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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여름,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혀를 찰 정도로 못된 짓만 골라 하는 '탕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제겐 밤 생활이 더 즐겁고 익숙했습니다. 당시 친구들은 제가 교회에 다녔다고 하면 '똘아이'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은 가끔 연락 와서 "우리 애들을 교회에 보내면 어떨까"라고 묻곤 합니다.
3G테크놀러지에 입사한 지 20년 차인 저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세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고, 23세에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이후 자녀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이전의 철없던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습니다. 시력 때문에 가고 싶던 해병대 특전사 지원이 좌절되고, 그나마 형사의 꿈에 가깝다고 생각한 의경을 지원하려다 역시 좌절되면서 결국 육군에 지원했습니다. 그러고 나선 하루는 충북 진천에서 군대 휴가 나온 친구 한 명과 또 다른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한 친구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화장실에서 싸움이 나 친구가 심하게 얻어맞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친구를 구하고, 똑같이 폭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더 많이 상해를 입혔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도망치다 곧 붙잡혔습니다.
당시가 IMF가 터진 직후인 1997년이었는데, 3명이서 합의금 1천만 원을 모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제 고등학교 은사님이 저를 변호해 주어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 손 벌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동네 어르신이 저를 보고 은행 대출을 받아 합의금을 빌려주었습니다. 빚 갚는 일이 절박했던 저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본가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인 3G테크놀러지에 지원해 바로 입사했습니다. 3개월 후엔 병영 특례까지 받으며 다녔는데, 빚은 1년 반 만에 다 갚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회사에서 드리는 정기 예배에 참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의 방탕한 생활은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일정 기간 이어지면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영섭 ㈜다가올 차장(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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