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 보니까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엄마를 보내주었다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젊은 날에는 ‘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깨닫지 못했다. 항상 우리 곁에서 늙으시지도 않고 건강하게 사실 줄만 알았지 여기저기 아프신 곳도 많아지고 노쇠하신 모습을 보니 가슴이 저며 온다. 앞으로 하나님이 몇 년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지 모르겠지만, 필자와 함께할 시간이 길어야 10여 년밖에 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60이 넘어 철이 드는 것인지 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도 크다는 것을 요즘 따라 더 느낀다. 금년 초에 수술을 하시고 집을 두 달 정도 비우신 적이 있는데, 그때 다시 한번 어머니의 벽이 얼마나 든든한 산처럼 크게 와닿았는지 모른다.
필자가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우리 예전 풍습과는 너무나 달라진 것 같다. 요양병원이 도입되기 전만 해도 시부모님이 아무리 중병에 계신다 해도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치료받게 하였으며,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대소변 받아내며 모시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가정이었다. 과연 우리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현상에 젖어 있는 것이 성경말씀과 맞는 것인지 한 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성경말씀에 네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믿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요양병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무작정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우리 믿음의 가정들은 생각해보고, 모실 수 있는 데까진 모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인하여 1년이 넘도록 면회 한번 자유롭게 못 하다가, 얼마 전부터 보름 간격으로 비닐 막 너머로 얼굴만 10분 동안 면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손 한번 잡아 볼 수 없으니 거기 계시는 부모님이나, 얼굴만 잠시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자식이나 가슴에 얼마나 피멍이 들겠는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필자의 아주 가까운 분도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성심 부산소망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