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정윤 선교사
▲故 김정윤 선교사 ⓒ런던제일장로교회 홈페이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1985년부터 2019년까지 간호 선교사로 활약한 ‘우간다의 나이팅게일’ 김정윤 선교사(80)가 2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김정윤 선교사는 우간다에서 교회와 간호대학, 병원 사역을 하면서 병원 교직원과 간호대학 학생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또 현지 교도소 사역 등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독신 선교사로서 평생을 바쳐 우간다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김 선교사는 1942년 충남 대덕군에서 출생, 6.25전쟁 이후 동네를 찾은 미국인 여 선교사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1963년 서울 경동중앙교회 교육전도사를 시무하고, 1965년 서울장로회신학교 평신도 신학과정을 마쳤다. 1970년 전북 군산간호대학의 전신인 개정간호학교 졸업, 1971년 부산 일신산원 수료 후, 그해 개정간호학교 전임강사로 교편을 잡았다. 1973년에는 단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김정윤 선교사는 34년간 우간다에서 독신 간호 선교사로 활동하며 전인 구원 사역을 했다.
▲김정윤 선교사는 34년간 우간다에서 독신 간호 선교사로 활동하며 전인 구원 사역을 했다. ⓒ런던제일장로교회 홈페이지

김 선교사는 미국 필라델피아 중앙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고, 1974년 미국 필라델피아 세인트 아그네스 병원, 1975년 롤링 힐 병원(현 아인슈타인 메디컬센터 엘킨스파크 분원)에 근무했다. 1975년부터 1984년까지는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의료원에서 한국인을 돕는 보건진료소의 간호사로 일했다.

한국인 부흥집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뒤에는 아프리카내지선교회(AIM) 뉴욕 본부에서 훈련을 받고, 1985년 3월 한국외항선교회·한국월드컨선선교회, 연동교회 파송 선교사로 우간다로 떠났다.

김정윤 선교사의 빈소
▲김정윤 선교사의 빈소 ⓒ페이스북

당시 우간다는 수십 년간 지속된 정치적 불안정에 따른 학살, 기아, 각종 질병과 에이즈, 외국인 추방 등으로 혼돈과 암흑의 땅이었다. 김 선교사는 우간다 아루아 지역 성공회 마디웨스트나일 교구에 속한 쿨루바 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병원 인근에 위치한 성공회 신학교의 영국 선교사들은 현장을 철수하고 현지인 직원들은 살해된 상황이었고, 병원 시설이 열악해 벌레가 창궐했다. 수술실 천장은 뚫려있고, 일반병실은 지붕만 덮인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김 선교사는 진료와 간호교육 등 의료사역과 기도, 전도, 영성훈련으로 전도자 양육 사역을 함께 진행했다. 1993년에는 정부로부터 간호학교 인가도 받았다. 1993년부터 2019년까지는 골리 지역 네비교구 산하의 골리, 좀보, 파트워트, 냐리에기파쵸라 등 4개 보건소를 총괄하여 건강검진과 이동진료, 의료전문 교육, 장학사역, 고아 사역, 교도소 사역 등 전인 구원 사역을 펼쳤다.

1991년 대한기독간호사협회 후원 선교사로 허입된 김 선교사는 1970년 문교부장관상, 1982년 펜실베이니아주 간호협회 간호원상, 1993년 서재필기념재단 봉사상, 2005년 언더우드선교상, 2011년 대한기독간호사협회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연동교회 주관으로 입관 예배는 3일 오후, 발인 예배는 4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드려졌으며, 김정윤 선교사의 유해는 경기 남양주 연동교회 부활의동산에 안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