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겨우내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마른 가지가 초록 이파리로 덮이고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천연색 향연이 펼쳐진다. 약동하는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낸 교회들에도 새 생명의 기쁜 소식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때다. 용인 남부 끝자락 농촌지역에 위치한 송전교회는 전도와 양육을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진행하며 헌신된 평신도 리더들을 일꾼으로 세워내 한국교회 성장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다. 교회마다 지역 특색과 주변 상황, 교인 현황, 교회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교회성장을 위한 보편적인 원리를 성실하게 실천하면서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 한국교회에 도전과 희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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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권준호 송전교회 목사의 삶은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에 집중돼
 있었다. 권 목사는 “안정적 목회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고 싶었다”며
 전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진=송경호 기자


지난 20일 용인 처인구 이동면에서 차로 2시간 반가량을 달려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크리스천투데이 사옥을 방문한 권준호 목사와의 인터뷰는 오전 9시 40분쯤부터 1시간 반 동안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매주 목요일마다 교회 인근 지역 어르신 200여 명이 모이는 송전노인대학에서 점심시간 후 인사를 하기 위해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바쁘게 자리를 옮기는 권 목사를 보며 목자다운 목자라고 생각했다. 몇 차례 일정 조율로 인터뷰가 어렵사리 성사된 이유도 곧 풀렸다.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먹이고 치는 일에 초점을 맞춰 온 힘과 시간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 이동 시간이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한국교회의 모델로서 전도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권 목사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한 해 세례 인원 100명을 이루면, 모든 노하우를 한 권의 책에 담아 한국교회에 나눠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권준호 목사와 송전교회 성도들은 모든 상황이 준비되고 갖춰졌기 때문에 전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먼저는 담임목사의 마음 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과 전도에 대한 강한 신념, 의지, 실천력이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환경도 뛰어넘고 평신도를 주축으로 전 성도가 ‘전도하는 교회’를 일궈낼 수 있었다.

주변 상황이 전도의 걸림돌 되지 못해

“전도, 어쨌든 쉽지 않았습니다.”

권준호 목사는 지난 14년의 목회 여정을 이런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그러나 권 목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느낀 점은, 여느 교회 리더와 다르게 그는 어려워도 뜻을 굽히지 않고 의지를 세워 계속 길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때그때 목회와 전도의 멘토들을 보내주셔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도록 도우셨고, 지금의 탄탄한 전도, 양육 시스템을 갖추게 하셨다.

2002년 총신대 신대원 시절 송전교회 부교역자로 부임하여 2년 반 동안 중고등부 부흥을 이끈 그는 2004년 34세의 나이로 담임목사가 되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나 부임 당시에는 교회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다. 농촌마을인 만큼 주민도 적었고, 191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교회로 나름의 문화와 틀이 자리 잡혀 있었다. 목회 초년생인 그에게는 지역 상황도, 교회 상황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세아연합신학대(ACTS) 1학년 시절 성령을 체험하면서 뜨거운 전도 열정을 갖게 된 권 목사는 첫 목회지에서도 전도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제겐 전도 기술도 없고, 방법도 없고, 마인드만 있었는데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고구마 전도법 책을 보고 ‘그냥 나가서 찌르며’ 시작한 것이 송전교회에 부임한 그의 전도의 첫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21세기목회연구소(소장 김두현 목사)를 만나면서 전도와 목회에 큰 전환을 맞이했다. 3년간 매주 빠지지 않고 연구소를 다니며 목회 시스템을 배웠고, 열댓 명의 교회 전문전도팀 한 기수를 전도훈련프로그램에 보내 전도팀의 체계도 잡았다. 약 10년간은 전문전도팀 70명을 중심으로 전도와 새신자 등록에 집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열악한 농촌지역의 100년 넘은 교회에서 새신자 등록이 1년에 2백 명이 넘어가니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찾아왔다.

“그때까지도 저는 전도는 영혼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록이 안 되면 자꾸 침체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주일에 정말 열심히 해야 새신자 등록이 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전도의 원칙도, 질서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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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전도 기술도 없고, 방법도 없고, 마인드만 있었는데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권준호 송전교회 목사가 영혼 구원을 향한 간절한 열망과 이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강한 실천력으로 일단 전도를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목회와 전도의 멘토들을 만나게
 하셔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셨다.
사진=송경호 기자

“전도의 마지막은 일꾼을 세우는 것”

‘전도 특공대’로 세운 전문전도팀에 소속돼 있지만, 전도를 빠지고 싶을 때 빠지고 하기 싫을 때 나오지 않는 이들로 인해 열심히 하는 성도들이 지치는 것을 보면서 2014년, 그는 전도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책과 자료들을 공부하고 멘토들의 조언을 구하며 그가 내린 전도의 재정의는 ‘전도는 등록시키는 것 아니라, 생명을 살려서 그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었다. 당장 몇 명을 전도하여 몇 명 등록시켰느냐는 ‘숫자’가 아닌, 전도의 마지막인 ‘일꾼’을 세우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또 전문전도팀 중심의 전도가 아니라, 전 교인이 전도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겠다고 결단했다. 이를 위해 당시 100개의 구역 개편부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반발도 있었고, 성도들 안에 있던 기존의 셀과 구역의 개념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았지만, 눈물로 감행했다. 성경적 개념의 셀과 구역은 생명을 살려 전도하고 양육하고 제자 삼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교회돌봄연구소 김종석 소장을 초청하여 두 차례 성경적 셀과 구역 개념에 대해 성도들에게 알리며 토양작업을 했고, 또 직접 눈물의 설교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저는 전문전도팀만 데리고도 전도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전 성도가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제가 처음 2년은 전도를 했으나, 나머지 8년은 바쁘다는 이유로 전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일주일에 하루 전도하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전도하는 대신 장로, 권사님들도 전도하셔야 합니다.”

뜻을 잘못 전달했다가는 불만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2달간 구역마다 인터뷰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계속 진심을 전했다. “저는 주님 앞에서 불살라 없어지거나 닳아서 없어져서 천국에 가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냥 평안한 목회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정적 목회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런 목회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등록 숫자나 출석 숫자에 집중하는 교회가 아니라 생명이 변화되어서 세례를 받고, 그 사람이 훈련받아 리더나 핵심리더, 예비리더가 되는 파송 개념으로 전도하고 싶습니다.”

구역마다 3명의 리더를 1명으로 줄이고, 2015년 1월 1일 구역 리더들을 위한 첫 파송식을 열었다. 구역장, 곧 지금의 셀리더 중심의 전도하는 교회로 체계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셀리더가 되는 조건은 까다로웠다. 무단 3회, 연 5회 셀리더 모임에 빠지면 셀리더를 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물론 셀리더 모임에는 권준호 목사가 직접 참여한다. 또 셀마다 전도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 지역을 4순위까지 선택하게 하여 주 7일 지역사회를 향한 노방전도가 끊이지 않게 했다.

기존의 ‘관계전도’뿐 아니라, 절대 쉽지 않은 ‘노방전도’를 포기하지 않은 3가지 이유는 한국NCD의 설명대로 ‘영적전쟁 선포’ ‘축복 선포’ ‘교회 홍보’ 때문이었다. 대신 이전에는 교회로 사람들을 인도하면 성도들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이젠 전도를 나가면 무조건 달란트를 주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송전교회 달란트 축제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며, 전도 잡지, 전도 물품을 관리하는 마트도 평신도 당직제로 운영하고 있다. 전 성도가 전도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금은 매월 전도잡지만 1천 부, 전도지까지 포함하면 3~4천 개가 뿌려지고 있다.(계속)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