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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위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옆길로 샌다. 애써 다독이다가 어느새 잘난 척을 하거나(“세상엔 그거보다 힘든 일도 많아. 사는 건 원래 어려운 거야” 류의), 참고 듣다못해 결국 꾸지람을 하고(“야! 그만 징징대! 지겨워 죽겠네, 정말!” 류의), 역으로 신세 한탄을 할 때도 있다(“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엉엉” 류의). 관계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지는 일로 완성되거늘, 우리는 정작 타인의 마음을 위로할 줄도 모른 채 관계를 맺으며 산다.
직업 특성상 평소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생전 처음 본 나에게 절친한 사람에게도 하기 힘든 말을 꺼내놓는 사람도 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로 마무리되는 내밀한 사연을 들을 때마다 이걸 어쩌나 싶어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지혜 같은 게 있을 리 없어서 좋은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상대방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정보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저 이 말만 한다. “아이고…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영양가 없는 말에 상대는 위로받는다는 거다.
나는 힘들다고 말할 때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 상황이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를 때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각 없어 보인다. 어떻게 힘을 내야 될지 모르겠고 언제 괜찮아질지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그런 말은 폭력이 된다. 차라리 그럴 때는 “야, 진짜 열 받겠다!”, “완전 짜증 나겠네!”, “일단 밥이나 좀 먹어!” 같은 말들이 더 와 닿는다.
하지만 내 앞에 지옥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앉아 있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생이라는 세찬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멋진 말을 해줌으로써 그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건네는 말이라고는 내가 들었을 때도 기분 나빴던 말들뿐.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말든 잘난 척이나 꾸지람, 신세 한탄을 늘어놓게 된다.
어느 날 보노보노는 ‘곤란함’에 대해 고민한다. 보노보노는 문득 배가 고파지면 곤란하니까 늘 조개를 들고 다닐 만큼 곤란해질 것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하면서 산다. 그런 모습을 보고 너부리는 나중에 곤란해하면 될 걸 왜 지금 곤란해하냐며 쏘아붙이고, 포로리는 당사자보다 더 고민하며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데 반해, 야옹이 형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엇으로든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할 수 있겠지?
우리가 힘들어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들이미는 이유는 괴로워하는 것만큼이나 괴로워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어서일 거다. 얼른 문제가 해결되어 더 이상 답답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 마음. 적어도 내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들만 있어서 나 역시 그 에너지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 이런 이기심이 위로가 필요한 순간 딴짓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생각과 마음이 있다는 걸 망각하게 한다.
하지만 야옹이 형은 소심하고 걱정 많은 보노보노만을 위한 위로를 건넸다. 어차피 곤란해할 거라면 맘 편히 곤란해하라고, 언젠가는 그 곤란함도 끝날 거라며 마음껏 곤란해할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곤란해하는 게 취미 생활인 보노보노에게 이보다 딱 맞는 위로가 또 있을까.
심리학 실험 중에 ‘백곰 실험’이라는 게 있다. 실험군을 둘로 나눈 후 똑같이 백곰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단, 한 실험군에게는 이후 백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다른 실험군에게는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는다. 실험 결과, 백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 집단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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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중에서
(김신회 지음 / 놀 / 320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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