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동물의 다른 점이 사람은 생각하고 앞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비록 오늘 죽을 만큼 힘겨워도 내일의 희망을 품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가꾸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하다. 오늘만 ‘더 편하게’ ‘더 풍족하게’ 살고자 하는 생각을 늘 품고 살기 때문에 내적인 만족을 채우지 못한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마음과 정신적으로 공허함에 휩싸여 본인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 부모님 시대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나 내적 만족도는 풍요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을 사는 많은 현대인은 세상 모든 기준을 육감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 말고는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차를 타고, 남보다 더 넓은 집에 살며 명품 브랜드 옷을 입어야 중상층에 속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져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사람은 정신적인 만족을 얻고 내적인 만족에서 삶의 행복이 우러난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그만큼 피폐해져 있어 자기 삶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고, 내일이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느끼고 더욱더 나은 삶을 찾아 나가야 발전이 있고 만족을 얻을 것인데 외적인 만족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니 공허함만 더 든다. 마음속은 빈 창고이기 때문에 항상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오늘날 세태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1인당 GNP가 3만 불이 아니라 5만 불이 되어도 정신적으로 민족을 얻지 못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오늘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내일도 모레도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어렵다. 죽을 한 그릇 먹고도 행복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풍요로운 삶 속에서 마음껏 먹고 마셔도 나는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스로 행복의 기준을 제대로 알고 개개인의 내적인 만족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필자는 생후 6개월 때부터 장애인이라는 굴레에서 살고 있다. 불행하다고 여긴다면 예전에 인위적으로 생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적인 갈등 때문에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어서 속히 이생이 마감되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끊을 수도 없고 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때부터 달리 생각을 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밀어낼 수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내 삶의 몫으로 받아들였다.
이성심 부산소망교회 집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부산지회 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