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파견된 감리교 최초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120주년 기념예배와 기념비 제막식이 오는 3일(미국 현지시간) 아펜젤러의 고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사우더튼에서 진행된다.

기념예배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고향교회인 임마누엘레이디교회에서 열리며, 곧이어 아펜젤러 선교사의 부모와 형, 동생이 묻힌 임마누엘레이디교회 인근 가족묘지로 이동해 제막식이 거행된다. 이번 행사는 미국 엘리콧시티의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가 주최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워싱턴 세선선교학교(WWMA)가 후원한다.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린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제물포에서 대판산성주식회사의 구마가와마루호를 타고 가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6월 11일 순직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자신의 조사이자 비서인 조성규(조한규)와 목포 집으로 데려다주려던 한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기 침몰하는 배에 다시 뛰어들었다가 결국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에 대해 “그동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펜젤러 선교사의 고향과 고향집, 고향교회,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이 묻혀 있는 가족 묘지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진행되는 첫 번째 공식 행사”라며 “아펜젤러 선교사의 가족묘지에 순직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의미 있게 세워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복음의 빚을 진 한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다수 참여해 한국 감리교회와 조선의 근대화에 헌신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섬김과 희생을 기릴 예정이다. 또 아펜젤러 선교사 후손 중 한 명인 쉴라 플랫 여사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념비 제작은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 박대성 목사가 제작 의뢰부터 설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예산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천연회가 전액 부담했다.

박대성 목사는 한 언론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우리 민족을 향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의 헌신적 삶을 기념하며 널릴 알릴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며 조금 먼 거리이지만 관심 있는 많은 분의 참여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기념비 뒷면에는 박대성 목사가 초안을 작성하고,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 존 니더하우스 임마누엘레이디교회 담임목사, 후손 쉴라 플랫 여사가 감수한 다음의 글이 새겨졌다.

아펜젤러기념사업회
▲한국에서는 지난 6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아펜젤러 순직 119년 추모예배가 드려졌다.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아펜젤러기념사업회

“1858년 이곳 사우더튼에서 태어난 아펜젤러 목사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레이디 교회에서 신앙을 키웠다. 1885년 뉴저지주 드류신학교를 졸업한 후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 후 전도자,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품을 가진 교육자, 편집자, 번역자로 한국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1902년 한국어 성경번역을 위해 배를 타고 가다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한국교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전히 한국 감리교 신앙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아펜젤러 목사의 위대하고 희생적이었던 삶을 기리고자 한국의 감리교인들이 이곳 가족 묘지에 정성과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다.”

2021년 11월

“Rev. Henry Gerhard Appenzeller was born in Souderton, Pennsylvania on February 6, 1858. Along with the rest of his family, he was an active member of Immanuel Reformed Church (now known as Leidy’s Church) throughout the time he lived at home. After graduating from Drew Theological Seminary in Madison, NJ, he arrived in Korea in 1885 as the first Methodist missionary. He took the lead in saving lost souls by sharing the Gospel as an evangelist and missionary. He also had great influence on the modernization of Korea as an educator, editor, and translator. In 1902, at the age of 44, Rev. Appenzeller died in a shipwreck while traveling to a meeting of the Bible Translation Committee. He is remembered as the father of the Korean Methodist Church, and his life and teaching are a great legacy to the Korean church. The Korean Methodists dedicate this monument at his family cemetery to commemorate Rev. Appenzeller’s life and dedication.”

November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