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한 중동 지역 전문선교단체인 중동선교회(이사장 조남흥 목사)는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동 땅에 우리보다 앞서 보내진 믿음의 일꾼들에 의해 31년 전 시작됐다. 1970~1980년대 중동 건설특수로 수많은 건설회사 직원, 건설근로자 및 상사 주재원 등은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이 부는 중동으로 떠났고, 그중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마치 가나안에 정탐꾼으로 파견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중동 땅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메마른 영적 황무지인 중동에 생명수 같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흘러넘치길 간절히 바라던 이들에 의해 1984년 중동선교회가 시작됐다. 중동선교회 초대 회장이자 명예이사장 두상달 장로, 현 이사진들, 본부장 홍계현 목사가 그렇고, 지난 30여 년간 중동선교회의 든든한 후원자들이 그렇다.
IS 사태로 올 한 해 중동 지역이 연일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31년 전부터 오직 중동 복음화의
한 길로 걸어온 중동선교회를 찾아가 한국교회 중동선교 방향과 전략을 물어봤다. 중동선교회
본부장 홍계현 목사(사진)는 1970년대 말 중동건설붐으로 일찌기 중동에 파견돼 일하면서
중동 땅을 가슴에 품었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최근 중동선교회 사무실에서 홍계현 목사를 만났다. 1979년 해외건설회사 직원으로 파견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에서 6년간 근무한 그는 자재 구매, 공항 및 비자 업무 등을 맡아서 단순 현장 근로자들과 달리 일찌감치 현지인들과 접촉하고 현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홍 목사는 “하나님이 사전에 저를 준비시켰다. ‘천국 장학생’으로 중동에 다녀온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도 되기 전 성경의 땅을 거의 다 돌아보았다.
현지에서 그는 다른 한국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이슬람의 ‘심장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대학 신축현장 내 캠프교회에서 예배드렸다. 하지만, 곧 공사가 종료되어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교회를 20년 전 한국에 재건한 것이 지금 홍 목사가 목회하는 신산본한마음교회다. 그때 중동에 함께 있던 교우들이 교회 장로들로 섬기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중동 건설 경기가 퇴조하며 중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멀어졌다. 중동선교를 하겠다고 하니, 교회조차 ‘무모하다’, ‘그 힘든 지역에 왜 나가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초교파 선교단체로 교단, 후원 단체, 기관의 든든한 배경 없이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어렵사리 파송해도, 현지 상황에 따라 심한 어려움을 당하고 추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열악한 재정 사정으로 본부 사무실도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본부 사역자도 자주 바뀌어 현지 선교사들의 행정지원이나 국내 선교동원이 원활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어렵고 힘들다는 중동 땅에 100여 명이나 되는 선교사를 파송했다. 지난 30년간 사역의 기반을 마련해 왔다면, 앞으로는 교육, 난민, 의료, 여성 등 전문인 사역으로 확대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올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사업회로부터 선교비지원단체상을 받게 되었다.
홍계현 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한 지 130년이 되는 해에 이 상을 받게 되어 큰 의미가 있다”면서 “사역 특성상 보안이 중요해서 음지에서 일해 온 사역자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는 파송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사역을 추진했다면, 이번 지원금은 선교회의 해외 프로젝트 사역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홍계현 목사는 중동선교회 설립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섬겨오다가 2013년 4월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본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홍보사역, 선교동원,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선교지 순회사역을 하며 선교사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점검하고 지원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지난 10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사업회로부터 중동선교회가 선교비지원단체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지난 31년의 중동선교회 역사를 되돌아보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감옥에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숙부의 아들이 소유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하십니다. 현실적으로 예레미야는 곧 멸망할 것인데 밭을 살 형편이 안 됩니다. 하지만 회복된다는 미래의 비전으로 밭을 삽니다. 우리 중동선교회가 시작할 때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무모했습니다. 이슬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때, 예레미야 32장의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말처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던 이슬람권 선교가 지금 열매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중동선교회를 지금까지 묵묵히 섬겨온 이사진과 기도의 동역자들에 감사합니다. 1세대들의 중동선교의 비전을 다음세대인 제2~3세대와 공유하는 것이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선교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무모해 보이던 일에 헌신하여 지난 30년간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는 중동에 대해 단순한 향수나 감상적인 차원이 아닌, 정말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현지에서 느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열정이 지금까지 우리가 묵묵히 이 일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중동을 많이 사랑하십니다. 그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가 아니면 할 사람이 거의 없어요. 서구인들에게는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피해의식 때문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또 오일달러로 부를 가진 이들은 같은 이슬람국가라도 이집트, 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경제적으로 빈약한 제3국의 무슬림들의 전도는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동에 가기에 딱 적합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성실해요. 과거 한국이 중동 건설 공사를 잘했고 한류, 경제 성장 등으로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등의 난민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6.25전쟁과 현재의 분단의 아픔을 전하면 쉽게 공감하며 일체감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중동에 부르셨구나’라는 확실한 소명감으로 이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했다면 할 수 있었을까요? 하다가 멈췄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20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믿음으로 중동에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중동 사역자들을 위한 2015 아부다비컨퍼런스가 지난 10월 말 열렸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선교회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극복했나요.
“처음부터 어려움을 각오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동선교 자체가 어려움이니까요. 다만, 초교파 선교단체라 특별한 후원 단체나 기관이 없이 매월 소액으로 후원하는 개미군단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정 기반이 열악해 사무실을 계속 옮겨 다녔어요. 본부사역자도 자주 바뀌었지요. 그래서 사역과 행정지원, 선교동원을 일관성 있게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힘든 건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선교사들을 계속 배출하는 것입니다. 예비선교사 훈련생 모집이 어려워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전보다는 상황이 낫습니다. 또 최근에 이슬람권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동선교회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 전략이 궁금합니다.
“중동에 선교사는 계속 파송하되, 소수 정예화하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선교단체뿐 아니라 한국선교단체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국내에 있는 현지인 개종자를 중심으로 국내 사역도 확대하려 합니다. 과거 무슬림형제단 출신으로 이집트 K대학을 나온 M선교사는 예수를 영접한 이후 중동선교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종교난민비자 1호를 받았습니다. M선교사 같은 무슬림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국내에 온 무슬림들을 변화시키면 이들을 본국으로 역파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한국에 경제부흥을 주신 목적입니다. 한국에 유입된 무슬림이 20만 명, 이 중 이슬람을 포교하러 온 무슬림 선교사는 2만 명이라고 하는데, 국내 무슬림 이주민 선교가 아주 효과적인 사역입니다. 이밖에 중동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선교동원을 확대하며, 프로젝트 사역을 각 단체와 연결시켜 지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선교사 자녀(MK)들이 부모들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이스를 구축해 온 현지 어린이 사역, 의료사역, 교육사역, 여성사역 등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IS 사태로 올 한 해 중동 지역이 연일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31년 전부터 오직 중동 복음화의
한 길로 걸어온 중동선교회를 찾아가 한국교회 중동선교 방향과 전략을 물어봤다. 중동선교회
본부장 홍계현 목사(사진)는 1970년대 말 중동건설붐으로 일찌기 중동에 파견돼 일하면서
중동 땅을 가슴에 품었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현지에서 그는 다른 한국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이슬람의 ‘심장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대학 신축현장 내 캠프교회에서 예배드렸다. 하지만, 곧 공사가 종료되어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교회를 20년 전 한국에 재건한 것이 지금 홍 목사가 목회하는 신산본한마음교회다. 그때 중동에 함께 있던 교우들이 교회 장로들로 섬기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중동 건설 경기가 퇴조하며 중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멀어졌다. 중동선교를 하겠다고 하니, 교회조차 ‘무모하다’, ‘그 힘든 지역에 왜 나가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초교파 선교단체로 교단, 후원 단체, 기관의 든든한 배경 없이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어렵사리 파송해도, 현지 상황에 따라 심한 어려움을 당하고 추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열악한 재정 사정으로 본부 사무실도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본부 사역자도 자주 바뀌어 현지 선교사들의 행정지원이나 국내 선교동원이 원활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어렵고 힘들다는 중동 땅에 100여 명이나 되는 선교사를 파송했다. 지난 30년간 사역의 기반을 마련해 왔다면, 앞으로는 교육, 난민, 의료, 여성 등 전문인 사역으로 확대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올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사업회로부터 선교비지원단체상을 받게 되었다.
홍계현 목사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한 지 130년이 되는 해에 이 상을 받게 되어 큰 의미가 있다”면서 “사역 특성상 보안이 중요해서 음지에서 일해 온 사역자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는 파송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사역을 추진했다면, 이번 지원금은 선교회의 해외 프로젝트 사역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홍계현 목사는 중동선교회 설립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섬겨오다가 2013년 4월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본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홍보사역, 선교동원,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선교지 순회사역을 하며 선교사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점검하고 지원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지난 10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사업회로부터 중동선교회가 선교비지원단체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감옥에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숙부의 아들이 소유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하십니다. 현실적으로 예레미야는 곧 멸망할 것인데 밭을 살 형편이 안 됩니다. 하지만 회복된다는 미래의 비전으로 밭을 삽니다. 우리 중동선교회가 시작할 때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무모했습니다. 이슬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때, 예레미야 32장의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말처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던 이슬람권 선교가 지금 열매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모든 것은 주님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중동선교회를 지금까지 묵묵히 섬겨온 이사진과 기도의 동역자들에 감사합니다. 1세대들의 중동선교의 비전을 다음세대인 제2~3세대와 공유하는 것이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선교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무모해 보이던 일에 헌신하여 지난 30년간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는 중동에 대해 단순한 향수나 감상적인 차원이 아닌, 정말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현지에서 느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열정이 지금까지 우리가 묵묵히 이 일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중동을 많이 사랑하십니다. 그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가 아니면 할 사람이 거의 없어요. 서구인들에게는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피해의식 때문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또 오일달러로 부를 가진 이들은 같은 이슬람국가라도 이집트, 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경제적으로 빈약한 제3국의 무슬림들의 전도는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동에 가기에 딱 적합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성실해요. 과거 한국이 중동 건설 공사를 잘했고 한류, 경제 성장 등으로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등의 난민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6.25전쟁과 현재의 분단의 아픔을 전하면 쉽게 공감하며 일체감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중동에 부르셨구나’라는 확실한 소명감으로 이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했다면 할 수 있었을까요? 하다가 멈췄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20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믿음으로 중동에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중동 사역자들을 위한 2015 아부다비컨퍼런스가 지난 10월 말 열렸다. 사진제공=중동선교회
“처음부터 어려움을 각오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동선교 자체가 어려움이니까요. 다만, 초교파 선교단체라 특별한 후원 단체나 기관이 없이 매월 소액으로 후원하는 개미군단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정 기반이 열악해 사무실을 계속 옮겨 다녔어요. 본부사역자도 자주 바뀌었지요. 그래서 사역과 행정지원, 선교동원을 일관성 있게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힘든 건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선교사들을 계속 배출하는 것입니다. 예비선교사 훈련생 모집이 어려워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전보다는 상황이 낫습니다. 또 최근에 이슬람권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동선교회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 전략이 궁금합니다.
“중동에 선교사는 계속 파송하되, 소수 정예화하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선교단체뿐 아니라 한국선교단체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국내에 있는 현지인 개종자를 중심으로 국내 사역도 확대하려 합니다. 과거 무슬림형제단 출신으로 이집트 K대학을 나온 M선교사는 예수를 영접한 이후 중동선교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종교난민비자 1호를 받았습니다. M선교사 같은 무슬림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국내에 온 무슬림들을 변화시키면 이들을 본국으로 역파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한국에 경제부흥을 주신 목적입니다. 한국에 유입된 무슬림이 20만 명, 이 중 이슬람을 포교하러 온 무슬림 선교사는 2만 명이라고 하는데, 국내 무슬림 이주민 선교가 아주 효과적인 사역입니다. 이밖에 중동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선교동원을 확대하며, 프로젝트 사역을 각 단체와 연결시켜 지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선교사 자녀(MK)들이 부모들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이스를 구축해 온 현지 어린이 사역, 의료사역, 교육사역, 여성사역 등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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