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제국주의 침략과 문화대혁명의 시련에도
중국기독교, ‘선교중국 2030’ 향해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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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13년 신약성경을 완역하고, 동료 윌리엄 밀른(William Milne)과 협력 끝에 1819년 구약 번역을 완성, 1823년 말라카 영화서원(英華書院)에서 완성된 중국어 성경 《신천성서(神天聖書)》를 출판하는 문명사적 업적을 남겼다. 또한 중영·영중 사전인 《화영자전(華英字典)》을 편찬함으로써 중서 언어 소통의 다리를 놓았다. 1865년,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가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CIM)는 중국 선교 역사에 가히 혁명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의 선교 철학은 당대 서구 중심적 우월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영국식 의복과 문화적 특권을 내려놓고, 중국인과 똑같이 변발(辮髮)을 하고 중국옷을 입으며 그들의 음식을 먹을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CIM 선교사들은 서구 동료들로부터 조소 섞인 ‘피그테일 선교단(Pigtail Missionaries)’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는 복음이 특정 서구 문명의 옷을 벗고 현지 문화의 폐부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현대 선교학의 핵심 개념, 즉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가장 위대한 선구적 모델이었다. CIM은 서구 세력이 미치지 않던 중국의 깊은 내륙까지 과감히 전진하여 민중의 삶 속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이 찬란한 헌신의 역사 이면에는 뼈아픈 구조적 한계와 어두운 유산이 공존했다. 19세기 서구선교는 대영제국의 포화가 동반된 아편전쟁(1840년, 1856년)과 그 결과로 맺어진 난징조약, 톈진조약 등 불평등조약의 보호막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역사적 원죄를 안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눈에 기독교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영토 강탈, 문화적 식민주의의 ‘종교적 첨병’으로 비추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민중적 분노와 문화적 이질감은 결국 1900년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Boxer Rebellion)이라는 처절한 기독교인 학살 사건으로 폭발했다.
역사적 성찰의 교훈을 돌이켜볼 때, 중국 사회와 공산당 정부가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향해 품고 있는 깊은 불신—기독교를 외국 세력의 침투 수단으로 보는 ‘양교(洋敎)’ 프레임과 국가 안보 차원의 통제 본능—은 바로 이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적 외상(外傷)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선교를 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영혼 구원의 열정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이 유구한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상흔을 깊이 헤아리는 역사적 안목이 선행되어야 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모든 외국 선교사가 차례로 추방되고, 문화대혁명(1966~1976)의 혹독한 종교 말살 정책을 거치면서 세계교회는 중국기독교가 종말을 고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건물과 제도가 파괴된 자리에서 오직 성령의 역사와 가정교회(House Church)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폭발적으로 자생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조치 이후 지상으로 드러난 중국기독교의 규모는 수천만 명에 달했다. 국가의 통제 받는 관제 교회인 삼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 Three-Self Patriotic Movement)과 신앙의 순수성 및 독립성을 고수하는 가정교회라는 독특한 이중구조 속에서, 중국기독교는 마침내 세계선교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러한 양적·질적 성장의 정점에서 탄생한 거대한 선교학적 흐름이 바로 ‘선교중국운동(Mission China Movement)’이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이 운동은 1940년대의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비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이 비전의 역사적 뿌리는 복잡하다. 1920년대 산둥(山東)성에서 발원한 예수가정(耶穌家庭, Jesus Family)이 처음으로 서쪽 이슬람권 전도 비전을 품었고, 이후 분리된 서북영공단(西北靈工團, Northwest Spiritual Movement)이 이를 계승했다.
1940년대에는 산시(陝西)성 펑샹(鳳翔)의 서북성경학원(Northwest Bible Institute) 마패선(馬培萱) 목사를 중심으로 1943년 부활절에 변전복음단(遍傳福音團, Back to Jerusalem Evangelistic Band)이 공식 결성되어, 실크로드를 따라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1949년 공산혁명의 격랑 속에 이 선구적 사역은 강제로 중단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선교중국운동은 이 역사적 비전을 현대화·조직화하여, “중국교회가 더 이상 영적·재정적 원조받는 수혜국이 아니라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파송국이 되겠다”라는 담대한 선언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2007년 한국중국선교협의회를 결성되면서 선교중국운동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으로 제시됐다. 이어 중국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중국 2030의 비전’(2030년까지 2만 명의 중국인 선교사를 열방으로 파송한다는 비전)으로 구체화했다. <계속>
중국인 사역자 쑨빈(중국을주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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