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예일대의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교수의 ‘알라(Allah)’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출판 되었는데 그 책에서 그는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지만 이해하는 방법이 조금 다른 것뿐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의 학문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학에서 철학과 고대 헬라어를 전공했는데, 그의 학사학위 논문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에 대한 연구였다. 포이어바흐의 대표작은 “기독교의 본질”인데 거기서 그는 “신은 인간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한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볼프 교수는 풀러신학교에서 해방신학과 초기 여성신학을 접하고, 공공분야에서 신앙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계속 철학을 연구했으며 이어서 튀빙겐 대학에서 “칼막스의 노동철학에 미친 신학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았다. 박사 후 과정에서는 “삼위일체와 성찬”이란 논문으로 바티칸공의회와 기독교연합을 위한 공식적 대화를 꾀했다. 그는 에큐메니칼 학자로서 신앙의 사회생활에서의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장황하게 그의 학문적 배경을 살펴본 이유는, 그는 결코 이슬람의 본질을 깊이 연구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자면 유명한 음악가가 물리학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말해볼 수는 있으나 그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것이 정설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학자들은 단순해서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것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니면,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덥석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슬람에는 “유익이 된다면 거짓말을 해도 좋다”는 타끼야(Taqiyya)라는 특수 교리가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슬람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경전인 꾸란조차 미화시켜서 번역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한글 번역 중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꾸란 2장 229절(최영길역)을 보면 “화해를 통한 두 번의 이혼은 허락되나”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아랍어 원문의 “앗탈라꾸 마르라타니”를 번역한 것이다. ‘앗탈라꾸’는 ‘이혼’이란 말이고 ‘마르라타니’는 ‘두 번’이란 말이다. 정직한 번역은 “두 번의 이혼은 허락된다”는 말인데 “화해를 통한” 이란 구절이 난데없이 삽입된 이유는 이슬람의 위상이 실추되는 것은 일단 막고 봐야 하겠다는 헌신적 배려라고 생각된다. 화해를 통해서 어떻게 이혼이 가능한가?

이런 것을 타끼야라고 한다. 충성된 무슬림 학자들일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타끼야를 통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슬람을 미화시키고 있다.

볼프 교수는 이슬람 학자들이 타끼야로 만들어 놓은 거짓 자료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참고한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이 숨기고 있는 이슬람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경전 꾸란의 원문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꾸란에서는 알라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1. 알라(Allah)는 진(Jinn)과 혈연관계가 있다.


진(Jinn)이란 꾸란에 등장하는 독특한 존재다. 천사와 인간의 중간 정도의 위상을 가진 존재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최영길 역은 이를 영마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들은 알라와 영마 사이가 혈연관계라고 꾸며대더라. 그러나 영마들은 자신들이 알라 앞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됨을 잘 알고 있노라.”(꾸란 37:158 최영길 역)

여기서 그런 말을 꾸며대는 ‘그들’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무함마드 주변에 살던 보통 아랍사람들로 보인다. 무함마드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아라비아 반도에 갑자기 등장하여 꾸라이시 종족의 신 알라를 유일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위 구절에서 보듯이 알라와 진은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왔다. 알라가 진과 혈연관계가 있다는 불특정 다수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통념은 알라가 진과 동일 수준의 신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2. 아랍인들은 진과 알라를 나란히 숭배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분(알라)과 나란히 진을 숭배하고 있다. 저것은 원래 알라께서 만드신 것이다. 또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알라께 아들이나 딸이 있다고 날조한다. 알라께 영광이 있으시라. 알라께서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초월하여 높이 계시는 분이다.”(꾸란 6:100김용선 역)

여기서 그분과 나란히 진을 숭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아랍인들이다. 그들은 대대손손 그렇게 살아왔다. 최영길 역은 여기서도 “그들은 알라께서 창조한 영마를 그분께 비유하여 거역하고 있다”고 번역하여 타끼야의 본을 보이고 있다. 아랍어 원문에는 “자알루(그들이 만들었다) 릴라히 (알라를) 슈라카(동료로) 알진나(진과)”라고 하여 ‘그들은 알라를 진의 동료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영어번역본들은 대부분 파트너(Partner), 혹은 동료(associate)로 번역하고 있으며 유수프 알리 역은 동등하다(equal)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무함마드 이전이나 동시대에 살던 아랍인들에게 “알라(Allah)는 진과 수준이 동등한 우상들 중의 하나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었다는 것을 꾸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3. 알라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이 꾸란 6장 100절 후반부에 보면 ‘알라의 딸’들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알라의 딸들이라는 말이 꾸란에 8차례나 언급된다(Q6:100, Q16:57, Q17:40, Q37:149, Q37:153, Q43:16, Q52:39, Q53:19~23). 물론 모두 알라와 그 딸들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형식으로 등장한다. 정말 알라와 그 딸들이 아무 관계가 없다면 왜 8차례나 언급하면서 극구 부인할까? 그런데 꾸란 53장 19~23절에 보면 놀랍게도 ‘라트(Lat), 우짜(Uzza), 마나트(Manat)’라는 알라의 딸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러면서 그것은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불러왔던 이름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아스마운 쌈마이투무하”라는 부분을 “불러왔던 이름, 붙여왔던 이름”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최영길 역은 여기서도 “고안했던 이름”으로 의도적인 오역을 하고 있다.

알라(Allah)는 무함마드가 소속되었던 아라비아 반도의 꾸라이시(Quraish) 족이 섬기던 종족신이었고 무함마드의 아버지 이름이 압둘라(알라의 종)였던 것을 보면 그 집안은 알라에게 충성스러운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드의 아버지가 탄생했을 때만해도 그 종족신 알라에게는 라트, 우짜, 마나트라는 세 딸이 있었다는 것은 아랍인들의 상식이었다.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장이었던 로버트 모레이 박사는 이슬람의 침략(Islamic invasion)이라는 책에서 “알라는 달신이고 남신이며 여신인 태양신과 결혼하여 출산한 아이들을 알라의 딸들로 불렀다”고 한다.

꾸란에 의하면 알라는 카바 신전이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라는 도시의 신(꾸란 27:91)이었다. 꾸란이 아랍어로 계시된 이유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진실로 우리는 꾸란을 아랍어로 만들었으니 이는 너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꾸란 43:3)” 꾸란은 솔직하게 알라가 꾸라이시 종족들의 여행(대상무역)을 지키는 신이므로 그들이 경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꾸라이시 족을 여름과 겨울에 안전하게 여행(대상무역)하도록 해주신 이 집(카아바)의 신에게 경배하도록 하라.(꾸란 106:1~3)”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의 주장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나타난 알라만 제대로 이해해도 세 딸을 두었던 꾸라이시 종족신 알라를 감히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고 착각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꾸란에도 천지창조나 아브라함이나 예수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지만 이들의 이름만 인용한 것이지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이런 견해에 현혹되어 순교자들을 위해 낙원에 아름다운 처녀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술 마시면서 그들과 침상에서 즐기도록 하는 아랍인들의 신 알라(꾸란 55:54~76)를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제 1계명을 범하는 죄가 될 것이다.

이만석 한국이란인교회 목사(http://www.4hi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