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글쓰는 그리스도인>(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김기현, <글쓰는 그리스도인>(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김기현, <글쓰는 그리스도인>(성서유니온선교회, 2009)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가난이다.

“더 나아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다. 큰 죄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가난이라고 했다. 가난 중에도 제일 위험한 가난이 생각의 가난이라 했다. 스캇 펙은 더 강력한 단어를 사용한다. 바로 원죄다. 스캇 펙은 인간의 원죄를 '게으름'으로 규정한다.” (p. 61)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무슨 죄인가?' 서평자도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이즘엔 생각 없이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듯하다. 삶의 분명한 목적이 없기에 유튜브나 인터넷 서핑을 하며 소일하는 자들이 많다. 선교현장의 대다수 젊은이들도 그러하다. 생각하지 않은 것이 제일 위험한 가난이요 원죄 그 자체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좋은 예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의 최종 기획자였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참관했던 한나 아렌트는 그의 범죄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음이라고 하였다. (중략)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p. 61, 깊이 생각지 않고 살다가 오늘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좌·우 편향된 정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편 가르기다)

글쓰기는 생각하기다: “지성 계발, 논리적 사고형성(論理的 思考形成)을 돕는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지성 계발과 글쓰기가 만나는 접점이다. 미국의 이공계 대학인 MIT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무척 강조하고, 구내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왜 글쓰기를 중시하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놀랍다. 그런 걸 질문하는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은 사회의 리더가 될 사람이고, 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p. 62)

◇서평을 쓰라. 서평쓰기의 유익: 서평 쓰기의 실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글쓰기는 단연 서평이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독서가 생각의 내용을 채운다면, 서평은 그것을 체계화하고, 정리한다. 지성계발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이란 것이 그저 지금부터 '생각하기 시작!' 이라고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생각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 진공상태에서 생각할 수 없다.” (p. 64, 필자 강조)

서평자는 5, 6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공부하였던 지식이 체계화되고 정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때 늦은 깨달음이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각성(覺醒)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할렐루야!

“글을 쓸 때는 항상 뇌를 풀가동 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사고력이 향상된다.” 그렇지만 요즘 휴대전화 문자나 개인 홈피의 대략 산만한 글을 쓰는 것은 그리 큰 도움이 못 된다. 주제를 제시하거나 자유로운 글이라도 써보면 간단치 않다. 논리와 내용, 문장을 갖춘 글을 쓰면서 치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장력을 키우면 독서 능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p. 63, 필자 강조)

제대로 된 선교서신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내용과 문장을 갖춘 글을 기대한다. 서평자는 평신도 집사 시절부터 여러 선교사들을 후원하며 수많은 선교서신들을 읽었다. 여러 선교(보고)서신 중에는 내용과 문법 나아가 철자법도 안 맞는 글들이 많다. 서평자는 이것을 의식하며 선교서신을 쓸 때 바울 선교사의 서신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쓰고 있다.

“무릇 모든 학문의 기초는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책 한 권 바로 읽지 못하는데 다섯 수레를 읽은들 무슨 소용 있을까. 오독과 왜곡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곁에 두고 아끼며 읽고, 몇 번이고 겹쳐 읽으면서 우리 정신은 자라게 된다.” (pp. 65-66, 필자 강조)

“그럼 왜 서평이 지성 계발을 원활히 하는 데 유용한가? 서평을 쓰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책을 대충 읽어서는 단언컨대 쓸 수 없다. 공격적으로 읽지 않으면 책을 잘 읽을 수 없을뿐더러 막상 서평을 쓸라치면 앞이 캄캄해진다.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밀하게 읽고, 거저 맞장구치면서 읽지 않고 대화하면서도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자연히 지성이 활발해지게 된다.” (p. 66, 서평쓰기를 한 자만이 깨닫는 진리)

필자는 매주 1편 서평쓰기가 목표다. 솔직히 서평 1편을 쓰기 위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먼저, 책을 촘촘히 읽는다. 작가의 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정독, 재독한다. 서평을 전 세계 선교사 단톡방, 페이스 북에 올릴 때마다, 두렵고 떨리기도 한다. 책의 저자가 내 서평을 읽고 빙그레 미소를 지을 정도의 서평을 쓰는 것이 1차 목표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쓴 나의 서평을 읽은 10여 명의 저자들로부터 큰 격려를 받았다. 어떤 저자는 “선교사님의 서평이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 주신 것 같습니다”고 고백하였다.

“서평을 많이 읽으라. 이는 로이드 존스도 말한 바 있다. 조금 짧은 신문의 서평이나 좀 더 긴 잡지의 서평을 읽으면서 독서 지존들과 서평 고수들이 어떻게 쓰는지 관찰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책의 여백이나 본문 사이에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인상과 단상을 놓치지말고 책에다 메모하라. 그것이 짧든 길든 개의치 말고 적어두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평이 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단평이다. 책 뒤표지에 추천하는 짧은 글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것이 훌륭한 서평 쓰기의 시작으로 최상이다.” (pp. 66-67, 서평자는 저자의 이 충고를 실천하고 있다).

◇나가는 말(결론): “크리스천 작가(author)는 창조주(Author)의 일을 대행하는 자”

“선교서신은 오로지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가 쓰는 ‘독특한 문학 장르’이다”(배안호 선교사)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사 50:4).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작가(author)가 된다는 것은 창조주(Author)가 그리하셨던 것처럼 창조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말로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이 되시고, 기록된 언어와 그 집을 자기 존재로 삼으셨다. 그것이 성서이다. 하나님은 성서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은 말과 글의 창조자이시다. 하나님은 말과 글인 성서가 되셨고, 성서다. 하나님은 말이고, 글이다. 작가는 하나님의 일을 대행한다. (pp. 20, 21,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대행자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평생학습자’로서 끊임없이 배우는 제자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전권대사(ambassador)이다. 하나님의 작가로서 글을 쓰는 자이다. 신약성경의 절반은 선교서신이다. 선배 바울 선교사의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에는 분명코 선교서신을 쓰는 것도 포함된다. 선교서신은 단순한 선교보고/기도(혹은 선교비) 요청서가 아니다.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만이 쓰는 독특한 문학 장르이다. 선교서신 쓰기는 선교사의 특권이다.

“왜 글을 쓰는가? 아니 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나님이 그리하고 계시니까. 그리하라 하시니까. 내 안에 주체하지 못할 생명과 기쁨이 있으니까. 그리고 글 쓰는 것이 내게 생명이고 기쁨이니까. 내 글을 읽는 소수의 독자들이 내가 누렸던 것을 동일하게 경험하니까.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p. 21)

배안호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서평 후기

서평자(필자)는 10여 년 전에 김기현 목사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을 거듭 읽으며 서평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그 후 어느 날 파라과이에서 새벽기도시간에 주님은 ‘선교사들을 위한 글쓰기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즉각순종(卽刻順從)’! 저의 삶의 모토대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서평을 쓸 때마다 저자의 깊은 속마음과 뜻을 알아차리며 대화하는 느낌이다. 서평쓰기를 탈고할 때마다 ‘소확행’의 기쁨을 누린다. 이 지면을 빌어서 김기현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배안호 영국 선교사(Peterahb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