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통찰력을 얻기까지 역사와의 대화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아픈 과거에서 보석을 찾을 수만 있다면 불행한 과거는 더 이상 불행이 아닌 성공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2007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들어가는 글 중에서)
2007년 아프간에서 2명의 희생자를 낸 한국인 피랍 사건은 40여일 만에 종료됐지만, 지금도 한국교회에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프간 피랍사건을 사실에 기초해 위기관리 측면에서 철저히 규명하고 정리하기 위한 한국교회 차원의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발간 사업’이 2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이 사업에 앞장선 사단법인 한국위기관리재단은 창립 3주년 기념 및 ‘2007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출판기념예배를 오는 12월 2일 오후 6시 남서울교회 비전센터 2층에서 진행한다. 행사에 앞서 오후 2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사 위기관리 2.0 시대를 향하여(아프간 피랍사건의 교훈을 찾아서)’를 주제로 선교 지도자들을 위한 위기관리포럼이 열린다.
한국위기관리재단 사무총장 김진대 목사(사진)는 출판을 앞두고 선교신문과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프간 피랍사건의 시련과 희생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헛되이 하지 말고 선용(善用)해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선교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은 비매품이며 교회, 선교단체, 선교본부, 후원단체 및 개인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다음은 책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 한 내용.
2년여 준비과정을 거쳐 ‘2007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가 출간됩니다. 출간 계기가 있습니까.
2011년 12월 1일 위기·디브리핑 세미나 초청강사들과 샘물교회 장로님을 포함한 재단 관계자들이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분당샘물교회가 피랍사건 5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이 사건을 정리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프간 피랍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국위기관리재단이 출범한 지 1주년을 맞을 즈음이었습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외교부에 등록된 공신력 있는 한국위기관리재단이 피랍사건 전말을 연구·분석·평가하여 종합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2012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발간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명의 편집위원(김진대 목사, 도문갑 목사, 문상철 박사, 이경애 선교사, 정서운 선교사)이 2012년 1월 12일 경기도 안산 소재 GMP 회의실에서 첫 태스크포스팀(TFT) 모임을 연 것을 필두로 올해 4월 17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 마지막 TFT 모임까지 총 8차례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삼광교회, 행복한 샘 등에서 모임이 이뤄졌고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일부 위원들은 춘천 한마음교회 안식관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업 예산은 연구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교회의 후원에 의지하지 않고 재단 자비나 다양한 교회 및 단체의 후원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편집위원들은 각자 기관이나 학교에 소속돼 사역하는 형편이어서 이 사업에 충분한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선교운동과 일선 선교단체들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의미와 목표를 두고 서로 격려하며 팀 사역을 이룬 결과 마침내 지난 5월 첫 종합보고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피랍 당사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피랍 관련 자료들을 추가로 수집하여 분석했습니다. 또 사건 당시 아프간 현지에 있었거나 대사관에 근무했던 관련자들을 추가로 인터뷰하는 과정을 통해 처음 출간된 보고서를 일부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피랍사건 후 6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지금 이 책이 나온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선교운동이 시작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당한 유예기간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예기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프간 피랍사태로 입증되었습니다. 피랍사태가 발생했던 당시만 해도 한국교회와 선교계는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위기관리재단이 이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한 평가보고서가 만들어진다면 한국교회, 선교단체, NGO단체들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보고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한국교회와 선교계에는 위기관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등 이미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위기 상황에서 더욱 의미 있게 사용되는 통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교회가 장기적으로 위기관리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면 위기관리 과정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위기관리 정책은 위기 종료 후 60일 이내에 평가 작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6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그 평가를 시도하는 셈입니다.
(6년의 기간이 걸린 이유는) 평가 문화가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아프간 피랍사건과 같은 일들을 들먹이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기독교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안전 불감증’이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정서적으로 불편한 사실들을 빨리 잊고 도피하려는 성향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을 의도적으로 빨리 지워버리고 망각함으로, 그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자기방어본능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도피본능이 안전 불감증을 만들고 한국사회 도처에서 같은 성격의 위기나 사고가 반복되게 하는 악순환을 낳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구는 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을 존중하며 감정적으로 강인합니다. 서구는 전통적으로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큰 사건일수록 비교적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하여 개선된 방향과 실행방안을 수립한 후 실천에 옮기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준비하시면서 느낀 한국교회의 위기관리능력, 멤버케어 등의 실태는 어떠했습니까.
피랍사건 이후 ‘선교’, ‘봉사’에 대한 용어구분과 ‘단기선교’의 개념 정리가 요구됐으나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단기선교’와 ‘단기해외봉사 및 비전여행’에 대한 용어 구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즐겨 써왔던 ‘단기선교’를 단기 선교사(STM)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해외봉사는 사역의 전문성 및 위기관리 역량을 갖춘 전문사역단체와 긴밀한 협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사역 내용은 파송교회의 필요보다 사역현장의 필요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또 잘 훈련되고 준비된 정예 자원들을 보내 장기적으로 선교나 봉사현장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성육신적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할 겁니다. 봉사활동 참가자 전원과 교회 지도자(선교위원회, 교역자)는 반드시 위기관리교육을 받아야 하며, 선교 및 단기봉사 활동 중 위기상황 시 교회는 각별히 세상과 의사소통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능력이 교회, 단체별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피랍사건 후 발족한 선교사 위기관리를 위한 연합기구(CMS)와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나름대로 교육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규모 있는 단체들은 나름 위기 인식과 기본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교단체들은 열악한 재정상황, 위기관리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 위기관리 필요에는 동의하면서도 사역의 우선 순위에선 밀려나는 현실, 최근 큰 위기사건이 없었던 점, 무엇보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위기’의 특성 등으로 인해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한국위기관리재단의 독려와 선교단체들의 분발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집니다.
이를 위해 각 선교단체들은 주기적인 자체 점검으로 위기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장기계획 수립과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주재국 별 위기관리 체제 구축과 상시 점검 및 운영은 협력 사업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현장 전문 사역자들의 의견은 존중하면서 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의 구축도 요청되고 있습니다.
아프간 피랍사건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주는 영적, 현실적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프간 피랍사건이 지역교회에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네트워킹과 파트너십’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불행한 사건은 한 지역교회의 봉사팀이 전문적인 안전정보를 공급받지 못한 가운데 현지 사역자들의 판단만을 의지하다가 재난을 당한 경우입니다. 모달리티(modality) 조직인 교회로서는 전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소달리티(sodality)의 지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피랍사건을 계기로 지역교회가 선교단체 및 NGO들과 긴밀한 공조 관계 속에서 선교 및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선교단체 및 NGO들은 지역교회들의 해외사역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교훈에 따라 향후 교회의 해외단기봉사와 비전여행은 그 지역과 사역에 전문성을 가진 팀이나 단체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역교회는 해외사역에 있어 단기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팀구성원들을 보다 잘 준비하고 훈련해서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가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피랍사건이 아니더라도 많은 비전여행프로그램들이 현지 사역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피해를 주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는 가운데 그들의 관점을 존중하면서 기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목표를 따라 조심스럽게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비전여행은 현지 사역에 기여하기보다 선교적 삶에 대해 배우는 겸손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역보다는 훈련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교회는 비기독교인들의 관점과 이해도를 고려한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선교적 의사소통의 기본은 수신자 중심의 의사소통(receptor-oriented communication)입니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은 선교지에서만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본국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서도 지켜져야 합니다. 비기독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바로 선교의 주체인 교회가 소통을 잘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이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복음을 전하는 노력은 사실 평상시의 사역 방식에도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육신적 방식의 의사소통을 익힌다면 국내에서의 종교적 소통이 크게 진전될 것입니다.
네 번째, 이 사건을 계기로 멤버케어(member care), 특히 이를 위한 위기관리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화된 순교의 논리는 생명의 고귀함, 특별히 사역자를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해외에 파견된 약 2만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은 물론이고 단기 사역자들 및 비전여행자들 또한 중요한 인적 자산입니다. 그 고귀함을 인식하면서 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생명 사랑이 전제된 것이 기독교의 참된 순교 신앙입니다. 선교사들에게 자기를 돌보지 않는 무한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고 보호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분을 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호해도 순교하게 될 순교자는 극히 예외적인 소수입니다.
다섯 번째,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교회의 선교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비전여행이 자원자들 중심으로 의기투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직도 많은 비전여행팀들이 교회 전체의 선교지원 구조(선교위원회나 선교부 등)의 감독을 받지 않고 대학부나 청년부 자체 행사로만 진행됩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 전체의 선교위원회나 선교부의 전문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청년부 등의 비전여행팀들이 감독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전여행이 교회 안에서 적절한 책무구조(accountability structure) 속에서 계획되고 운영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전여행이 무분별하게 운영되지 않고 모든 면에서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점검한 다음 적정 수준에서 계획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재정적인 면에서의 타당성을 따져 장기보다 단기사역에 과도한 선교비 지출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교회 안의 선교 지원 구조를 발전시킨다면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의 아픈 기억을 긍정적으로 승화해서 선진 선교를 실현하는 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겨울 단기해외봉사 시즌을 앞두고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가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위기상황을 예방하되, 위기발생 시에는 최적의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방문 국가의 충분한 위기 정보 파악 △전문기관의 위기관리 교육 △구성원의 건강 상태 진단 △다중 연락망 구축 △사역 정체성 & 커버스토리(STS) 확립 △철저한 행정적인 준비 등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열정과 헌신은 신앙 생활과 선교 사역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동시에 지혜와 절제, 영적 분별력 또한 성령의 열매에 속합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교회와 성도들은 부름 받은 사역의 선한 청지기로 그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이런 균형감각을 가늠 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아프간 피랍사건의 시련과 희생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헛되이 하지 말고 선용하여, 앞으로 더 건강하고 성숙한 선교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7년 아프간에서 2명의 희생자를 낸 한국인 피랍 사건은 40여일 만에 종료됐지만, 지금도 한국교회에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프간 피랍사건을 사실에 기초해 위기관리 측면에서 철저히 규명하고 정리하기 위한 한국교회 차원의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발간 사업’이 2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이 사업에 앞장선 사단법인 한국위기관리재단은 창립 3주년 기념 및 ‘2007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출판기념예배를 오는 12월 2일 오후 6시 남서울교회 비전센터 2층에서 진행한다. 행사에 앞서 오후 2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사 위기관리 2.0 시대를 향하여(아프간 피랍사건의 교훈을 찾아서)’를 주제로 선교 지도자들을 위한 위기관리포럼이 열린다.
한국위기관리재단 사무총장 김진대 목사(사진)는 출판을 앞두고 선교신문과 단독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프간 피랍사건의 시련과 희생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헛되이 하지 말고 선용(善用)해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선교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은 비매품이며 교회, 선교단체, 선교본부, 후원단체 및 개인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다음은 책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 한 내용.
2년여 준비과정을 거쳐 ‘2007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가 출간됩니다. 출간 계기가 있습니까.
2011년 12월 1일 위기·디브리핑 세미나 초청강사들과 샘물교회 장로님을 포함한 재단 관계자들이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분당샘물교회가 피랍사건 5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이 사건을 정리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프간 피랍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국위기관리재단이 출범한 지 1주년을 맞을 즈음이었습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외교부에 등록된 공신력 있는 한국위기관리재단이 피랍사건 전말을 연구·분석·평가하여 종합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2012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 발간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명의 편집위원(김진대 목사, 도문갑 목사, 문상철 박사, 이경애 선교사, 정서운 선교사)이 2012년 1월 12일 경기도 안산 소재 GMP 회의실에서 첫 태스크포스팀(TFT) 모임을 연 것을 필두로 올해 4월 17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서 마지막 TFT 모임까지 총 8차례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삼광교회, 행복한 샘 등에서 모임이 이뤄졌고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일부 위원들은 춘천 한마음교회 안식관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업 예산은 연구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교회의 후원에 의지하지 않고 재단 자비나 다양한 교회 및 단체의 후원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편집위원들은 각자 기관이나 학교에 소속돼 사역하는 형편이어서 이 사업에 충분한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선교운동과 일선 선교단체들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의미와 목표를 두고 서로 격려하며 팀 사역을 이룬 결과 마침내 지난 5월 첫 종합보고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피랍 당사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피랍 관련 자료들을 추가로 수집하여 분석했습니다. 또 사건 당시 아프간 현지에 있었거나 대사관에 근무했던 관련자들을 추가로 인터뷰하는 과정을 통해 처음 출간된 보고서를 일부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피랍사건 후 6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지금 이 책이 나온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선교운동이 시작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당한 유예기간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예기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프간 피랍사태로 입증되었습니다. 피랍사태가 발생했던 당시만 해도 한국교회와 선교계는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위기관리재단이 이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한 평가보고서가 만들어진다면 한국교회, 선교단체, NGO단체들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보고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서 한국교회와 선교계에는 위기관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등 이미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위기 상황에서 더욱 의미 있게 사용되는 통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교회가 장기적으로 위기관리 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면 위기관리 과정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위기관리 정책은 위기 종료 후 60일 이내에 평가 작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6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그 평가를 시도하는 셈입니다.
(6년의 기간이 걸린 이유는) 평가 문화가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아프간 피랍사건과 같은 일들을 들먹이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기독교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안전 불감증’이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정서적으로 불편한 사실들을 빨리 잊고 도피하려는 성향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을 의도적으로 빨리 지워버리고 망각함으로, 그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자기방어본능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도피본능이 안전 불감증을 만들고 한국사회 도처에서 같은 성격의 위기나 사고가 반복되게 하는 악순환을 낳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구는 보다 객관적이고 이성을 존중하며 감정적으로 강인합니다. 서구는 전통적으로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큰 사건일수록 비교적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하여 개선된 방향과 실행방안을 수립한 후 실천에 옮기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준비하시면서 느낀 한국교회의 위기관리능력, 멤버케어 등의 실태는 어떠했습니까.
피랍사건 이후 ‘선교’, ‘봉사’에 대한 용어구분과 ‘단기선교’의 개념 정리가 요구됐으나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단기선교’와 ‘단기해외봉사 및 비전여행’에 대한 용어 구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즐겨 써왔던 ‘단기선교’를 단기 선교사(STM)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해외봉사는 사역의 전문성 및 위기관리 역량을 갖춘 전문사역단체와 긴밀한 협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사역 내용은 파송교회의 필요보다 사역현장의 필요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또 잘 훈련되고 준비된 정예 자원들을 보내 장기적으로 선교나 봉사현장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성육신적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할 겁니다. 봉사활동 참가자 전원과 교회 지도자(선교위원회, 교역자)는 반드시 위기관리교육을 받아야 하며, 선교 및 단기봉사 활동 중 위기상황 시 교회는 각별히 세상과 의사소통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능력이 교회, 단체별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피랍사건 후 발족한 선교사 위기관리를 위한 연합기구(CMS)와 한국위기관리재단(KCMS)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나름대로 교육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규모 있는 단체들은 나름 위기 인식과 기본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교단체들은 열악한 재정상황, 위기관리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 위기관리 필요에는 동의하면서도 사역의 우선 순위에선 밀려나는 현실, 최근 큰 위기사건이 없었던 점, 무엇보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위기’의 특성 등으로 인해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한국위기관리재단의 독려와 선교단체들의 분발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집니다.
이를 위해 각 선교단체들은 주기적인 자체 점검으로 위기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장기계획 수립과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주재국 별 위기관리 체제 구축과 상시 점검 및 운영은 협력 사업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현장 전문 사역자들의 의견은 존중하면서 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의 구축도 요청되고 있습니다.
아프간 피랍사건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주는 영적, 현실적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프간 피랍사건이 지역교회에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네트워킹과 파트너십’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불행한 사건은 한 지역교회의 봉사팀이 전문적인 안전정보를 공급받지 못한 가운데 현지 사역자들의 판단만을 의지하다가 재난을 당한 경우입니다. 모달리티(modality) 조직인 교회로서는 전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소달리티(sodality)의 지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피랍사건을 계기로 지역교회가 선교단체 및 NGO들과 긴밀한 공조 관계 속에서 선교 및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선교단체 및 NGO들은 지역교회들의 해외사역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교훈에 따라 향후 교회의 해외단기봉사와 비전여행은 그 지역과 사역에 전문성을 가진 팀이나 단체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역교회는 해외사역에 있어 단기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팀구성원들을 보다 잘 준비하고 훈련해서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가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피랍사건이 아니더라도 많은 비전여행프로그램들이 현지 사역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피해를 주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는 가운데 그들의 관점을 존중하면서 기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목표를 따라 조심스럽게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비전여행은 현지 사역에 기여하기보다 선교적 삶에 대해 배우는 겸손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역보다는 훈련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교회는 비기독교인들의 관점과 이해도를 고려한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선교적 의사소통의 기본은 수신자 중심의 의사소통(receptor-oriented communication)입니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은 선교지에서만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본국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서도 지켜져야 합니다. 비기독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바로 선교의 주체인 교회가 소통을 잘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이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복음을 전하는 노력은 사실 평상시의 사역 방식에도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육신적 방식의 의사소통을 익힌다면 국내에서의 종교적 소통이 크게 진전될 것입니다.
네 번째, 이 사건을 계기로 멤버케어(member care), 특히 이를 위한 위기관리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화된 순교의 논리는 생명의 고귀함, 특별히 사역자를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등한시하기 쉽습니다. 해외에 파견된 약 2만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은 물론이고 단기 사역자들 및 비전여행자들 또한 중요한 인적 자산입니다. 그 고귀함을 인식하면서 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생명 사랑이 전제된 것이 기독교의 참된 순교 신앙입니다. 선교사들에게 자기를 돌보지 않는 무한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고 보호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분을 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호해도 순교하게 될 순교자는 극히 예외적인 소수입니다.
다섯 번째,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교회의 선교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비전여행이 자원자들 중심으로 의기투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직도 많은 비전여행팀들이 교회 전체의 선교지원 구조(선교위원회나 선교부 등)의 감독을 받지 않고 대학부나 청년부 자체 행사로만 진행됩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 전체의 선교위원회나 선교부의 전문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청년부 등의 비전여행팀들이 감독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전여행이 교회 안에서 적절한 책무구조(accountability structure) 속에서 계획되고 운영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전여행이 무분별하게 운영되지 않고 모든 면에서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점검한 다음 적정 수준에서 계획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재정적인 면에서의 타당성을 따져 장기보다 단기사역에 과도한 선교비 지출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교회 안의 선교 지원 구조를 발전시킨다면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의 아픈 기억을 긍정적으로 승화해서 선진 선교를 실현하는 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겨울 단기해외봉사 시즌을 앞두고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가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위기상황을 예방하되, 위기발생 시에는 최적의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방문 국가의 충분한 위기 정보 파악 △전문기관의 위기관리 교육 △구성원의 건강 상태 진단 △다중 연락망 구축 △사역 정체성 & 커버스토리(STS) 확립 △철저한 행정적인 준비 등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열정과 헌신은 신앙 생활과 선교 사역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동시에 지혜와 절제, 영적 분별력 또한 성령의 열매에 속합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교회와 성도들은 부름 받은 사역의 선한 청지기로 그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이런 균형감각을 가늠 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아프간 피랍사건의 시련과 희생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헛되이 하지 말고 선용하여, 앞으로 더 건강하고 성숙한 선교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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