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가 개념 중심의 이론이 아닌, 현장 중심 혹은 실천 중심인 ‘몸의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몸의 신앙을 가질 때 선교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엔 이주민 선교가 한갓 흘러가는 시대적 화두요, 과시적 이벤트(event)로 끝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왜 이주민 시대의 선교인가’에 대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총체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가장 기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류 최초의 재앙인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가 창세기 10장에 있고, 그때만 해도 그들의 언어와 말은 하나였다. 그러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후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온 지면에 흩으셨다. 이후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구속사적, 언약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기 시작하셨고,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심을 보게 된다(창 12:3, 롬 11:11~12, 계 5:9~10).
앤드류 윌스는 ‘기독교 역사 속의 이주’라는 그의 책에서 아브라함의 이주와 그 이후 이방인의 구원 역사(갈 3:8)와 포로 시대에 선지자들의 메시지(사 49:6)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이방인에 대한 사역의 확대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경을 총체적인 이해로 이끌고 있다. 그래서 사복음서의 끝장마다 예수님의 선교적인 명령으로 마무리하고 있고(마 28:18~20, 막 16:15, 눅 24:47~48, 요 20:21), 더 나아가 주의 재림을 앞두고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땅끝에 흩어진 종족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을 명시하고 있다(마 24;14, 행 1:8).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이 15개의 지역에서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였는데, 흩어진 종족들이 바벨탑 사건 이후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인해 하나가 된 최초의 사건이다. 또한 아브라함을 통해 이미 주신 선교적 명령(창 12:3)을 다시 회복하고 활력을 제공해 준 계기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상교회가 세워진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의도와 선교적 명령을 등한히 했으므로 여러 문제의 발생과 핍박으로 흩어지게 되었고(행 5~6장, 행 8:1~8), 결국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 교회(행 11:19~21, 13:1~3)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다시 선교적 명령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 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바울을 통해 땅끝까지(로마) 복음을 전하는 미완성의 역사적 기록이 바로 사도행전이다(행 28장).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사도행전 29장 이후의 하나님의 선교의 이야기에 대해 기록을 해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계속>
김영휘 목사
KWMA 운영이사
시니어선교한국 실행위원
서울남교회 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