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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생물학적인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중에서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를 흥분하게 만들어 행복과 사랑을 느끼며 기분 좋게 만든다. 이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호르몬도 있지만, 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때로는 스스로를 병들어 죽게 만들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은 교감신경이 흥분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긴장할 때 분비가 된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많아지면 혈압이 상승하고 동공이 확대되며 심장박동수가 증가하는데, 자칫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 열등감이 폭발할 때 아드레날린도 많이 발산된다.

흔히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을 가리켜 ‘암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정신적인 발암물질을 만들어 자신도 결국에 병들어 죽게 하지만, 주변 사람까지 서서히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인생에 유익이 없는데도 남을 비난하되, 끊임없이 헐뜯고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또 중요한 일을 가지고 대들지 않으며, 엉뚱한 문제와 본질과 벗어난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악성 근성이 있다. 중요한 일에는 접근하는 과정이나 방법이 서툴다. 진정한 협력자라면 조직의 발전과 성공을 위한 디딤돌 역할, 가교역할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자신의 활동범위의 반경을 넓힐 것인가 좁힐 것인가에 주안점이 있어 정공법으로 대응하면 더 이상 어떤 곳에서도 적응할 수 없다.

아들러는 이들을 향하여 ‘비난이나 협박으로 타인을 지배하거나 울음소리로 지배하려 하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만을 위한 좁은 집을 짓고 문을 잠궈 버리며, 바람도 햇살도 신선한 공기도 차단시키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Adler, 1931)’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격한 감정과 공격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하다.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조종하려는 자체가 근본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비겁한 행위인가. 더 비겁한 행위는 자신은 절대로 앞장서지 않으면서 가장 만만한, 흔히 말하는 대타를 내세워 자기주장을 대변하도록 남의 등 뒤에 숨어 있는 자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조정하는 자체가 얼마나 옹졸하고 비겁한 인생인지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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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은 어떤 조직을 막론하고 꼭 한두 사람씩은 있게 마련인데, 누군가가 조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게 처리할 수가 있다. 그는 열등감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악용하려고 작정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분명하게 직면하도록 하는 역할을 누군가가 하면 된다.

인간은 열등감의 기능적인 작용을 계속할 때 더 높은 수준의 발달을 꿈꾸며 발전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발달과 성장의 배후에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열등감을 펼칠 때 우월해질 수 있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다. 이는 더 많은 창작의 노력과 열정, 도전 정신을 꿈꿀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을 제공해 왔다. 물론 열등감은 기능적인 과정에서 긍정적인 기능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정적으로 강화되기도 한다.

최원호 서울한영대학교 겸임교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