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를 졸업하고 유아동 미술교사를 하며 천진난만 아이들의 그림 지도에 푹 빠졌다. 우여곡절 인생을 살면서도 꿈과 희망이 있어 지치지 않던 그녀 앞에 예고 없이 고난 길이 펼쳐진다. 7세 때부터 통영의 푸르른 앞바다, 고향 마을의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 온 그녀가 30대 초반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다. 100일 새벽기도 제단을 쌓으면서 성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후 미대 교수가 되기 위해 5대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화 과정을 그만두고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나님께 받은 미술적 재능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영남대학교 미술치료학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술치료학 외래교수이자 미술치유선교 사역자로, 이제는 미술 작가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 영미(永美) 김연재 작가를 만나 최근 인터뷰했다. 작년 11월에는 동양북스 갤러리 2층(카페 스케치북)에서 50년 가까운 세월 그가 받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은혜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한 추상화, 원상화 등 30여 점을 전시한 초대전을 열기도 했다.
ㅡ미술치료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왔다.
"2001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미술치료학 외래교수로서, 또 김연재연구소·엘 대표로 사회복지 마인드를 가지고 미술치유 활동을 해왔다. 미대를 나와 사회복지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고 사회복지 일에 내가 분명히 필요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사실 제 핏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회복지 마인드가 흐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님은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물심양면으로 도와 오셨다. 그 영향인지 제 석사논문 주제도 부적응 아동을 위한 집단미술치료이고, 박사논문 주제도 사회 부적응 성인 남성을 위한 미술치료사의 재양육 경험에 관한 존재론적 탐구를 다뤘다. 하나님께 받은 미술적 재능과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려는 성향 때문에 미술치료 영역은 나에게 운명이었다."
ㅡ미술치료사로서는 어떻게 일을 했나.
"김연재연구소·엘에서 해결중심의 단기 미술치료 전문가로 활동했다. 투사그림검사를 적용해 2시간 동안 상처의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하고 코칭했는데 굉장히 효과를 보았다. 부모와 부부, 직장인을 비롯하여 자살 충동자, 가출 학생, 이혼을 생각하는 이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석하고 셀프코칭을 돕는 역할을 했다. 사회복지적 접근으로 타인의 문제해결을 위한 미술치료사 역할만 할 줄 알았는데, 타인의 미술치료를 하면서 내 안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ㅡ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어땠나.
"5남2녀 형제 중 다섯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봄방학 때 화상 사고로 끔찍한 경험을 했는데, 20여 년이 지나서야 여러 치료기법으로 회복과정을 거쳤다. 과거의 나는 방어기제가 너무 높은 사람이었다. 방어기제가 높은 이유는 상처 때문이다. 지난날의 삶은 너무나 고단해서, 마치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걸었던 길이 나의 길 같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이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임마누엘 하나님을 통해 내가 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고, 수많은 고비마다 돕는 사람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또한 성경말씀을 붙들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할 때 가장 큰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성경을 더 보면서 '이게 내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언제부터인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갖게 됐다."
ㅡ십자가를 주제로 한 초대전 '지저스 and 연재'전이 신선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8년 3월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십자가를 주제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그때 영감이 떠오르면 붓으로 그리는 시간도 아까워 손으로 물감을 찍어 바르고 질감을 표현했다. 일 년쯤 지난 작년 3월엔 우연히 뇌동맥류(뇌꽈리) 직전 상태가 발견돼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 고비를 넘기고 나니 마음이 더 급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 '내 인생이 너무나 감사한 인생이구나. 이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나' 쉼 없이 고민했다.
"지금까지 미술치료사, 사회복지사, 미술교육자로 살아왔다면 올해부터는 여기에 더해 진정한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진짜 작가는 관객들과 삶의 현장을 초월하여 그림으로 쉼 없이 감정적 교제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번 전시한 그림은 다시 전시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치료를 하는 20여 년 동안 1,000여 점을 그리고 700여 점을 전시했는데, 앞으로 계속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머리에서 계획하고 온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또 생업전선에 뛰어들면서도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 온 시간이었다."
ㅡ치매 예방을 위한 예술치료 활동도 준비 중이다.
"치매는 지난 삶에서 억압된 정서를 충분히 표현하고 위로받지 못한 상태에서 뇌가 노화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만 45세부터 55세까지 치매 예방 차원의 심리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기는 뇌가 많이 노화되지 않았지만, 치매가 올 위험시기를 무의식에 품고 있는 첫 번째 단계다. 한국치매예방예술치료협회도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활동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영혼을 구원하고 치료하며 재양육하는 일을 할 계획이다. 제 박사학위 논문도 초중고 또래집단의 학교폭력으로 학교 부적응자,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소외된 삶을 살던 청년에게 8년간 재양육 프로그램을 적용시킨 사례를 다뤘다. 지금 그는 바리스타, 운전면허증 자격증을 땄고, 수채화 화가로서 전시회도 열었다.
ㅡ앞으로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나.
"사람들의 꿈을 디자인하고 행복을 전하는 작가 '김연재'로 살고 싶다. 또 내가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치료한 것처럼 사람들이 마음을 치료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사람에게 터놓지 못하는 말 못할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준 마음치료사가 되고 싶다. 올해부터 상업 작품도 진행하여 수입이 생기면 하나님께 십일조, 감사헌금, 특별헌금을 드리는 기회가 늘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