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화) 오후 1시 CTS기독교TV 11층 컨벤션 홀에서는 (사)지구촌사랑나눔과 CTS가 공동주최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희망봉사단 공동후원으로 ‘제2차 다문화 사회와 이주민 선교 세미나’가 열렸다. 다음은 김해성 목사(중국동포교회)의 기조연설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들을 통한 세계선교”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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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117만 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4천 913만 명의 2%를 넘는 수치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출산율은 1.08명으로 전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현재의 저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100년에 남한 인구는 2,31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노동력 부족, 인구부족으로 말미암아 현재 100만 외국인 체류자가 조만간 500만 명, 1천 만 명 시대로 접어들 것이 분명하다. 최근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데, 결혼 열 쌍 중 한 쌍은 외국인과의 혼인이다. 농촌 총각 10명 가운데 4명은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고 있고, 학교에 입학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단일민족의 깃발도 내릴 때가 됐고, 다 인종, 다민족시대, 다문화사회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으로 한국사회와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해외선교를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하는 논쟁이 매우 거세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분부하셨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땅 끝까지 이르러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가정과 직장을 팽개치고 땅 끝까지 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현재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체류자들이 한국에 거주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를 이 정도로 잘 살게 하시고, 외국인들도 함께 살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이어 해외선교사 파송 제2위 국가로써 2만 여 명을 선교사로 보내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에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고, 순교자의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로서 존경 받아 마땅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제1세계의 국가와 필리핀 등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선교사나 목사라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체포와 추방, 투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선교하고자 하는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이 온통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셨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 예수님께서도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는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난 이들을 통해 새 역사를 펼쳐 가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땅 끝에서 온 뭇 민족들에게 생명의 전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세계선교의 새 지평이 우리 앞에 활짝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1980년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7년이 넘도록 줄 곳 노동자 선교에만 매달려 왔다. 공장에 취업해 일했지만 1년이 채 안되어 대학출신자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산자교회를 개척했고, 노동 상담소를 개소해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문제를 지원하며 노동자 선교를 시작했다. 한편 목사로서 성남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일을 하게 됐고, 노동문제와 인권문제의 전문가로서 일하게 됐다. 그러던 중, 1992년에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16층에서 추락해 사망한 중국동포 허순필 씨와 팔이 절단된 필리핀 사람 에리엘 갈락 씨의 사건 해결을 요청 받았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노동문제이고 인권문제였기에 어렵지 않게 해결을 해 줄 수 있었다. 허순필 씨의 경우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8,88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아 주는 등 소문이 나면서 가슴을 태우는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들이 찾아오게 됐고, 그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됐다. 한국인들을 위해 일하던 것에서 방향을 바꿔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계기가 됐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들이 당한 불이익이나 인권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일을 했다. 그래서 처음 설립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었고 인권, 노동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것이 주 업무였다.
예전 방글라데시 사람의 손목이 절단됐다. 싸우다시피 해서 3천 만원을 받아 줬다. 귀국해서 젊고 예쁜 여자를 하나 샀다는 편지가 왔다. 물론 부인과 자식이 있는데 말이다. 방글라데시 친구들을 불러 따졌더니 이슬람권에서는 경제력만 있으면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공장을 만들고 악덕기업주가 되거나, 놀기만 하다가 한국에 초청해 달라고 편지를 하기도 한다. 보상받은 돈으로 마약에 빠지거나 술에 취해 폐인이 된 이도 있다. 모든 일이 온통 실패라는 좌절감에 빠졌다. 한국에 와 있는 노동자들의 인권, 노동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줄 알고 상담소를 만들었는데, 이는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결과였다. 뒤늦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도움만 주는 것의 참담한 실패를 맛보면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결론은 복음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도리임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외국인 노동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각 나라별로 통역을 하다 보니 예배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언어가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찬양과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고 식사를 나누는 일은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처럼 하나로 통일되는 체험이었다. 예배에 엄청난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리가 없어 터져나갈 상황이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었다. (암8:11) 이후 교회는 언어별로 나뉘게 되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며 현재 20개의 교회로 자리를 잡게 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신앙생활이 괘도에 오르면서 성령체험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헌신하는 이들이 줄을 서게 됐다. 신학대학을 가고 목사로, 선교사로 일하고 싶다는데 신학대학마다 불법체류자는 받지 않는다며 거절을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외국인과 동포를 위한 ‘세계선교신학대학’이었다.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동포 한국어 등 4개 신학과가 만들어 졌다. 3년 과정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도록 했다. 이들을 양성해 파송할 수 있다면 세계선교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처음 6개 국가의 120여 명이 입학을 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일하며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만, 중도에 불법체류자라서 체포되고 추방되는 이들도 생겨나고 무서워서 오지 못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7년째 입학식이 있었고, 4회의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 중 30여 명은 벌써 현지로 파송되어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천 만원이면 현지 개척과 목회가 가능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많은 상담을 해결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였다. 법을 만들고 제도를 바꿔야 했다. ‘외국인 노동자 대책 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의 총대를 졌다. 주요사업은 ‘외국인 노동자 법률’ 제정이었다. 서명운동, 캠페인을 벌이는데 출입국에서 하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이틀 뒤 출입국 직원이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 골목을 막고 단속을 시작했다. 교우들과 법무부 차량을 막고 항의했다. 경찰이 투입되고 특수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이 됐다. 그러나 이후 2003년 7월 31일,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한편 1999년 국회에서 ‘재외 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이 제정됐다. 재외동포의 개념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등으로 규정했다. 국적은 1948년 정부수립으로부터 시작됐고, 그 이전에 출국한 중국과 구 소련지역 동포 300만 명은 동포가 아니라는 법이었다. 농성을 했지만 통과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안중근 의사나 윤동주 시인, 그들의 후손은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고, 애국하지 말라는 법은 아닌가? 직후 성남중국동포의 집 3인이 청구인이 되어 헌법소원을 냈다. 2001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 불일치를 결정했다. 이후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2004년 2월 9일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대통령이 공포했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우선 ‘동포 방문 취업제’를 추진하고 2010년부터 재외동포법을 시행하고자 준비를 하고 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권이 우리에게는 없다. ‘땅 끝까지 가라’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부요케 하시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보내주셨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분포를 보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이슬람국가), 인도, 네팔(힌두교국가), 태국,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불교국가), 러시아,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사회주의 국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10/40창 지역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미전도 종족들이 온통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세계선교의 새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동참이 절실하다.
김해성 목사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중국동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