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정진호 교수가 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에서 강의하고 있다. ⓒ선교통일한국협의회
"역사를 이해하면 미래가 보입니다. 통일 코리아를 위한 화해와 상생이 가능하려면 분열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진호 교수(전 평양과기대 설립부총장, 한동대 객원교수)는 "우리가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 '통일강국'을 원한다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기 원하는지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야 한다"며 "과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이 세우고 싶어 했던 나라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평등과 자유, 평화의 나라였다.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워지는 나라였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에서 '화해와 상생, 하나를 위한 평화의 길'에 대해 주제강연을 한 정 교수는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근대사 150년에서 우리가 겪은 5대 비극과 트라우마로 △식민 △분단 △전쟁 △독재,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이산(전 세계 750만 디아스포라)을 소개했다. 정 교수는 "성경은 죄와 불순종으로 흩어졌다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라며 "디아스포라는 '씨를 뿌리다'는 의미로, 농부는 마지막 때 수확을 염두에 두고 씨를 뿌린다. 코리안 엑소더스를 만드신 데에도 그 안에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지막 때 우리는 갈가리 찢겼던 열방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한몸(예하드 바싸르)을 이뤄 샬롬을 이루는 그때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오늘날 우리나라와 민족이 직면한 분단과 분열의 9가지 뿌리로 ①성리학과 양명학(이념, 당파적 갈등) ②수구와 진보 세력 간 다툼(기득권 갈등) ③늙은 보수와 젊은 개혁자의 다툼(세대 간 갈등) ④사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주체의식의 갈등) ⑤기호지방과 서북지방의 갈등(지역 갈등) ⑥독립운동 방식의 대립(방법론 갈등) ⑦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사상 갈등) ⑧기독교 개인복음과 사회복음의 분리(복음의 갈등) ⑨외세가 만든 분열 정책(일제 잔재와 냉전의 결과)을 소개했다.

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선교지 분할정책으로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담당하게 된 캐나다 선교사들은 북간도, 연해주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 교회, 학교 등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 이들은 조선의 사회,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는 일제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고 조선 사회와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교통일한국협의회
이 중 특별히 기독교라는 한 뿌리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가지 열매가 나오고, 개인복음과 사회복음이 분리된 이유를 한국 근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당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모든 외국인 선교사를 불러 모아 '더 이상 조선의 사회,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말 것' '물리적으로는 우리가 다스릴 것이니, 정신적으로만 다스릴 것'을 엄명했다"며 "일본과 깊은 동맹관계에 있었던 미국 선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당시 숭실중학교, 평양신학교와 수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대부분 예수복음, 개인복음 중심으로 축소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선교지 분할정책으로 함경남북도를 맡았고, 북간도, 연해주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던 캐나다 선교사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정 교수는 "당시 캐나다는 신흥독립국이었고, 전혀 (일제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캐나다 선교사들은 3.1운동 이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과 독립운동을 같이 했다"며 "캐나다 출신 그리어슨 선교사가 세운 북간도의 은진중학교 출신들(송창근 목사, 김재준 목사, 강원용 목사,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안병무 교수, 이상철 목사 등)은 근대사의 진보적 인물들이며, 한신대학을 만들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인물들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 선교사들은 미국 선교사들에 비해 수적으로는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선 사회와 조선인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게 컸다"고 평가했다.

미국인 선교사 중에도 스크랜튼 선교사는 을사늑약 이후 일체 사회 활동을 제약받자, 당시 감리교 감독과 충돌을 일으켜 결국 성공회로 교단을 바꾸었다. 정 교수는 "스크랜튼 선교사가 세운 감리교 상동교회에서도 근대사의 민족운동,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전덕기 목사 등이 있다"며 "전덕기 목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지하독립운동단체가 바로 '신민회'이며, 이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일본이 '105인 사건'을 일으키는데 관련된 대부분 독립운동가가 기독교인이었다"고 말했다. 곧, 을사늑약 이후 한쪽에서는 예수구원, 개인구원으로 평양대부흥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교회 부흥이 일어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신민회를 중심으로 사회구원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핍박에 대부분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정진호 교수는 "결국 교회를 일으켜 복음을 보존하고자 했던, 엄청난 선한 영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라는 시대를 통과하면서 복음이 내면화되면서 예수복음으로 축약,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성경의 기초 위에 은혜와 진리가 함께 선포돼야 할 복음이 역사 속에서 갈라지는 안타까운 결과가 지금도 한국 기독교에서 보수와 진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선배들이 역할분담을 했다면, 이제는 다시 합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정진호 교수가 2020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에서 강의하고 있다. ⓒ선교통일한국협의회
한편, 냉전 프레임이 구축되던 시기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증오와 분노 △죽음의 공포 △이데올로기의 광란 △전쟁 재발의 두려움 △그라운드제로 상실감 △이산가족의 슬픔 △또다시 분단의 고통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이 가운데 70년의 긴 세월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오늘날은 신냉전 체제를 맞이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큰 변수로 등장했다. 정 교수는 "저는 코로나19를 '게임체인저'라고 본다"며 "2016년 '신냉전과 미중 패권전쟁이 개시'되고, 2017년 '남쪽의 촛불혁명과 전쟁위기' 및 '북쪽의 핵무력 완성 선언', 2018년 '남북, 북미 회담 성사', 2019년 '북미회담 결렬, 양극화 가속' 이후 2020년 동아시아 세력균형의 새 판을 짜야 하는 이 순간에 코로나19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세기 냉전은 핵을 통한 냉전이었다면 21세기 냉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빅데이터를 통해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며 "이 가운데 한국이 빅데이터와 AI기술, IT 인프라로 코로나 대응에 성공을 거두는 모습은 서구세계에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분열과 전쟁, 분단의 역사를 뛰어넘어 이제 하나 된 '그레이트 코리아'로 나아가려면 기독교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정진호 교수는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해 기존의 매듭을 풀려면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역사적 진실 앞에 바로 서며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좌우진영이 상대방의 공로를 인정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이전 세대의 허물을 덮어주며 △다음 세대의 화합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며 "사회복음과 개인복음이 만나는 평등과 자유를 가지고, 화평(샬롬)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둘로 하나를 만들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