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묘기 세계 챔피언’, ‘한국 프리스타일 축구의 선구자’,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2, 모겐족의 월드컵> 실제 모델’, ‘인도차이나의 축구 전도사’, ‘희망 전도사’. 강성민 태국 선교사를 수식하는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두 인생을 살았다. 가난했지만 축구 묘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25세 때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돈과 명예를 거머쥐던 인생의 절정, 그는 ‘한 분’을 만난 후 전환점을 맞았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었다. 과거 25년을 ‘세상의 부와 명예’를 위해 축구 했다면 이후 26년은 ‘복음’을 위해 축구 했다는 강성민 선교사를 영등포장로교회에서 만났다.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 쌍꺼풀 없는 예리한 눈을 가진 강한 인상 같으면서도, 웃을 때는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미소를 가진 그였다. 자신만큼이나 축구를 사랑하는 태국 아이들을 이야기할 때면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영등포장로교회 김무길 장로도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다.
묘기 챔피언에서 희망 전하는 축구 선교사가 되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여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워온 강 선교사(사진)는 축구 명문 영등포공고 시절 선수로 뽑히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개인기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헤딩 등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재주를 부리는 기술)을 연습하여 1980년 2월 지금의 ‘스타킹’과 같은 TV 프로그램인 묘기대행진에 출연, 장시간 공을 머리에 올려놓는 장기를 보여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후 대통령배 대회(1983년), 서울아시안게임(1986년), 서울올림픽(1988년) 등에서 개인기 시범으로 예술축구 스타가 된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2년간 머물며 세계 묘기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993년 1월 할렐루야축구단의 전신인 이랜드축구팀과 함께 태국을 처음 방문해 축구묘기를 보여주고 돌아왔다. 1994년 두 번째 태국 방문 때는 운동장에서 축구묘기를 보이는 장면이 태국 TV 방송 전파를 탔다. “태국 방문은 이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만난 세 분의 기독교 지도자가 모두 ‘하나님께서 혹시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 기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강 선교사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과 기쁨이 몰려왔다. 그렇게 아무런 기반 없이 태국 청소년을 위한 축구캠프를 현지 선교사와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다. 티켓비, 축구공, 체육복, 팸플릿 등 당시 꽤 큰 돈이던 1만 불이 필요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그가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1만 불을 채워주셨다. 1995년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회 임마누엘 축구캠프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1백여 명의 청소년이 참석했다. 이들 중에는 무슬림도 포함돼 있었는데, 캠프 후 총 17명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현지 선교사님이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니 내년에도 꼭 하자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재정 때문이었죠. 그런데 한 번 하게 하신 하나님이 두 번도 하게 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내년에도 합니다’고 대답하고 한국에 왔습니다.”
축구캠프에 이어 축구팀 창단하며 사역 확장
강 선교사는 장기 사역을 준비해 1995년 12월 28일 영등포장로교회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매년 4월에는 축구캠프를 열면서 참가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 결신한 아이들은 태국 지역교회에 연결시켜 주었다. 1999년 4월, 방콕에서 600km 떨어진 메콩 인근의 러이 지역에서 개최한 축구캠프에는 태국뿐 아니라 라오스, 베트남에서 지붕도 없는 낡은 차를 며칠씩 타고 국경을 넘어온 아이들도 많았다. 캠프가 끝난 뒤엔 총 58명의 아이가 결신카드를 냈다. 예상외의 큰 성과였다. 인근 러이교회에서 함께 청소년 예배를 드리는데, 참석 인원이 갑자기 늘자 담임 목회자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강 선교사는 러이 지역 아이들을 모아 첫 번째 임마누엘 축구팀을 창단했다.
그가 청소년 축구팀을 만든 이유는 희망이 없는 태국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속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축구캠프에 이어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두 번째 소명이었다.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지역교회를 기반으로 세운 청소년 축구팀은 현재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 총 120개가 넘는다. 그 중 2010년 개봉한 영화 ‘소명2 모겐족의 월드컵’에 나온 모겐족팀은 1백 번 째 축구팀이었다. 지금도 총 4백여 명 이상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아이들이 축구팀에서 뛰고 있고, 청소년 대표, 국가대표도 배출했다.
“축구캠프를 여신 분도, 축구팀을 만드신 분도 사실은 하나님입니다. 물론 제게 소명을 주시고 태국 땅에 보내신 분도,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분도 하나님이지요. 우리는 나라, 인종, 문화를 넘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임마누엘’ 축구팀 안에서 하나되어 협력하고 있습니다.”
태국 임마누엘 스포츠 센터 건립 진행
강성민 선교사는 축구캠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태국 임마누엘 스포츠 센터’를 건립하는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어린이 8백여 명과 부모 2백여 명 등 1천여 명이 참여하는 캠프를 열기 위해 매년 대학 캠퍼스를 빌리지만, 물가도 오르고 1~2천km나 떨어진 곳에서 오는 교회 축구팀의 경비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파송된 지 정확히 10년만인 2005년 12월 28일, 그는 5만 평의 스포츠 센터 부지를 최종 구입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지금까지 기도하고 후원 받아 하나씩 지은 운동장과 숙소는 태국 아이들이 쓸 정도는 되지만, 비전은 더 크다. 국가대표 선수들, 외국 선수들도 사용하려면 인조잔디구장 2면, 천연잔디구장, 숙소, 체육관, 강당, 예배당 등 시설이 더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불교가 삶의 일부인 태국에서 효과적인 축구사역
태국 인구 6천5백만 명 중 94%는 불교를 믿으며, 4%가 이슬람, 1%가 기독교를 믿는다. 하지만 순수복음주의자들은 인구의 0.5%로 약 40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복음화율이 50~60%에 이르는 소수민족 카렌족이 24만 명을 차지해, 나머지 16만 명 정도가 태국 현지 그리스도인이다. 태국인들에게 불교는 삶의 일부다. 강성민 선교사는 “이곳에서는 어릴 때 3개월 이상 승려가 되는 것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본다”며 “7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10월까지 사원에 머물며 수행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행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을 카오판사, 끝나는 날을 억판사라고 한다. 이 기간 왕도 머리를 깎고 사원에 들어갈 정도로, 불교는 일상의 삶과 의식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강 선교사는 “태국 사람들은 절에서 태어나자마자 축복을 받고, 아픈 곳을 치료 받으며, 결혼식과 동네잔치를 하고, 죽으면 화장을 한다”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절을 중심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교와 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때문에 2백 년 기독교 역사에도 복음화율이 낮고, 주로 어린이, 노인 신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 종교 자유는 있지만 선교의 자유는 없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절과 달리 교회는 주일에만 문을 열고, 그렇지 않으면 가정집에서 소규모로 예배 드리기 때문에 신앙을 가졌더라도 지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부모나 아이들이나 모두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축구선수로 키우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있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태국인이 축구 경기를 시청했을 정도입니다.”
또 태국에서는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술담배, 마약, 도박 문화가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어 왔다. 요즘은 오락기가 성행해 청소년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 태국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보다 효과적인 스포츠로 청소년을 계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한국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는 이 나라에서 축구를 통한 사역이 효과적인 이유다.
강 선교사는 “임마누엘 축구팀에 들어간 아이들이 축구를 배울 뿐 아니라 자기 관리를 하고, 삶이 변화되니 부모들도 좋아한다”며 “교회에서 모인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부모도 축구 하러 간다고 하면 보낸다. 축구를 계기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또 종교를 떠나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부모들이 먼저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임마누엘 축구팀에서는 항상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아이들을 운동장 안으로(in ground), 둘째 마음이 열린 아이들은 교회로(in church), 셋째, 찬양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 헌신단계에서 신학생, 목회자 등이 되어 완전히 하나님 안(in God)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 사역을 위해 그는 ‘4.4.4’ 비전(4천 명의 회원, 4천 명의 아이 및 4백 명의 리더, 40명의 사역자를 세우는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2개 권역, 22개 지역에서 축구캠프를 중심으로 사역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역자들에게는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고, 동역자에게 겸손하며,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4가지 가치관을 가질 것을 강조해 왔다.
하나되는 아세안 10개 나라
올해엔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 나라의 아세안 공동체(ASEAN Community)가 출범한다. 강 선교사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기회”라고 강조했다. 각 나라가 도시 개념이 되어 여권 없이도 왕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서도 오기 쉽게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운데 위치한 임마누엘 스포츠 센터가 속히 완공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또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 캄보디아까지 5개국에서 임마누엘 축구팀을 창설해, 이들 국가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여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워온 강 선교사(사진)는 축구 명문 영등포공고 시절 선수로 뽑히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개인기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헤딩 등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재주를 부리는 기술)을 연습하여 1980년 2월 지금의 ‘스타킹’과 같은 TV 프로그램인 묘기대행진에 출연, 장시간 공을 머리에 올려놓는 장기를 보여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후 대통령배 대회(1983년), 서울아시안게임(1986년), 서울올림픽(1988년) 등에서 개인기 시범으로 예술축구 스타가 된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2년간 머물며 세계 묘기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993년 1월 할렐루야축구단의 전신인 이랜드축구팀과 함께 태국을 처음 방문해 축구묘기를 보여주고 돌아왔다. 1994년 두 번째 태국 방문 때는 운동장에서 축구묘기를 보이는 장면이 태국 TV 방송 전파를 탔다. “태국 방문은 이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만난 세 분의 기독교 지도자가 모두 ‘하나님께서 혹시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 기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강 선교사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과 기쁨이 몰려왔다. 그렇게 아무런 기반 없이 태국 청소년을 위한 축구캠프를 현지 선교사와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다. 티켓비, 축구공, 체육복, 팸플릿 등 당시 꽤 큰 돈이던 1만 불이 필요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그가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1만 불을 채워주셨다. 1995년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회 임마누엘 축구캠프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1백여 명의 청소년이 참석했다. 이들 중에는 무슬림도 포함돼 있었는데, 캠프 후 총 17명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현지 선교사님이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니 내년에도 꼭 하자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재정 때문이었죠. 그런데 한 번 하게 하신 하나님이 두 번도 하게 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내년에도 합니다’고 대답하고 한국에 왔습니다.”
축구캠프에 이어 축구팀 창단하며 사역 확장
강 선교사는 장기 사역을 준비해 1995년 12월 28일 영등포장로교회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매년 4월에는 축구캠프를 열면서 참가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 결신한 아이들은 태국 지역교회에 연결시켜 주었다. 1999년 4월, 방콕에서 600km 떨어진 메콩 인근의 러이 지역에서 개최한 축구캠프에는 태국뿐 아니라 라오스, 베트남에서 지붕도 없는 낡은 차를 며칠씩 타고 국경을 넘어온 아이들도 많았다. 캠프가 끝난 뒤엔 총 58명의 아이가 결신카드를 냈다. 예상외의 큰 성과였다. 인근 러이교회에서 함께 청소년 예배를 드리는데, 참석 인원이 갑자기 늘자 담임 목회자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강 선교사는 러이 지역 아이들을 모아 첫 번째 임마누엘 축구팀을 창단했다.
그가 청소년 축구팀을 만든 이유는 희망이 없는 태국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속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축구캠프에 이어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두 번째 소명이었다.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지역교회를 기반으로 세운 청소년 축구팀은 현재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 총 120개가 넘는다. 그 중 2010년 개봉한 영화 ‘소명2 모겐족의 월드컵’에 나온 모겐족팀은 1백 번 째 축구팀이었다. 지금도 총 4백여 명 이상의 태국, 라오스, 베트남 아이들이 축구팀에서 뛰고 있고, 청소년 대표, 국가대표도 배출했다.
“축구캠프를 여신 분도, 축구팀을 만드신 분도 사실은 하나님입니다. 물론 제게 소명을 주시고 태국 땅에 보내신 분도,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분도 하나님이지요. 우리는 나라, 인종, 문화를 넘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임마누엘’ 축구팀 안에서 하나되어 협력하고 있습니다.”
강성민 선교사는 축구캠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태국 임마누엘 스포츠 센터’를 건립하는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어린이 8백여 명과 부모 2백여 명 등 1천여 명이 참여하는 캠프를 열기 위해 매년 대학 캠퍼스를 빌리지만, 물가도 오르고 1~2천km나 떨어진 곳에서 오는 교회 축구팀의 경비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파송된 지 정확히 10년만인 2005년 12월 28일, 그는 5만 평의 스포츠 센터 부지를 최종 구입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지금까지 기도하고 후원 받아 하나씩 지은 운동장과 숙소는 태국 아이들이 쓸 정도는 되지만, 비전은 더 크다. 국가대표 선수들, 외국 선수들도 사용하려면 인조잔디구장 2면, 천연잔디구장, 숙소, 체육관, 강당, 예배당 등 시설이 더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불교가 삶의 일부인 태국에서 효과적인 축구사역
태국 인구 6천5백만 명 중 94%는 불교를 믿으며, 4%가 이슬람, 1%가 기독교를 믿는다. 하지만 순수복음주의자들은 인구의 0.5%로 약 40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것도 복음화율이 50~60%에 이르는 소수민족 카렌족이 24만 명을 차지해, 나머지 16만 명 정도가 태국 현지 그리스도인이다. 태국인들에게 불교는 삶의 일부다. 강성민 선교사는 “이곳에서는 어릴 때 3개월 이상 승려가 되는 것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본다”며 “7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10월까지 사원에 머물며 수행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행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을 카오판사, 끝나는 날을 억판사라고 한다. 이 기간 왕도 머리를 깎고 사원에 들어갈 정도로, 불교는 일상의 삶과 의식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강 선교사는 “태국 사람들은 절에서 태어나자마자 축복을 받고, 아픈 곳을 치료 받으며, 결혼식과 동네잔치를 하고, 죽으면 화장을 한다”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절을 중심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교와 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때문에 2백 년 기독교 역사에도 복음화율이 낮고, 주로 어린이, 노인 신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 종교 자유는 있지만 선교의 자유는 없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절과 달리 교회는 주일에만 문을 열고, 그렇지 않으면 가정집에서 소규모로 예배 드리기 때문에 신앙을 가졌더라도 지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부모나 아이들이나 모두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축구선수로 키우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있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태국인이 축구 경기를 시청했을 정도입니다.”
강 선교사는 “임마누엘 축구팀에 들어간 아이들이 축구를 배울 뿐 아니라 자기 관리를 하고, 삶이 변화되니 부모들도 좋아한다”며 “교회에서 모인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부모도 축구 하러 간다고 하면 보낸다. 축구를 계기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또 종교를 떠나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부모들이 먼저 교회에 나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임마누엘 축구팀에서는 항상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아이들을 운동장 안으로(in ground), 둘째 마음이 열린 아이들은 교회로(in church), 셋째, 찬양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 헌신단계에서 신학생, 목회자 등이 되어 완전히 하나님 안(in God)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 사역을 위해 그는 ‘4.4.4’ 비전(4천 명의 회원, 4천 명의 아이 및 4백 명의 리더, 40명의 사역자를 세우는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2개 권역, 22개 지역에서 축구캠프를 중심으로 사역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역자들에게는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고, 동역자에게 겸손하며,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신에게 정직하라는 4가지 가치관을 가질 것을 강조해 왔다.
하나되는 아세안 10개 나라
올해엔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 나라의 아세안 공동체(ASEAN Community)가 출범한다. 강 선교사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기회”라고 강조했다. 각 나라가 도시 개념이 되어 여권 없이도 왕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서도 오기 쉽게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운데 위치한 임마누엘 스포츠 센터가 속히 완공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또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 캄보디아까지 5개국에서 임마누엘 축구팀을 창설해, 이들 국가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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