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종교 경계하지만 무슬림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주의 뜻
무슬림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복음 전할 기회 영영 놓쳐
무슬림 게토화 만들어진 지금의 유럽 사회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게토 만들지 않도록 주 사랑으로 품고 복음 전하고 함께 살아야
오늘의 중동 이슬람권을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이념과 종교적 갈등에 따른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종종 무자비한 전쟁으로 이어지며, 이로 인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난민의 발생은 셀 수 없는 끔찍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뒤따른다. 어떤 지역에서는 난민 문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문제를 초래하여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치 동전의 양면이 있는 것처럼, 난민들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소식 뒤에는 선교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지역에서 난민들의 이동으로 선교의 문이 열리는 계기가 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부흥의 소식도 계속 들려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입국한 3백여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에 대해 그들이 전부 무슬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슬람은 지난 1400년 동안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안내한 무서운 종교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틀림없이 이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하지만, 이슬람교를 믿고 살아가는 무슬림 대부분은 자신들이 왜 이슬람 종교를 가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며, 그들이 그렇게 성스럽게 여기는 쿠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슬람의 사회와 문화 안에 갇혀서 오직 이슬람 율법이 말하는 고정잣대와 편견의 틀 안에서만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물론 테러를 일삼는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은 항상 조심해야 하겠지만, 무섭고 위험하다고 무슬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보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딤후 4:2)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또 선교로의 지상대명령(마 28:18~20)을 왜곡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지만,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무슬림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하며, 주님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 틀림없이 무섭고 혐오스러운 일부 무슬림이 존재하지만, 지금 국내로 들어와서 우리의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저들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만약 무슬림을 위험하다고 경계하고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 것이며, 그것은 틀림없이 주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 안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무슬림들을 향해서 교회든 교회가 아니든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럽 안에서 무슬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소위 ‘게토’ 현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 우리나라도 유럽 사회처럼 무슬림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상하면서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무슬림 게토화는 사실 유럽사람들이 이같이 만든 측면도 있다. 유럽 내 무슬림 집단화로 인한 사회 불안 조성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그 땅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멀리하고 다가가기를 거부한 유럽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 문화와 사회로 이루어진 유럽인들이 여러 이유로 그 땅을 밟은 무슬림들을 따뜻한 이웃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 대했더라면, 결코 무슬림의 게토는 그 땅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보이는 무슬림들을 피하여 지나갔고, 다가가지 않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저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었고, 생존본능 속에서 그들 자체의 게토를 만들어 문을 닫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만약 유럽의 무슬림 게토 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국내에 들어와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 근로자, 또는 난민으로서의 무슬림들을 냉대와 멸시로 멀리하며, 저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갖기를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일에 우리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부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슬림 게토화로 만들어진 지금의 유럽 사회를 보면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쌍히 여기는’ 이웃 사랑으로 다가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관한 결단 앞에 서 있다. 국내로 이미 들어온 저들을 향해 편견과 오해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으로 저들을 피하고만 있다가 유럽 사회의 무슬림 게토를 다시 국내에서 재현시킬 것인지, 아니면 저들 곁으로 다가가서 저들이 자신들의 게토를 만들지 않도록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함께 살아가면서 삶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아니었다. 저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이웃 사랑으로 다가가기를 포기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더 두려워해야 했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 강퍅한 마음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지 않을까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슬림 전도의 벽이 너무 두껍고 문이 굳게 닫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정말 두꺼웠던 것은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며 다가가기를 포기한 우리의 마음이 굳게 닫힌 것이었고, 훨씬 더 두꺼웠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신다(딤후 1:7). 그러니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웃 사랑으로 저들을 대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본분이요, 사명이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글을 마치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경계해야 하지만, 국내로 들어온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향한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온 주님도 틀림없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것이 맞느냐 저것이 맞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언제 다시 그들의 땅으로 갈지 모르는 무슬림 이웃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이 일에는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로운 접근 방법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종일 교수=예장통합 측 목사로, 현재 KWMA 난민선교위원회 코디네이터와 국내 초교파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로 알려진 M. NET KOREA(일명 열무김치)의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중동 이슬람권에서 20년 가까이 체류한 후 귀국 후에는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중동연구원 교수로 줄곧 재직하면서 중동학, 중동선교학, 이슬람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국내 유일한 선교 저널인 『전방개척선교』 편집인과 『선교타임즈』 편집위원 등으로 중동과 이슬람 관련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