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백석 총회세계선교위원회(위원장 조용활)는 최근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다종교 상황에서의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2010 선교포럼'을 개최했다. 다음은 장종현 박사(백석대학교 설립자)가 전한 설교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전문.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오늘 이렇게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총회세계선교위원회 주최로 선교포럼을 열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총회세계선교위원회 임역원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연구의 결실로 오늘 우리가 이처럼 귀한 선교포럼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백석총회와 총회 산하의 모든 교회들이 힘을 합쳐 우리 한국교회가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사명을 완수하는 데 큰 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한국교회는 커다란 위기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훌륭한 선교학자 여러분이 좋은 대안을 많이 내놓으시리라 믿습니다. 훌륭한 연구를 통해서 나온 방안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런 위기상황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 한국은 옛날부터 다종교사회였습니다. 유교, 불교, 무속종교, 천주교, 최근에는 이슬람 종교까지 여러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다종교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교초기부터 이런 다종교의 상황에서 선교사들과 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다종교의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그 열정과 신앙을 우리 시대에 다시 살려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고 해도, 복음의 진리와 그 복음을 전하는 원칙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바뀌었다고 해도 진리 자체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선교포럼의 주제가‘다종교 상황에서의 한국교회의 미래’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 말씀도 다종교 상황에서 참된 종교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종교 상황에서 어떻게 선교를 해야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한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더럽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다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있는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워놓고, 그 성전이야말로 진짜 성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21~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것이 참된 생명이 없는 모든 종교의 현상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17장에서 아테네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알게 하리라.”(행 17:22~23)

그렇습니다. 이방종교의 특징은 자신들이‘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저 두려움 때문에 해와 달을 향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절을 하거나, 윤리와 도덕의 금욕적인 규칙들을 준수하면 구원이 있을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설교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22~31)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심판의 날을 작정하셨고, 구원 얻을 길도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의 사마리아 여인도 무엇이 참 진리인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참된 만족도 없었고, 자신이 예배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중에,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심령 깊은 곳을 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정체성을 물으시는 장면입니다.“네가 누구인가?”“네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네가 영과 진리로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예수님께서 선교포럼에 참석한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우리의 심령 깊은 곳을 치시며, 우리의 정체성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인가?”“네가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네가 참 하나님을 알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가?”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영적인 눈을 뜨고,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요 4:25~26)

예수님께서“내가 그로라”말씀하셨을 때, 그 여인이 놀랐습니다. 28절에 보면,‘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여인에게 구원의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어떤 종교를 믿든 잘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상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과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리의 문제, 구원의 길에 대해서 양보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이 선포하는 복음,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리의 길을 확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타종교의 주장을 혼합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라는 명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타종교의 가르침을 혼합하여 복음의 순수성을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신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학자이면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만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던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몰랐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몰랐고, 더구나 성령 하나님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4:23~24절에서,“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참으로 알려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또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과 성령 안에서 예배하며 사는 삶이 서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 심지어 개혁주의를 부르짖는 신학자들 가운데에서도‘하나님을 아는 것, 곧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영이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아는 참된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날 유럽의 교회를 보십시오. 이제 유럽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선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교회도 많고, 신학자들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식도 하고, 장례식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으니, 그들은 다시 전도를 받아야 하는 선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성적으로만 알고, 영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은 점점 없어져 갑니다. 성령께서 기록하신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세가 기록했다, 바울이 기록했다, 다윗이 기록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만 이해하고, 이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인 계시의 말씀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학이 신학자의 이성적인 학문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자가 하나님을 자기의 학문 속에 꽁꽁 가두어 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신학을 배운 목사가 섬기는 교회가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으로 섬기며 영적 생명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신학을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의 능력으로 순수한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개혁주의의 교리가 가장 성경적인 진리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곧 성령의 살아계신 역사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 성령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영이신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종교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 속에 있어야지만, 참된 신학을 할 수 있으며, 참된 신학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죄와 무지에 빠진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학문적으로 연구한 신학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생명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회개도 없고, 참된 삶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다종교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한 신앙을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 생명이 살아있는 곳에 눈물이 있고, 회개가 있고, 인격의 변화가 있으며, 삶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이것으로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인지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려서 자기도‘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단지 윤리와 도덕, 문화와 예술로만 접근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을 때, 그 여인이 예수님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28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처음으로 선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이미 이 사마리아 여인은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그 사마리아 지역에 예수님을 전하는 첫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을 때,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옛 생활에서 돌이켜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영적인 생명의 능력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 때,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속에‘영원토록 솟아나오는 영적인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충실하게 전할 때, 위대한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는 이 땅의 많은 종교들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 한국교회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생명을 회복하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 때, 복음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따른 선교의 방법을 찾고, 다종교 사회의 특성에 적합한 최선의 선교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동일한 복음전파의 근본원리를 우리는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혼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생명으로 충만하여, 복음의 능력을 성도들의 삶 속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종교 상황에 처한 우리 한국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생명의 역사가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과 우리 한국교회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장종현 목사 (백석대학교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