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0:36-37)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시작 되는가’를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내 이웃이 누구냐’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자비를 베풂으로 이웃을 만들어 가라’고 대답하셨다(눅 10:29, 37).
한마디로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웃은 먼저 개념적으로 규정되는 ‘정태적 존재(The Being)’ 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풂으로서 만들어가야 하는 '역동적 관계(The Becoming)'이다. 따라서 이웃은 나에게 무한히 열려진 대상이다. 우리 이기적 본성은 나와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고, 취향이 같고, 인종이 같고, 계층이 비슷하고, 이념이 동일한 사람을 이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바리새적 사고방식이다. 반면에 주님은 나와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문화와 취향이 다르고, 인종, 계층, 사상이 다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나의 이웃으로 기꺼이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당시 유대인들의 관념 속에서 사마리아인은 결코 선한 주역이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사랑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 예수님의 역설적 강조에 우리는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문화통합의 근원적 힘은 오직 ‘사랑이다’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오늘의 한류 현상 속에 이 아가페 사랑이 깊이 담겨진다면 우리의 한 문화는 더욱 세계적인 초문화적 영향력을 갖게 될 것 이다.
이제 우리 한국 사회는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소수이지만 수많은 다문화 공동체가 한국 사회의 주류로 들어올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또 각각 자기네들의 고유한 종교 ? 문화 ?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이들은 문화 · 혈통적으로는 방글라데시, 네팔, 베트남 등의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국적으로는 분명히 한국인인 우리 국민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이들은 문화적 한국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의 문화적 다름과 차이를 넘어서서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선한 이웃관계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들과의 문화, 인종, 가치관의 차이를 강조하고, 이들을 우리 사회의 비주류로 소외시킬 때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내부의 큰 갈등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이들을 나와 똑같은 이웃사랑의 주체로 받아들이고,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받아들일 때, 한국 사회는 사랑으로 하나 된 다문화적 아가페 공동체로 더욱 아름답게 빚어져 나갈 것이다. 오늘날의 21세기는 글로벌 지구촌 문화 속에서 섬김과 나눔을 통한 사랑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때에 온 인류는 이미 히틀러의 아리아민족우월론에 근거한 단일혈통민족론의 폐쇄성과 폐해를 비극적으로 겪었다. 타 인종을 차별하고, 타 문화를 배제시키는 배타적민족주의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반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과 서로 상생하고, 사랑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혈통적 · 지역적 · 정치적 민족주의를 넘어선 문화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21세기형 한국인의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확보해야 한다. 특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코리안 공동체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한국인이라고 하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문화적 자기 정체성을 재점검하고 전 지구적 다문화 사회 속으로 깊이 나가야한다.
이문식 목사
총신대
합동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Th.M)
산울교회 담임목사
희년선교회 부회장
남북나눔운동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