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10동경대회에서 12일(수) 오전 Dr. Marv Newell이 "Biblical Foundation for Making Disciples of Every People"이란 제목으로 전한 주제강연 번역 전문이다. 첫 날에는 Dr. Marv Newell의 발표 외에도 "Kingdom Mission: DNA of the Missionar Task"(조동진 박사) "The New Renewal Missionary Movement"(Dr. Obed Alvarez) "State of the Unfinished Task"(Dr. Paul Eshleman) 등의 주제강연이 이뤄졌다. (동경대회 관련기사)
개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주신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의 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에게 있어 최 우선순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에 걸쳐 “지상 명령”이라고 알려져 온 것으로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주신 다섯 번의 말씀이 그 핵심에 있으며 제자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부활 이후로, 예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이러한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 집에서, 갈릴 에 있는 한 산에서, 갈릴리 해변가에서, 그리고 감람산에서 이런 만남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것은 그분께서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시는 다섯 가지의 명령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부활 후 지상에 계시는 동안 다른 것들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제자들과 보내신 마지막 시간들은 제자들에 의해 곧 시작될 세계 선교에 대한 것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부활하신 당일 저녁에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에 대한 이 말씀은 영광스러운 승천을 하시기전 40 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복음서 읽기에서 가장 흔한 오류 중 하나는 이러한 명령들이 동시에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들이 제자들에게 전달된 문맥과 배경을 잘 연구해보면, 예수께서는 이러한 선교적 명령들을 다섯 번에 나누어, 다섯 번의 다른 말씀을, 다섯 번의 다른 장소에서, 그리고 다섯 번의 다른 강조로 주셨음을 명시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들은 동시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이고, 말씀의 내용은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마태복음부터 시작해서 여러 성경 본문을 잘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바인데, 이러한 명령들을 시간적 배열에 따라 질서 있게 주셨습니다. 이러한 본문들의 문맥을 살펴보면 분명한 어떤 질서가 있습니다.
(1) 부활 당일 저녁,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어떤 방에서(요 20:19) 혼란 상태에 빠져있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도마는 부재한 상태였고 유다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열 명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21에 의하면, 그 만남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선교에 대한 모델’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 팔일이 지나 도마도 함께 있었을 때에(요 20:26), 예수께서는 훨씬 발전된 명령을 주셨는데 마가복음 16:15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교의 엄청난 범위를 보게 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3) 대략 일주일 즈음 후에, 제자들은 걸어서 갈릴리에 있는 한 산으로 갔고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세 번째로 열한 제자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가장 자세한 명령 즉,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방법론을 주신 바로 마태복음 28:18-20에 기록되어 있는 그 명령이 바로 여기에서 주어졌습니다. 잠시 후에 이 위대한 언급에 대해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4) 대략 일주일 후는 예수님의 승천일이었는데 제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때 누가복음 24:44-49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자들이 선포할 선교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주셨는데, 간결한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죄 사람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선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될 것이다.”
(5) 마지막으로, 네 번째 말씀하셨을 때로부터 짧은 몇 시간이 흐른 뒤로 추정이 되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시내에서 벗어나 감람산으로(행 1:11)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도행전 1:8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선교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바로 선교의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선교적 모델, 엄청난 범위, 방법론, 메시지, 그리고 능력. 이 다섯 가지는 예수께, 그리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의 성경적 토대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자, 이제 마태복음 28:18-20로 돌아갑시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는 말씀을 주목합시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 삼는다는 말은 단순히 회심자를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제시에 대해 단순히 동의를 표했다고 해서 우리의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손을 들고 예배실의 복도를 걸어 나가 죄인이 드리는 간결한 기도를 드리는 이러한 것이 정점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믿게 된다 할지라도 선교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막 구주를 믿게 된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그분을 따르는 여정의 첫 발을 띤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자를 삼는 것, 나아가 ‘제자도’가 의미하는 전체적인 그림이 아닙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회심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 그들을 성장하고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양육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따르는 제자를 낳는것이 제자삼음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진실되다는 것을,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통해 나타내게 되는데 그들이 생각, 행동, 그리고 세계관이 바뀌는 것을 통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자라는 정의를 이렇게 내려봅니다: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속적으로 닮아가는 자.
그가 기쁨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은 성경말씀, 기도, 그리고 성령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양식을 공급받는 삶이고,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삼음은 어떤 성취보다는 하나의 좁은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제자도가 의미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지난 삼년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사셨고, 동행하셨으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날마다의 경험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부인해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쳐주었고 그분을 따르고 함께 교제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했을 것인데 이는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해 동일하게 행하여야 할 것이었습니다. 제사삼음의 깊은 면을 생각해 보기위해 사람들을 제자 훈련시키는데 관련된 세 가지의 다른 중요한 국면을 생각해 봅시다(마 28:18-20):
(1) ‘찾아 가서’-복음을 거의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2) ‘데리고 와서’-그들을 그리스도와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인데 이는 세례라고 하는 외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3) ‘변화시켜서’-그분의 말씀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과거의 세계관, 도덕적 행위를 변화시킴으로 삶의 변화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삼음에서 중요한 이 세 가지를 좀 더 생각해 봅시다.
(1) 찾아가서: “가서”. 제자삼음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나가서 아직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아마도 복음을 들을 기회가 아직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장에서 ‘가라’가 처음 언급되는 것은 제사삼음에서 이것이 첫 단계임을 보여줍니다. 복음이 알려지고 믿어지는 곳에서, 알려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곳으로 전해 세상의 모든 족속들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 믿는 자들의 의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데리고 와서: “세례를 주고”. 이것은 새신자들을 그리스도와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로 이끌어들이는 것으로, 세례를 통해 증명됩니다. 예수께서는 세례식을, 마음의 어떤 변화도 없이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마술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교회들의 전통에서는 이렇게 세례식을 이해함으로 곁길로 나갔습니다. 그것보다 세례란 회개하고 믿은 구원의 경험을 강화시켜주는 여정에 서 있는 극치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과 그분과 그분의 교회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표시입니다. 세례는 새로운 신분과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뚜렷한 외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암시들 때문에, 어떤 적대적인 문화권에서는 세례로 인한 반작용에 대한 우려로 세례를 미루는 새 신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적대적인 불신자들이 세례의 이러한 심각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이 사람은 이제 삼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갔음을 증명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세례 시에 언급되는 것은 구원의 경험에서 성 삼위 하나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은혜의 근원이시고, 아들 예수는 은혜의 수여자이며 성령은 그 은혜를 적용시키는 분이십니다. 삼위께서는 이일을 조화롭게 행하심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속의 자리로 데려오십니다. 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의식은 삼위 하나님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으로, 새 신자들에게 이제는 그들의 충성을 받아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는 한 영혼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를 이루는 가운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변화시켜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 제자삼음은 믿음의 시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그에 뒤따르는 경험으로 족한 것도 아닙니다. 새 신자가 그의 새로운 믿음가운데서 계속 배우고 자라가기 위해 필요한 가르침의 과정을 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영적인 형성”과 같다고 보기도 합니다. 무엇이라 부르든, 중요한 것은 중단 없는 성장의 경험입니다. 그 새신자의 세계관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의 삶의 방식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 목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덕적 행위에 대한 자세도 온전한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뚜렷할 때, 그 신자는 이제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게 되고 자신이 밟은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게 됩니다. 가르침은 궁극적인 목표를 갖습니다. 바로 순종인데 이는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새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지켜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것 중에서 그들은 큰 두 계명(마 22:37-40)을 지키며 살아야 하고, 큰 긍휼(마 9:36)을 베푸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신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성장의 경험들을 갖게 해줍니다. 이것이 왜 믿는 자들이 지역교회에 소속되어야 하는지의 이유입니다(그리고 왜 이 본문을 어떤 사람들이 “교회 설립” 명령으로 보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왜 선교사들이 세계 각처에서 성경학교와 신학교들을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왜 각종 세미나, ----, 교회에서의 훈련, 그리고 수많은 기독교교육 사역들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성장은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는데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의 교제를 가장 용이하게 해주는 곳은 바로 지역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함축적인 의미에서 지역 교회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제자삼음으로 인한 하나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경박하거나 진실된 결과 두 가지가 다 가능하겠지요? 그러므로 이 세 가지의 요소들-가서, 세례주고, 가르치는-은 모든 족속을 제자삼음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들입니다. 모든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삶은 진정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삼음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삶의 변화 입니다. 변화된 개개인의 삶은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문화를, 그리고 심지어 나라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변화된 삶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지상명령 성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많은 경우에 “개종자”들이 “제자”대신 만들어 졌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교회들은 생각과 행위들이 변화되지 않은 구성원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런 결과로 인해 영적으로 냉담한 소위 “신자들‘은 빠르게 역기능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됩니다. 그들은 변질된 교리에 빠지고, 이단, 사교집단의 포획 대상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전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경박한 회심의 경험자들입니다. 이 슬픈 사실은 세계 곳곳의 교회에서 재난의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어떤 사역들의 결과보고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합니다. 수많은 회심자들, 풍성한 교회 개척 운동들의 보고를 듣는다 해도 만약 그들이 변화된 삶의 실체를 보여주는데 실패한다면, 그러한 보고들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경박한 회심자들과 부풀린 통계수치들은 단지 거짓된 결과를 조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제자삼음에 있어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과정들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그들은 최후의 목표로서 변화된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기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만이 모든 족속가운데서 의도된 ”제자 삼음“의 결과가 타나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죄로 가득한 사회가, 문화가 그리고 타락한 공동체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결론
제자 삼음을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론과 전략의 왕도는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 바람직한 일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들을 고려한다면, 제사삼음을 하나의 일관된 공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세계 각처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창조적인 신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론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라고 해서 다른 문화에서도 여과 없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문화는 그 자신에게 적절한 제자삼음을 위한 적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자삼음을 위해 가장 탁월한 곳은 지역교회와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남은 과제는 중차대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족속을 향해 침투하고, 끌어들이며, 그리고 변화시키는 일은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의 과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들과 자원들을 선용하고,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의존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복음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자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 모든 족속을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 만약 우리가 진정 그렇게 하기를 소원한다면!
Dr. Marv Newell
He is the Executive Director of CrossGlobal Link, an association of mission agencies, formerly known as the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IFMA).
번역 및 통역 : 정희경 선교사 (서울다문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