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저는 그 위대한 전 대통령의 상과 그 얼굴의 표정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두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내셔널 몰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군인들의 동상을 둘러보고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한 16개국의 이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나라가 군대와 위생병들을 남한의 자유를 위해 싸우도록 보내준 것에 대해 아주 감사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한국전쟁에 대해서 배웠고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군대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전쟁기념관에 직접 와보니 그분들께서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해 주셨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변을 돌아보면서, 저는 한국전쟁 중에 얼마나 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분들의 사랑과 그분들의 희생의 죽음 때문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곧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울먹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그런 감동이 들었지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러 왔다는 것, 그리고 싸우러 와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놀라운 감동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한국전쟁 후에 자랐습니다. 만약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우리나라를 돕는 손길을 펴지 않았다면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그들의 군인들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저는 태어났어도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Freedom is not free!)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수십 년 동안 누려온 그 자유는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가족들이 누려온 그 자유는 다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누려온 그 모든 자유는 다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워싱턴 D.C. 한국전쟁기념관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위키미디어
내 조국 대한민국의 그 기막힌 상황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유엔의 그 모든 나라가 지도자들로 하여금 군대를 대한민국에 보내도록 결정하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위해서 싸우러 오겠다는 결정을 내린 그 모든 군인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크게 성장한 것은 한국전쟁 중에 우리를 위해서 싸우러 오신 그분들 때문입니다. 남한이 자유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이 우리를 도우러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누린 자유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저는 제가 누린 언어의 자유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저는 제가 누린 쓰기의 자유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저는 제가 누린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의 자유에 대해 여러분 모두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자유가 없었다면, 저의 어머니께서는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언니들도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남편도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친척들도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모든 군대들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러 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북한에게 졌다면 대한민국은 오늘처럼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공산주의 지배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저에게도, 또 모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도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들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한국전쟁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신 모든 분의 가족들과 자녀들, 그리고 친척분들께 너무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와 주신 모든 분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신 모든 분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에게 자유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를 올 수 있는 자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아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특별한 상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녀가 과학 분야에서 앞으로 인류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해주신 일에 대해 제가 어떻게 충분한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희를 위해서 싸우러 와주신 모든 분과 사랑하는 사람을 한국전쟁 중에 잃으신 모든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특별한 축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인사를 드릴 기회를 못 가졌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향숙(한국인, 미국인, 그리고 기독교인) 드림

최향숙 교장
▲최향숙 교장
(이 글은 영어로 써서 참전용사 여러분들께 보냈는데 참전용사 60주년 기념 책자 첫 페이지에 글이 실려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최향숙 교장=숙명여대 학사 졸업, 오하이오주 주립대학 수학 후 CCC 국제본부 신학교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CCC 숙대 간사를 거쳐 CCC 국제본부에서 25년간 근무했으며 현 동일프로이데아카데미 초등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석원 목사(국제기도공동체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의 사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