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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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선교사_azerikim@hotmail.com
(Wycliffe 유럽 디아스포라 자문위원/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소장)



1. 개요

UN 통계에 따르면 2005년에 1억 9천 백 만 명이 고향을 떠나 이동하였는데 이는 대략 브라질 인구와 맞먹고 인구 34명당 1명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이민 증가는 150%에 이른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근자에 소개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디아스포라(이민)는 인류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세계화의 역동성에 맞물려 세계적인 현상으로 부상되고 있다.1) 이런 현상 연구의 전문가인 풀러 신학교의 선교 신학자 제후한실(Jehu C. Hanciles)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역사동안 중요한 종교들이 이민과 흩어짐에 힘입어 그들의 입지를 공고히 해 왔고 그중 기독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소개한다.2) 그의 주장대로 라면 한마디로 기독교의 확장은 디아스포라와 함께 이루어진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로잔 디아스포라 이슈분과, 국제 선교단체(Wycliffe, Interserve, OMF등)들과 한국 선교계와 그리고 북미, 유럽, 서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각종 포럼과 선교대회 등에서  소위 이민자3) 로  구성된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4) 현상 에 대한 관심과 연구 활동이 고조되어 왔다. 특별히 2004년 태국에서 열린 로잔 포럼에서는 처음으로 7개 지역의 디아스포라 대표자들이 모여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비롯한 6개 항목을 논의하고 그 결과5)를 정리하여 발표함으로서 디아스포라 현상이 세계 복음화의 주요 이슈가 되었고 그 이후 후속 전략들이 만들어져서 오는 2009년 5월에는 각 대륙별 디아스포라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세계 포럼을 마닐라에서 개최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런 의미 있는 흐름에 편승해서 필자가 소속된 단체나 오늘 논의를 위해 모인 포럼등에서도 몇 년 전부터‘디아스포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략적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고 그 결과물로 여러 자료6)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발표된 내용들의 공통점은 이런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해 선교 동원 전략적 관점에 초점을 둔 논의들이었고, 시기적으로 보다 깊은 신학적, 선교학적 통찰은 다룰 기회가 부족하였다. 그런 면에서 오늘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하게 된 것은 시의적절한 시도로 보이고 이 논의가 그동안 제시된 다양한 실천방안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본 발제를 위해서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발표되었던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주요한 내용들을 정리 소개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마지막에 참고 문헌록을 첨부하여 개인별로 도움이 되도록 했다.

본 발제문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첫째, 전통적인 신학에서 보는 선교학적 관점을 지면상 다루기가 어려운 점이다. 그러므로 각자 가지는 신학의 관점들이 다른 것으로 인해 논의에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예상된다. 
둘째, 논의의 범위에 대한 한계설정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이다. 
셋째 논의를 위한 용어의 혼란이다. ‘디아스포라’와 ‘이민’은 같은 개념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구분 할 것인지, 디아스포라 현상을 신학으로 규정할 것인지 신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볼 것인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민 신학’과의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관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선교적 관점에서 구분할 것인가 등등이다. 
넷째, 최근 신학과 선교학에서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 이 새로운 사회학적 개념(이민, 디아스포라)들에 대해서 신학계의 정통주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자료가 부족하다.(이민 문제를 여전히 사회, 정치적인 이슈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토론에서 이민/디아스포라 현상을 신학적, 선교학적 이슈로 적극적으로 부각해서 적어도 한인 기독 공동체 안에서라도 지속적으로 인식의 전환 운동을 하기를 제안한다.

이 논의의 순서는 기독교 전파에 역동적 동인(Dynamics of Diaspora)으로 나타난 ‘디아스포라’ 현상의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다음으로 ‘디아스포라’ 현상과 관련한 최근에  발표된 신학적 견해들을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디아스포라 신학의 근거가 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시론적인 발제가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거나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오히려 논의 한계를 설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더 나아가 이 주제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후속적인 논의를 촉발하는 불쏘시게 역할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 ‘디아스포라’의 성경적 관점들

구약의 관점

디아스포라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는 신학자의 관점에 따라 견해 차이들이 있어서 본 발제에는 2007년 BIAM(British and Irish Association for Mission)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옥스퍼드 목회 과정 연구소장인 팀 나쉬(Tim Naish)의 견해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필요에 따라 다른 신학자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경우는 출처의 각주를 달았다.  
그는 구약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네 가지 사건(4E)7)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창세기 1-11장 사이에  추방(Expulsion), 아브라함의 부르심(Evocation), 출애굽 사건(Exodus), 그리고 바벨론 포로와 귀환(Exile)이다. 
추방의 사건 속에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과 가인의 방랑, 노아 및 그의 가족의  보트피플,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정점이 되는 바벨탑으로부터 흩어짐인데 특히 바벨탑사건은 의사소통의 실패와 혼돈으로 인한 대규모 공동체의 이동이 생겨났다. 이 창세기 사건들은  다음에 오는 믿음으로 공유하는 삶(아브라함)의 부르심에 토대가 되는 사건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우리 모두는 공유하지 못함으로서 여전히 하늘의 진노에 연루된 바벨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이민과 거주지의 문제에 대해 도피하고자하는 견해에 대해 분별의 안목으로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추방 속에서 자신의 땅을 떠나는 고통을 당한 창세기 1-11장의 사건과는 정반대로 흥분의 연속이었다.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는 흩어짐의 고통을 주는 잔인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이민이 우리에게 인간의 풍요로움과 만남도 가져 올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 일어나고 있는 자발성과 비자발성 이민의 형태가 위의 두 비교가 될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여러 가지 정황이 오늘날 이민문제 즉 난민, 망명신청자, 경제 이민 등에서 볼 수 있는 일들과 매우 흡사하다. 태어난 지역을 떠난 후 그리워하고, 정체성문제-인종, 문화, 종교 등, 새로운 이웃과의 어려운 관계 등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눌린 자들에게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출애굽은 엄청난 시련과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하나님과의 위대한 언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출 19:4-5) 구원론적 관점에서도 신학자 데이비드 트레시(David Tracy)8)는 ‘출애굽과 시나이 반도보다 더 유대교에 중심적인 패러다임은 없다. 이와 같이 기독인의 깨달음 속에도 (출애굽과 시나이 반도는) 동일하게 중심적 패러다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집트로부터 너를 구원한 자가 여호와라’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약의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백성은 노예의 자리에서 뿌리가 뽑힌 자들이다. 오늘날 이 땅의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이 영원한 나라의 구속을 받기 위해서는 ‘뿌리 뽑힘’의 삶이 불가피한 것이다.

네 번째로 바벨론 포로와 귀환의 사건은 실제로 BC 721년에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포로 되고 유다는 바벨론으로 포수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 네 번째 사건은 흩어지는 사건만이 아니고 다시 돌아오는 사건이다. 이 바벨론 포로 사건은 그들의 흩어짐의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노예의 굴레였다. 신학자 아크로이드(P. Ackroyd)는 이 사건을 ‘그 당시 사람들의 심판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 단순히 심판이 아닌 세상에 두신 그분의 하실 일과 관련된 의도를 드러내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9) 바벨론의 포수는 제2의 광야이며 그곳에 여호와가 계시고 그들을 절망의 바닥에서 소망의 자리로 옮기시는 자로 보이신다. 

이사야(51장)와 에스겔(20장)은 이 특별한 사건을 여호와의 또 다른 ‘출애굽’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의도는 이 급진적인 흩어짐(radical dislocation)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관점을 새롭게 하고 증인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소위 ‘포수의 신학(exilic theology)’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깊이 묵상하고 경험해야 할 가장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교훈이다.

신학자 N.T 라이트(Wright)에 의하면,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포수’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지 못하고 시온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10)

신약의 관점

계속해서 팀 나쉬는 칼바르트의 메타포를 인용하여 성육신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야 말로 ‘우리 가운데 나그네(The Stranger in our midst)’로 오신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분의 탄생, 이동, 불확실한 거처, 폭력과 전제정치로 부터 도피, 이집트로 피난 등은 현대의 디아스포라들의 삶의 정황과 매우 흡사하다. 소년 시절의 예수는 정체성, 인종, 소속감,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분의 변화산의 모습, 그리고 가장 정점인 십자가의 죽음은 선교적 삶의 모델이자 나그네 삶의 모델이 된다.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9장에 회당에서 쫓겨나서 이방인 디아스포라(요 7:35-36)에게로 이동하고 그 당시 요한의 공동체도 팔레스타인의 공동체를 떠나 이스라엘을 벗어난 소아시아로 흩어지게 되었다.11)
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학적 영역의 경험이 기독교 초기 공동체에도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특별히 사도행전 8장은 스테반의 순교로 인해 당시 지중해 세계 끝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흩어져 비자발적인 이동이 일어나 복음이 신속하게 확장되어 갔다. 9장에는 하나님의 선택된 도구로써 바울의 회심과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가는 선교가 일어나면서 결국에 사도행전의 1:8절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의도된 흩어짐의 계획이 드러났다. 이 정처 없이 떠도는 그리스도인의 초기 공동체를 사도행전은 처음으로 ‘길(way, 혹은 journey: 행 18:25-26; 한글 개역 판에는 ‘도’라고 번역)’의 사람들(people of the way)라고 표현했고 누가는 3장 6절에 나타난 ‘육체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 계획임을 암시하였다.12) 사도행전 18장 1-3절에 누가는 기록하기를 바울이 처음으로 유대 그리스도인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는데 이 사람들은 당시 글라우디오의 칙령에 따라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흩어진 자들이며 그들의 로마 추방으로 인해 고린도에 바울의 복음전도가 이루어지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3)

Peter C. Phan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 예를 들어 디도, 디모데,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나바 등은 디아스포라 유대주의에서 나온 인물들로서 스스로를 더 이상 ‘나그네’ 혹은 ‘여행자’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집의 유대인의 ‘동료 시민(fellow citizen)’으로 인식했는데 역설적으로 서로 문안할 때 paroikoi로 즉 국외자 혹은 이민자라고 하였다. 분명하게 그들에게는 이민(migration)이라는 개념이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신학적인 자의식의 정체성의 근본적인 요소이었다.14) 베드로 전서에 나오는 편지의 수신자, paroikoi는, 추방된 자(exiles-NRSV)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신학자 엘리옷 (J. H. Elloit)은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라는 ‘순례자 신학 (pilgrim theology) 을 주장하였다. 이 paroikoi는 본향을 향한다는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들의 처한 상황으로 인해 주어진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15)

디아스포라 현상과 선교

바울 서신을 통해 볼 때 디아스포라 현상이 없었다면 당시 선교는 대단히 위축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초기에 자발적인 동기로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비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말타와 로마에서도 지속적인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많은 경우에 자발적인 동기로 선교가 이루짐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일어난 비자발적인 흩어짐을 통해 이루어진 선교에 대해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중 하나는 선교적 이동(missional migration)이 어떤 패턴으로 바뀔 것인가이다. 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선교의 역사의 체험을 통해 기독교와 디아스포라 현상(혹은 흩어짐)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고  또 진행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3. ‘디아스포라’ 현상과 관련한 주요 신학적 견해들

최근에 디아스포라와 이민의 주제로 많은 세미나, 포럼들16)이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는데 그중 지역별로 비중 있게 활동하는 학자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톨릭 신학자인 Daniel G. Groody와 그의 동료 Peter C. Phan, 아시아 이민 신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Enoch Wan과 Joy Tira, 그리고 아프리카 신학의 관점에서, 선교학자  Jehu C. Hanciles을 중심으로 한 견해들이다.

Daniel Groody와 이민 신학

Groody는 university of Notre Dame의 부설 Center for Latino Spirituality and Culture의 소장이며 최근 이민에 관한 신학적인 관점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였다.17) 이 책은 특별히 남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민과 관련한 이슈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이 지역 이해에 도움이 된다. 본 발제에서는 위에 소개된 책의 17개 기고문중 본 주제에 도움 되는 일부분과 지난 4월 CMS에서 발표한 ‘Mission and Migration’의 내용을 발췌, 요약하기로 한다. 오늘 소개하는 Groody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일어나는 처절한 사선을 넘는 이민자들의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18)

Groody에 의하면 이민 신학에는 3단계가 있는데, 첫째 Pastoral level: 이민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 둘째  Spiritual level: 이민자 자신이 이민에 대해 어떤 영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셋째 Theological level: 의의 두 가지를 통합한 전체적인 그림으로서의 신학적 해석의 단계로 본다.  그리고 그는 4가지 신학적 관점을 제시하는데 1)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에게도 동일하게 Imago Dei가 회복되어야 한다. 2) 성육신하신 말씀,  Verbum Dei을 통한 화해 즉 한 몸의 연합, 용서가 이민 상황에 이루어져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 Missio Dei 가 어느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4) 하나님 나라의 비전, Visio Dei가 국경의 차별 없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는 가톨릭 신학의 관점에서 특별히 이민을 성만찬 의식과 동일시하여 “성만찬의 구조와 이민의 과정 사이에는 중요한 많은 상관관계가 있다. … 떡을 떼는 행위와 이민자들의 육체적인 찢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피흘림과 이민자들의 가족을 위한 희생,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과 이민자들의 삶과 죽음 등 성만찬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는 한편 성만찬도 이민자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보는 통찰을 제공한다.”19)고 보았다.

그리고 성만찬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 외에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다(first migrated towards the human race)는 사실을 상기시킨다.20) 성만찬에 나타나는 네 개의 동사, 즉 들고(taking), 축사하시고(blessing), 나누고(breaking), 그리고 주는(giving) 행위의 동사는 이민자들이 가정을 떠나는 결정,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주께 복을 구하고, 자신을 드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결국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과정들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열쇠로 본다.21)

결론적으로 Groody는 이민의 성만찬적 관점(Eucharistic perspective of migration)과 성만찬의 이민적 관점(migratory perspective of the Eucharist)을 통해 그동안 왈가왈부 했던 이민의 문제가 더 이상 정부들이 논의해온 사회, 경제적,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관련한 신학적 논의의 틀로 인식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만찬의 의식(the liturgy of the Eucharist)은 모든 국가 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장이요, 이민자인 이방인의 눈 속에서 형제자매와 진정한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는 장이 되어야 함을 단언한다.22)

초대 교부시대의 이민( Peter C. Phan의 view) 

초대 교회의 이민에 관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부시대의 이민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한 통찰을 안겨준다. 베트남 출신 신학자  Peter C. Phan은  그의 논문23)에서 교부시대의 이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첫째,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대규모의 이민을 경험했다. 둘째, 이 이동은 교회의 선교활동과 맞물려 활성화 되었다. 셋째, 이동의 이유는 종교적, 정치적 박해이고 동시에 무역을 통한 이동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복음의 전파이다. 넷째, 이 이동은 내부적 이동과 외부적 이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다섯째,  다른 이동과 마찬가지로 대도시중심의 이동이다. 여섯째, 유대인들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도시에서 장기정착을 통한 역동적인 공동체를 형성했다. 일곱째, 유대인들과 달리 아무런 기득권이 없이 국외자로 취급되었다. 여덟째, 여타 이민자처럼 지역 문화에 신속하게 적응했다. 아홉째, 동시에 그들은 특별히 종교적인 실천에 있어서 주위 사회와 일정한 간격을 두었다. 열번째, 기독교 디아스포라는 역사 속에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온 인구의 이동 패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 이민자를 묘사하는 표현에는 성경적 관점에서 세 단어가 나오는데 stranger(or alien), foreigner, 그리고 sojourner이다. 영어 성경에는 이 단어들이 혼재되어 나오는데 성경 시대에는 이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Stranger(히브리어로 z ar, 그리스어로 xenos)는 가족, 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하지 않은 자로서 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사 1:7). Foreigner(히브리어로 nokri, 그리스어로 allotrios)는 다른 종족, 우상을 섬기는 민족 등을 의미하며 비유대적인 부류의 통칭이다. Sojourner(히브리어로 g er, 그리스어로 paroikos)는 자신의 영구 거주지가 타국인자들이며 유대율법에 의하면 보호받는 자들인데 과부, 고아, 등이며 이들은 유대의 율법을 지켜야 했다. 앞의 성경적 관점에서 이미 저자가 언급한 대로 당시 그리스도 이민자들은 paroikoi로 불러지길 원했고 이런 자각은 종말론적인 영적 해석을 낳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 이민자들이 차별과 박해를 받는 운명에 빠진 것으로 추측된다.24)

마지막으로 Phan은 초대 교부 시대에 그리스도인에 대해 묘사한 익명의 문건25)의 분석을 통해 현대 그리스도인 디아스포라의 현상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특성은 어디에 살던지 그곳의  국가, 언어, 관습에 최선을 다해 동화되는 자들이다. 둘째, 이와 동시에 종교적 세계관과 도덕성에 있어서 새로운 사회와 일정한 간격을 둔다. 그러므로서 이민 신학은 통전문화적(transcultural), 상황화 그리고 교차 문화적임과 동시에 반 문화적(counter-cultural: Newbigin 의 견해이기도 한)이어야 한다. 그들의 정체성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이해하며 보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이른바 ‘제 삼의 종족(third race)’이다. 셋째, 세상과 구별되기 때문에 차별과 박해는 불가피 하다. 넷째, 이민자들의 비폭력성과 선행은 박해자들에게 증오와 불의를 극복케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다섯째,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의 근거는 “하늘에 쌓아둔 썩지 아니할 양식” 인데 이에 근거한 종말론(eschatology)이 이민 신학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여섯째, 이민(migration)은 교회의 항구적인 모습이다. 교회의 일치, 보편성, 사도성과 같이 ‘이민자의 삶(migrantness)’은 교회의 본질적인 표지이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이 땅의 이민자들을 진실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Enoch Wan의 ‘디아스포라’ 선교학과 Joy Tira의 신학적 Framework

Enoch Wan은 ‘디아스포라 선교학(Diaspora Missiology)’을 디아스포라를 현상적으로 접근하여 신학적 고찰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로서 정의한다. 신구약에 나타난 이 디아스포라 현상 속에서 그는 흩어짐과 모임의 패턴을 발견하고 성경 속에 나타난 일련의 사례들을 도표를 만들어 제시하였다.26) 그리고 전통적 선교학과 디아스포라 선교학의 차이를 일목요연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전통 선교학과 디아스포라 선교학 비교 표 참조)
디아스포라 선교학의 방법론은 다양한 교차 학문의 영역을 커버하는데 주요 영역은 문화인류학, 인구 통계학, 경제, 지리, 역사, 법률, 정치, 사회학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학문의 영역 외에 연구 주제로서 이민(migrant, immigrant),  종족 갈등(ethnic conflict), 디아스포라의 현상연구, 세계화, 도시화, 다원주의, 다문화주의 등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선교학의 방향성은 지역 디아스포라에서부터 출발해서 국제 디아스포라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필리핀의 예) 디아스포라 현상이 점점 고조됨에 따라 전통적 선교학과는 다른 관점의 디아스포라 선교학의 현상파악, 신학적 통찰, 그리고 선교학적 적용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위에서 언급한 Enoch Wan의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선교학적 연구의 틀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학적인 고찰이 필요한데 이에 Joy Tira는 그의 논문에서 필리핀 신학자, Luis Pantoja Jr.의 주장28) 과 Tereso Casino의 ‘글로벌 디아스포라’의 신학 연구에 대한 발제문29) 그리고 로잔 위원회에서 정리한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 조명과 세계 선교에 미치는 영향’30)을 참조한 후   모든 디아스포라 현상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파악하고 결론적으로 다음 몇 가지를 디아스포라 신학의 중심 주제로 파악했다.31)

첫째 주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창조주와 인간의 구원자로서의 하나님. 그분은 인간 역사의 주권자로서 인간의 이동에 간섭하신다(행 17:26-27). 또 인간에게 만물에 대한 청지기 책무를 부여하고 거주의 자유를 통해 이를 감당하도록 하심.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추방, 카인의 방랑, 바벨탑의 사건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문화는 발달하고 문명의 꽃이 피고 현대 사회에 인종적, 종족간 간극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32)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으로 귀결된다.(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목적 있는 이민(디아스포라)’의 신학적 모델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분은 지상의 삶을 통해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더 나아가 흩어진 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갈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선교의 시행자로서의 성령. 창조의 역사 속에 참여하신 성령은 이스라엘의 형성과 교회 생성에도 관여하시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구속계획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해 흩어지는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의 완수를 위해 성령이 함께 하신다. ( 마 28:20)

둘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성과 선교적 사명. 행 1:8절에 암시되어 있는 ‘교회의 이동성(mobility instinct)’은 선교적 목적과 결합되어 모든 경계를 넘어 가며 우주적 교회는 모든 시대와 공간의 지역 교회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요 17:11-21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보면, 교회의 흩어짐이 예수께서 의도하시는 뜻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셋째 주제는 종말의 흩어진 자들의 연합(종말론: Eschatology). 이미 영원한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현재에 있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이지만 이 땅에서는 ‘목적을 가진 순례자’로서 증인의 삶을 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린양의 보좌 앞에 흩어진 모든 민족이 모이게 된다.(계 7:9-10)

넷째 주제는 우주적 갈등과 영적 전쟁. 제자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흩어질 때 예수께서 어둠의 권세를 이길 능력을 주셨고(눅 9:1-2), 사도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주적 갈등과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엡 6:12) 이민자들 중 여자, 아이들이 인간 밀수와 섹스 산업 같은 곳에 악용되는 사례는 영적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디아스포라 상황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에 노출된 자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이전쟁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고 동시에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훈련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주제는 선교 메뉴얼로서의 성경. 성경은 세계 선교를 위한 최종적인 권위의 메뉴얼이다. 그 속에는 구원의 서정, 초대교회의 역사와 복음의 진보, 그리고 사도적 사역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과 선교학적인 고찰은 오직 성경과 그의 원리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역사와 선교적 의미(Jehu Hanciles 견해 중심)

이 글의 모두에 Jehu Hanciles이 언급한 바, 이민과 종교의 확장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한 그는 더 나아가 현재의 이민 형태가 향후 21세기에는 종교적인 활동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34) 사무엘 에스코바도 “오늘날 이민의 모델(migration model)은 구체적으로 미래의 기독교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선교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35)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의 선교의 확장을 면밀하게 연구한 Jehu Hanciles은 그 시대에 유럽인구와 비서구의 노동력의 대규모 이민의 이동이라는 큰 물결 속에 선교의 흐름이 편승되어 왔다고 분석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그 이후 본격적인 글로벌 이민(global migration)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게 되었는데 특별히 식민주의는 국가 간 이동의 구조(transnational structure 혹은 interstate system)를 구축하여 글로벌 이민의 시대를 촉진하고, 더불어 유럽 제국주의의 해체는 비서구의 해방된 인력이 대거 이동하는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글로벌 이민의 시대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과거 서구에서 비서구로 이동하던 것이 반대로 비서구에서 서구로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south-north)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데, 

첫째, 그들의 이동은 종교와 같이 간다. 종교는 원래 살던 곳과의 연결고리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간직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처음부터 종교적이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고립과 삶의 터전 상실을 다루기 위해서 종교적인 헌신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진다. 

둘째, 이민은 떠나온 국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프리카의 경우에 인적 자원을 손실이 커서 숙련된 자들의 삼분의 일이 유럽으로 이동하므로 인해 “brain drain”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국제 이민은 경제의 불균형을 인해 생겨난 결과이자 이민 국가에 대한 공헌이기도 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이민자는 모국에 엄청난 수입원으로 인식된다. 

셋째, 현재 일어나는 국제이민의 패턴은 더 이상 조국을 떠나 전혀 낯선 곳에 생명의 위협을 안고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두 국가를 모두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고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이중 문화와 언어에 잘 적응하는 이른바, “transnational migration” 경향을 띤다. 

넷째, 현대의 이민(디아스포라)은 “network-driven 현상을 띤다. 처음에는 그들은 기왕에 구축된 접촉점에서 시작하여 점점 이민의 중심으로 이동한다.”36) 따라서 서구의 직선적 구조와는 달리, “비서구 이민 형태는 세포 조직적이며 이미 그 사회에 구축된 관계를 따라 이동하며, 카리스마 지도력에 귀착되고 자신이 설정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과 인간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37)

다섯째, South-North의 이동은 과거 식민지와 통치 국가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이 통로를 타고 전 식민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이동하였다.  예를 들어 지난 1960년대부터 경제 이민과 난민 등으로 인해 들어온 아프리카인들은 영국에만 3000개의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유럽전역을 통틀어 이들의 숫자가 3백만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여섯째, 비서구 기독교의 성장이 이민을 촉진하고 있다. 특히 급성장하는 아프리카의  카리스매틱 혹은 신 오순절 계통 교회들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신분 상승을 위해 이동이 쉬운 계층이며 이들과 함께 이런 종류의 교회들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서 이민을 더욱 촉진하는 경향이다.   

일곱째, South-North이동의 특성은 교회 중심적, 성육신적 증인의 삶, 그리고 개인의 창의성, 영적 파워의 강조, 하우스 교회, 자비량 사역과 제국과의 단절이 일어나는 신약시대의 모형을 추구하는 경향을 띤다.

Jehu Hanciles은 이런 이동의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는 인간 이민의 본질과 구성에 주목하는 것은 기독교 선교의 활동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다. 둘째는 현재 세계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서구 선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세계 기독교는 현재 떠오르는 비서구 선교운동과 더불어 복잡하게 얽혀있다.38)

마지막으로 Jehu Hanciles은 위에 언급한 다양한 현상과 특성들을 분석한 다음, 이를 토대로 이런 디아스포라 현상(특히 아프리카)이 주는 선교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심스러운 평가를 하였다.39)

첫째, 유럽 이슬람에 대해 가장 중요한 대응세력은 세속화나, 유럽의 기독교가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기독 이민자들이다. 그 이유는 많은 무슬림들이 접촉하게 되는 가장 생동감 있는 기독교의 형태는 비서구 이민자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역동적인 기독교의 성장의 중심에서 나온 기독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대단히 복음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띤다. 자신이 적응하는 국가의 사회들이 숫자와 영향력에서 기독의 위세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민자들이 스스로를 “선교사”라고 생각하게 된다.

셋째, 일반적으로 이민은 신앙의 타락으로 인도하기 쉬운 경향이 있으나 자발적, 혹은 자발적 이민의 역동성은 종교의식이나 종교적 헌신을 더 강화하거나 심지어는 개종의 가능성을 매우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민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개종현상은 이를 충분히 증명한다.   

넷째, 아프리카 독립교회(AICs)들은 다른 기독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민 국가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주변인으로서 대우를 받는데 대부분 도시의 빈민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배적인 문화 속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AICs는 지역 교인들에 의해 방치된 틈새들을 섬기고 있다.

다섯째, 새로 이민 온 회중들은 서구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 다양성에 익숙하다. 1960년대 이후 대량 이민은 서구사회의 얼굴을 바꾸었고 전무후무한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을 촉발시켰다. 종교적 다양성은 서구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경험인데 이런 도전들이 서구 교회들에게 잘 인식되지 못한 반면, 기독 이민자들은 매일 그들은 타종교와의 교감 속에서 신앙이 형성되었다. 결국 종교 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이런 적응력을 가진 기독 이민자들은 선교에 있어서도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세계화의 힘(특히 transnationalism)은 기독 이민자들이 서구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선교적 역량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서구사회의 도시 중심으로 교회활동을 하며 이동성, 역동성, 변화의 측면에서 가장 전략적인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아프리카 이민 목회자들은 이민하지 않았으면 감당할 수 없는 글로벌 사역의 방향성과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 ‘디아스포라’ 혹은 
    ‘이민’ 신학/선교학 정립을 위한 구성 요소
     (핵심 엘레멘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디아스포라 현상과 관련한 신학적, 선교학적 견해들은 각각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Groody는 자신이 직접 참여자의 입장에서 멕시코 국경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민 이슈에 대해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고, Wan과 Tira는 아시아의 중요 그룹인 중국과 필리핀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트렌드를 분석하여 실천적인 디아스포라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했고 마지막으로 Hanciles는 자신의 출신지인 아프리카의 근대 이민 역사와 서구 제국주의와의 상관 관계 속에서 사회학적 통찰을 통한 선교학적 의미를 도출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세 부류의 주장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발견한 공통적인 신학과 선교학의 주장들 중심으로 디아스포라 혹은 이민 신학/선교학 정립을 위한 핵심 요소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디아스포라/이민 신학을 위한 핵심 요소

첫째, 하나님의 주권이다.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유수 사건을 통해보면 하나님은 흩으시는 이유이면에 인간의 구속을 위한 의도를 가지고 그 사건을 주권을 가지고 끌어가심을 볼 수 있다. Groody는 이를 간결하게 Imago(이미지의 회복), Missio(구속사역), Visio Dei(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설명한 바 있다. 흩어짐의 정체성을 상실할 때 그분은 우리를 노예의 굴레로 씌우시고 동시에 증인의 삶을 회복하도록 가르치며 결국 절망에서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을 ‘급진적인 흩어짐(radical dislocation)’을 통해 주권을 행사하신다. 

둘째,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생생하게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만찬을 통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을 통해 분명한 purposed driven migration의 전형을 보여주셨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민의 문제를 사회, 경제, 정치적 이슈로 보지만 성만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과의 화해를 전제로 한 모든 인간의 조건 없는 연합을 이루는 신학적인 문제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이민자(paroikoi)이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적응하여 살면서도 천국관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사는(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이른바 제 삼의 종족(the third race)이며 이들은 자연스럽게 최후의 연합과 하늘에 쌓아둔 썩지 아니할 양식에 소망을 둔 종말론적 신앙(eschatology)을 가진다. 
이민 신학은 통전문화적이며, 상황화, 타문화적이며 더 나아가 반문화적인(counter-cultural) 성격을 지닌다. 반문화적이라 함은 레슬리 뉴비긴이 펼친 “복음과 문화 네트워크(Gospel & Our Culture Network)” 운동40)에서 명확하게 정의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속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속한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기능을 통해 복음으로 말미암아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도록 주도권을 복음에 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교회의 정체성이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은 교회의 이동성(mobility instinct-행 1:8)과 이민자의 속성(migrantness)에 있다. 신학자 Phan은  이민자의 속성을 가진 교회만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이 땅의 이민자들을 진실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돌볼 수 있다고 보았다.  진정한 교회는 전통에 기초한 재의 종교(성전 개념)가 아닌 예언자 전통에 서있는 디아스포라 신앙 공동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디아스포라/이민 선교학 관점들

1. 이민의 자발성과 더불어 비자발적인 동기로 선교가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하여 missional migration의 패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민의 현상은 미래 기독교의 선교방향을 제시하는 모델로서 중요한 흐름이다.

2. 복음전파와 사회구원을 동시에 지향하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 다중 문화 속에서의 복음의 상황화, 사회적 문화적 경계가 소실되는 탈지역화 (deterritorialization), 교차 학문적 관점(interdisciplinary perspective),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해 경계 없는 선교의 영역, “성령을  따름” 전략, 그리고 선교의 대상은 항상 유동적이고 그 대상을 따라 이동하는 경향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3. 디아스포라 선교운동의 방향성은 지역/종족 별로 시작되어 국제적 연대로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 디아스포라 현상을 보면 먼저 지역별로 공감대를 구축하면서 정기적인 모임을 이룬 후 각 지역의 대표들이 흩어진 종족 전체를 어우르는 연합기구를 만드는 과정의 수순을 보인다.-대표적인 예로 필리핀 FIN 경우) 

4. 이민은 세계화로 인해 transnational migration과 network-driven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South-North의 이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동을 촉진하며, 정착지에서 교회 중심적, 성육신적 증인의 삶, 규모에 있어 가정교회, 자비량 사역 등 과거 제국시대의 교회가 아닌 신약시대의 모형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비서구 기독교의 성장도 이민을 촉진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5. 유럽 이슬람 팽창에 대한 대응세력으로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기독 이민자들을 지목하는 데 이들은 후기 기독사회로 진입한 서구에 대해 스스로 ‘선교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6. 이민교회들은 기존 지역교회들이 할 수 없는 틈새사역 (도시빈민 등)을 수행하며 종교다원주의에 친숙한 경향을 드러내어 이런 적응력을 가지고 선교에서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7. 이민자들은 (특히 기독교 지도자) 이동성, 역동성, 변화의 측면에서 가장 전략적인 도시중심의 사역을 전개하므로 범세계적인 선교의 역량을 가질 수 있다.(예를 들어 미국, 영국의 아프리카 교회지도자의 경우)


5. 결론

지금까지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해 최근에 논의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인 통찰은 이 시대 기독인으로 사는 우리들의 정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신학적인 이해와 더불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흩으심’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성취하심을 깨닫게 된다.  
이 주제는 현재도 진행 중인 이슈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조명되고 좀 더 전문적이고 진지한 연구가 요구된다. 특히 이민자들 중에 어느 민족 못지 않은 복음적 역동성을 가진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의 잠재력을 끌어 모아 세계 선교의 메인 스트림에 합류하도록 본 주제의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6. 토론 주제

6.1. 각 국가에서 디아스포라 현상을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로 보지 않고 신학적, 선교학적 이슈로 인식하기 위해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할일은 무엇인가?
6.2. 디아스포라 현상과 선교의 상관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나누어 보고 앞으로 이 선교적 이동(missional migration)이 어떤 패턴으로 가야 바람직한지 의견을 나누어 보자.
6.3. 위 4항의 디아스포라 신학의 핵심 요소에 근거하여 한국교회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공동체들의 현주소를 진단해 보고 특별히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도울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
6.4.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디아스포라 현상들을 나누고 위 4항에 언급한 선교적 관점들 외에 또 다른 통찰들을 함께 나누자.'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 논의


김성훈 선교사_azerikim@hotmail.com
(Wycliffe 유럽 디아스포라 자문위원/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소장)



1. 개요

UN 통계에 따르면 2005년에 1억 9천 백 만 명이 고향을 떠나 이동하였는데 이는 대략 브라질 인구와 맞먹고 인구 34명당 1명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이민 증가는 150%에 이른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근자에 소개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디아스포라(이민)는 인류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세계화의 역동성에 맞물려 세계적인 현상으로 부상되고 있다.1) 이런 현상 연구의 전문가인 풀러 신학교의 선교 신학자 제후한실(Jehu C. Hanciles)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역사동안 중요한 종교들이 이민과 흩어짐에 힘입어 그들의 입지를 공고히 해 왔고 그중 기독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소개한다.2) 그의 주장대로 라면 한마디로 기독교의 확장은 디아스포라와 함께 이루어진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로잔 디아스포라 이슈분과, 국제 선교단체(Wycliffe, Interserve, OMF등)들과 한국 선교계와 그리고 북미, 유럽, 서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각종 포럼과 선교대회 등에서  소위 이민자3) 로  구성된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4) 현상 에 대한 관심과 연구 활동이 고조되어 왔다. 특별히 2004년 태국에서 열린 로잔 포럼에서는 처음으로 7개 지역의 디아스포라 대표자들이 모여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비롯한 6개 항목을 논의하고 그 결과5)를 정리하여 발표함으로서 디아스포라 현상이 세계 복음화의 주요 이슈가 되었고 그 이후 후속 전략들이 만들어져서 오는 2009년 5월에는 각 대륙별 디아스포라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세계 포럼을 마닐라에서 개최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런 의미 있는 흐름에 편승해서 필자가 소속된 단체나 오늘 논의를 위해 모인 포럼등에서도 몇 년 전부터‘디아스포라’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략적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고 그 결과물로 여러 자료6)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발표된 내용들의 공통점은 이런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해 선교 동원 전략적 관점에 초점을 둔 논의들이었고, 시기적으로 보다 깊은 신학적, 선교학적 통찰은 다룰 기회가 부족하였다. 그런 면에서 오늘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하게 된 것은 시의적절한 시도로 보이고 이 논의가 그동안 제시된 다양한 실천방안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본 발제를 위해서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발표되었던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서 주요한 내용들을 정리 소개하고 필요한 자료들을 마지막에 참고 문헌록을 첨부하여 개인별로 도움이 되도록 했다.

본 발제문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첫째, 전통적인 신학에서 보는 선교학적 관점을 지면상 다루기가 어려운 점이다. 그러므로 각자 가지는 신학의 관점들이 다른 것으로 인해 논의에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예상된다. 
둘째, 논의의 범위에 대한 한계설정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이다. 
셋째 논의를 위한 용어의 혼란이다. ‘디아스포라’와 ‘이민’은 같은 개념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구분 할 것인지, 디아스포라 현상을 신학으로 규정할 것인지 신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볼 것인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민 신학’과의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관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선교적 관점에서 구분할 것인가 등등이다. 
넷째, 최근 신학과 선교학에서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 이 새로운 사회학적 개념(이민, 디아스포라)들에 대해서 신학계의 정통주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된 자료가 부족하다.(이민 문제를 여전히 사회, 정치적인 이슈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토론에서 이민/디아스포라 현상을 신학적, 선교학적 이슈로 적극적으로 부각해서 적어도 한인 기독 공동체 안에서라도 지속적으로 인식의 전환 운동을 하기를 제안한다.

이 논의의 순서는 기독교 전파에 역동적 동인(Dynamics of Diaspora)으로 나타난 ‘디아스포라’ 현상의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다음으로 ‘디아스포라’ 현상과 관련한 최근에  발표된 신학적 견해들을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디아스포라 신학의 근거가 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시론적인 발제가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거나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오히려 논의 한계를 설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더 나아가 이 주제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후속적인 논의를 촉발하는 불쏘시게 역할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 ‘디아스포라’의 성경적 관점들

구약의 관점

디아스포라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는 신학자의 관점에 따라 견해 차이들이 있어서 본 발제에는 2007년 BIAM(British and Irish Association for Mission)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옥스퍼드 목회 과정 연구소장인 팀 나쉬(Tim Naish)의 견해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필요에 따라 다른 신학자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경우는 출처의 각주를 달았다.  
그는 구약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네 가지 사건(4E)7)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창세기 1-11장 사이에  추방(Expulsion), 아브라함의 부르심(Evocation), 출애굽 사건(Exodus), 그리고 바벨론 포로와 귀환(Exile)이다. 
추방의 사건 속에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과 가인의 방랑, 노아 및 그의 가족의  보트피플,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정점이 되는 바벨탑으로부터 흩어짐인데 특히 바벨탑사건은 의사소통의 실패와 혼돈으로 인한 대규모 공동체의 이동이 생겨났다. 이 창세기 사건들은  다음에 오는 믿음으로 공유하는 삶(아브라함)의 부르심에 토대가 되는 사건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우리 모두는 공유하지 못함으로서 여전히 하늘의 진노에 연루된 바벨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이민과 거주지의 문제에 대해 도피하고자하는 견해에 대해 분별의 안목으로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추방 속에서 자신의 땅을 떠나는 고통을 당한 창세기 1-11장의 사건과는 정반대로 흥분의 연속이었다.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는 흩어짐의 고통을 주는 잔인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이민이 우리에게 인간의 풍요로움과 만남도 가져 올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 속에 일어나고 있는 자발성과 비자발성 이민의 형태가 위의 두 비교가 될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여러 가지 정황이 오늘날 이민문제 즉 난민, 망명신청자, 경제 이민 등에서 볼 수 있는 일들과 매우 흡사하다. 태어난 지역을 떠난 후 그리워하고, 정체성문제-인종, 문화, 종교 등, 새로운 이웃과의 어려운 관계 등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눌린 자들에게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출애굽은 엄청난 시련과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하나님과의 위대한 언약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출 19:4-5) 구원론적 관점에서도 신학자 데이비드 트레시(David Tracy)8)는 ‘출애굽과 시나이 반도보다 더 유대교에 중심적인 패러다임은 없다. 이와 같이 기독인의 깨달음 속에도 (출애굽과 시나이 반도는) 동일하게 중심적 패러다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집트로부터 너를 구원한 자가 여호와라’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신약의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백성은 노예의 자리에서 뿌리가 뽑힌 자들이다. 오늘날 이 땅의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이 영원한 나라의 구속을 받기 위해서는 ‘뿌리 뽑힘’의 삶이 불가피한 것이다.

네 번째로 바벨론 포로와 귀환의 사건은 실제로 BC 721년에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포로 되고 유다는 바벨론으로 포수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 네 번째 사건은 흩어지는 사건만이 아니고 다시 돌아오는 사건이다. 이 바벨론 포로 사건은 그들의 흩어짐의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노예의 굴레였다. 신학자 아크로이드(P. Ackroyd)는 이 사건을 ‘그 당시 사람들의 심판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 단순히 심판이 아닌 세상에 두신 그분의 하실 일과 관련된 의도를 드러내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9) 바벨론의 포수는 제2의 광야이며 그곳에 여호와가 계시고 그들을 절망의 바닥에서 소망의 자리로 옮기시는 자로 보이신다. 

이사야(51장)와 에스겔(20장)은 이 특별한 사건을 여호와의 또 다른 ‘출애굽’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의도는 이 급진적인 흩어짐(radical dislocation)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관점을 새롭게 하고 증인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소위 ‘포수의 신학(exilic theology)’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깊이 묵상하고 경험해야 할 가장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교훈이다.

신학자 N.T 라이트(Wright)에 의하면,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포수’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지 못하고 시온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10)

신약의 관점

계속해서 팀 나쉬는 칼바르트의 메타포를 인용하여 성육신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야 말로 ‘우리 가운데 나그네(The Stranger in our midst)’로 오신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분의 탄생, 이동, 불확실한 거처, 폭력과 전제정치로 부터 도피, 이집트로 피난 등은 현대의 디아스포라들의 삶의 정황과 매우 흡사하다. 소년 시절의 예수는 정체성, 인종, 소속감,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분의 변화산의 모습, 그리고 가장 정점인 십자가의 죽음은 선교적 삶의 모델이자 나그네 삶의 모델이 된다.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9장에 회당에서 쫓겨나서 이방인 디아스포라(요 7:35-36)에게로 이동하고 그 당시 요한의 공동체도 팔레스타인의 공동체를 떠나 이스라엘을 벗어난 소아시아로 흩어지게 되었다.11)
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학적 영역의 경험이 기독교 초기 공동체에도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특별히 사도행전 8장은 스테반의 순교로 인해 당시 지중해 세계 끝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흩어져 비자발적인 이동이 일어나 복음이 신속하게 확장되어 갔다. 9장에는 하나님의 선택된 도구로써 바울의 회심과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가는 선교가 일어나면서 결국에 사도행전의 1:8절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의도된 흩어짐의 계획이 드러났다. 이 정처 없이 떠도는 그리스도인의 초기 공동체를 사도행전은 처음으로 ‘길(way, 혹은 journey: 행 18:25-26; 한글 개역 판에는 ‘도’라고 번역)’의 사람들(people of the way)라고 표현했고 누가는 3장 6절에 나타난 ‘육체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 계획임을 암시하였다.12) 사도행전 18장 1-3절에 누가는 기록하기를 바울이 처음으로 유대 그리스도인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는데 이 사람들은 당시 글라우디오의 칙령에 따라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흩어진 자들이며 그들의 로마 추방으로 인해 고린도에 바울의 복음전도가 이루어지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3)

Peter C. Phan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 예를 들어 디도, 디모데,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바나바 등은 디아스포라 유대주의에서 나온 인물들로서 스스로를 더 이상 ‘나그네’ 혹은 ‘여행자’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집의 유대인의 ‘동료 시민(fellow citizen)’으로 인식했는데 역설적으로 서로 문안할 때 paroikoi로 즉 국외자 혹은 이민자라고 하였다. 분명하게 그들에게는 이민(migration)이라는 개념이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신학적인 자의식의 정체성의 근본적인 요소이었다.14) 베드로 전서에 나오는 편지의 수신자, paroikoi는, 추방된 자(exiles-NRSV)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신학자 엘리옷 (J. H. Elloit)은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라는 ‘순례자 신학 (pilgrim theology) 을 주장하였다. 이 paroikoi는 본향을 향한다는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들의 처한 상황으로 인해 주어진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15)

디아스포라 현상과 선교

바울 서신을 통해 볼 때 디아스포라 현상이 없었다면 당시 선교는 대단히 위축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초기에 자발적인 동기로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에는 비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말타와 로마에서도 지속적인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많은 경우에 자발적인 동기로 선교가 이루짐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일어난 비자발적인 흩어짐을 통해 이루어진 선교에 대해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중 하나는 선교적 이동(missional migration)이 어떤 패턴으로 바뀔 것인가이다. 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선교의 역사의 체험을 통해 기독교와 디아스포라 현상(혹은 흩어짐)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고  또 진행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3. ‘디아스포라’ 현상과 관련한 주요 신학적 견해들

최근에 디아스포라와 이민의 주제로 많은 세미나, 포럼들16)이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는데 그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