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교회가 처음 파송한 선교사인 최찬영 선교사가 10월 19일 오후 6시 50분(미국 시간, 한국 시간 20일 오전 10시 50분) 미국 LA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향년 96세.
최찬영 선교사는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만주 연길로 이주했다. 1945년 간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을 맞이한 후 서울에 왔다. 남산에 있던 장로회신학교에 재학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여 공산군에 여러 번 잡혀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9.28 수복 후 미군 통신정보대 통역관, 육군 군목으로 활동했고, 1954년 독립운동가로 순교한 김예진 목사의 딸인 김광명 사모와 결혼했다.
최찬영 선교사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시절인 1955년 4월 영락교회의 파송을 받고 1956년 6월 태국에 첫발을 디딘 뒤 37년간 섬기다 1992년 2월 65세에 은퇴했다.
최 선교사는 처음 몇 달간 태국에서 BIT신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방콕 제2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고, 방콕 기독교병원 원목, 태국성서공회 총무로 섬겼다. 특히 1962년 6월 아시아인 최초로 태국·라오스 성서공회 총무로 취임했고, 1978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로 취임해 1992년까지 성서공회를 통해 성경 번역, 인쇄, 반포에 주력했다.
최 선교사는 1983년 중국을 처음 방문했고, 1985년 1월 중국교회 지도자와 만나 성경 10만 부를 찍을 성경 용지 100톤을 요청받고 지원을 도왔다. 이후 애덕기금회를 설립해 1987년 12월 난징에 최신식 인쇄공장을 세워 중국 본토에서 성경을 발행했다. 이 인쇄공장에서는 지금까지 1억 권이 넘는 다양한 언어의 성경이 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교사는 은퇴 후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5년간 교수로 활동하고, 선교단체 GEDA(Global Evangelization & Development Agency) 인터내셔널 총재 등으로 섬겼다.
최찬영 선교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세계 각국의 후배 선교사들은 “이젠 십자가를 훌훌 떨어버리시고 주님 품 안에서 안식하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최찬영 선교사님의 천국 입성 소식을 듣고 함께 애도하며 유가족들에게 하늘 위로를 전합니다” “유족들과 선교 동역자님들에게 주의 위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