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슬람를 우려한다.
위에서 지적한 문화적, 사회적 갈등은 왜 일어나는가? 근본적 이유는 이슬람은 모든 나라는 물론 나아가서 전 세계를 이슬람화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슬람화(Islamization)란 한 국가나 사회가 이슬람 교리와 원리에 지배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이 선교를 열심히 하는데, 궁극적 목적은 모든 세계를 이슬람화 하는데 있다. 자기들의 표현을 빌리면 전 세계를 알라에게 복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화는 동시에 이슬람 정부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 정부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명령되어진 절대적인 것이다. 이슬람 정부는 샤리아에 기초한 정부를 뜻한다. 다른 형태의 정부는 비합법적이고 전복의 대상이다. 이슬람의 적에 대항하는 성스런 지하드는 무슬림 최고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선교는 한 사람이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는, 개인 중생이 가장 중요하다. 기독교 선교와 전도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이슬람도 일대일 전도를 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한 사회와 국가를 이슬람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국가를 공산화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공산화는 혁명을 통하여 한꺼번에 사회를 공산국가나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이슬람은 무슬림 인구가 소수일 때는 조용한 종교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숫자가 많아질 때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슬람 원리에 따르도록 폭력도 행사한다. 그 실례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쪽의 아체라는 지역은 쓰나미가 오기 전에는 과격 이슬람 단체들이 엄청나게 인도네시아 정부를 괴롭혔다. 그 이유는 왜 인도네시아를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이슬람화의 표적이 되고 있다. 2002년 호주의 한 이슬람 연구소는 다음의 사실을 밝혔다.
1980년대 및 1990년대 초기 이슬람 부흥 이후 더 급진적인 정치적 이슬람이 중동에서 아시아에서 이민을 하였다. 아시아에서 급진적 이슬람이 아직은 변두리에 머물지만 만약 제재를 당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금융위기를 당한 약화 된 나라에 안보와 정치적 위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새 대통령이나 지도자들을 세웠는데, 바로 인도네시아, 태국, 필립핀, 한국이다.
우리가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슬람화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유엔인권 헌장은 인간의 자유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아주 중시한다. 모든 사람은 종교를 믿을 권리와 바꿀 자유도 있다고 말한다. 자유세계는 종교의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관임을 믿고 사회가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종교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자유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교육도 하고 권면하지만 강제화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한 가족 중에서 종교가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화가 되면 이러한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슬람은 종교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라고 하면서 유엔인권헌장은 서방 기독교 세계가 임의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종교자유는 기독교와 서방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결과라고 강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이슬람은 이슬람 인권헌장을 따로 만들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것을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이슬람은 종교는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사항이 아니라 한 가정, 한 국가는 하나의 종교로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 종교는 반드시 이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되면 기독교는 생존할 수 없다.
2) 이슬람화는 종교적 율법주의 사회가 된다.
이슬람화가 되면 윤리와 개인의 생활이나 심지어 복장까지도 자유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속화되어 노출이 심하다. 미국이나 서구는 동성연애가 심각한 수준이다. 동성연애는 이슬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979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소위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다. 독재자 샤 임금을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통치하는 시대였다. 여자들은 차도르가 의무화되고 립스틱이 금지당하고 남자들도 반소매를 입지 못할 정도의 무서운 종교 율법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란 비행기를 타면 여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차도르를 해야 한다. 차도르는 이슬람 문화이지 우리 문화가 될 수 없다.그래서 지금 이란의 청년들은 이슬람에 대한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외 언론들은 보도한다. 이란 대통령의 불법 선거를 가지고 아직도 데모가 일어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동안의 이란 사회를 지배한 종교적 율법주의와 경제 실패에 대한 반발이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탈레반은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공포 정치를 하였다. 여자들은 직장에서 다 쫒겨 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 무자비 하게 죽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자들은 화장도 못하고 강제로 차도르를 해야 한다. 간음하면 공개 처형을 한다. 사우디에서는 이러한 공개처형으로 일 년에 수 백 명씩 죽는데, 이상하게도 간응의 경우 주로 여자들만 처형당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여성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었다. 얼마 전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를 방문, 근로자 여자들을 구출해(?)왔다고 한다. 사우디는 극장도 술집도 없다. 여자들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외출의 자유도 없다.
이슬람화는 이슬람 법인 샤리아라는 무서운 법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래서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이 강한 나라에서는 샤리아 법을 강제로 형법 화하려는데 대하여 비 무슬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 간의 충돌이 끓이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 되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은 너무나 불 보듯 뻔하다. 도적질하면 오른 손을 절단하는 형법이 있다. 일부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를 이것을 시행한다. 여자들에게도 할례를 한다. 그로인한 여성 불구자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여성인권단체들이 이것을 비판하자 문화간섭이라고 반발한다.
3) 모든 것 위에 이슬람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 일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위에 군림하는 총체적 시스템이다. 마호메드는 종교창설자이고 군사지도자이고 정치가이다. 여기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이슬람 국가의 왕이나 정치가(대통령)은 이슬람의 수호자,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란에는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가 있다. 이것은 정치에서도 이슬람의 위상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4)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한다면 그 이유는 이슬람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서방의 이슬람 비판자들은 테러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정의한다. 코란은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 (sura33:36)고 말한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알라와 마호메드가 정해 놓은 것에는 어떤 선택권이 없다. 이슬람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담은 처음부터 약했다. 거기에는 어떤 결정도 없다.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아프칸 사태 때 빈 라덴은 노골적으로 미국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이라크에서 전쟁을 중지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이 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2007년 아프간 인질 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찬을 노린 것은 한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로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은 반 민주주의, 반 자본주의,반 기독교라는 것을 암시한다.
5) 공격적 배탸주의: 유대인과 기독교를 절대 거부한다. .
어느 종교든지 경전이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코란은 분명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하라고 하지만 동시에 미워하라고 가르친다. 코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오는 선지자(무함마드)를 증거하지 않고 숨겼기 때문에 이들은 “지나가버린 백성“(2:141)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유대교와 기독교는 참 계시를 왜곡한 자들로 정죄한다. 코란 2:256에 "종교에 강요는 없을 지니라"고 본문을 근거로, 종교는 자유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무효화되었다. 이슬람은 뒤의 계시가 앞의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원리가 있다 (나라카).
3:85에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되리라" 하였다.
5:57-59에는 "믿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과 오락으로 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예배의 부름에 그들은 그것을 조롱과 오락으로 간주했으니 그들은 지혜가 없는 백성이었노라 성서의 백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이전에 계시된 것을 믿는다 하여 우리를 배반하느뇨 너희 대다수는 거역자들이라."
5:66에는 "그들이 구약과 신약과 그들 주님이 계시한 것을 준수했다면 그들은 그 이상의 참된 진리를 맛보았을 것이라 그들 가운데는 올바른 길로 향하는 무리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받을 사악의 길을 따랐더라."
3:181, “궁핍하나 우리는 부유하도다 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셨나니 하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선지자들을 살해한 죄악을 기록하시며 가로되 이글거리는 유황불을 맛볼지어다"
4:89,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너희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떠날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
더 나아가 코란은 불신자(infidel)는 정복하거나 죽이라고 가르치는데, “불신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도 포함된다. 4:56은 알라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은 화염속으로 들게하라고 하며, (화염은 지옥을 의미함), 4:89은 “불신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며 그들이 배반한다면 포획하고 살해하라”고 명한다. 8:39은 전쟁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8:60은 군대와 말로서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게 대항하라고 가르친다. 즉 물리적 힘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47:4은 전장에서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목을 떼리고, 포로로 취하고 혹은 보상금을 받고 풀어주라고 가르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큰 소리치는 것은 테러가 이슬람의 본질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건 무슬림들이 이들을 싫어하면서도 강력하게 제재하지 못한다. 여기에 이슬람 사회의 고민이 있다고 본다.
이슬람은 위의 코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해명이 요구된다.
6) 세계정복의 투쟁 이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은 이슬람 세계는 평화의 집, 비 이슬람은 전쟁의 집으로 해석하고 비 이슬람 세계를 향한 투쟁을 선언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슬람과 서구, 이슬람과 마르크스주의 세력, 이슬람과 시온주의 사이에는 전쟁상태가 존재한다. 이슬람에 대적하는 이들 세력은 무슬림을 지배하고 식민지화하며 착취할 것을 추구한다. 그들에 대항하는 전쟁은 선포할 필요도 없다. 전쟁은 이미 그곳에 있다”고. 마호메드는 살았을 때부터 다른 나라의 정복을 지시하였고 행동화하였다. 그래서 칼리프들이 칼을 들고 중동과 구라파 일부 및 북아프리카를 정복하였다.
이슬람화를 위하여는 폭력도 정당화된다. 마치 공산주의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와 같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폭력이라는 불법적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러가 일어날 때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이나 언론들은 이슬람 테러는 이슬람이 아니라는 성명서나 발표가 나온다. 하산 소령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의 한 이슬람 단체는 동일한 성명을 내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감을 가지는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한다. 이 성명서는 테러가 이슬람을 납치한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강력하게 응징하는 이슬람 단체가 없다고 한다. 만약 이슬람 국가에서 테러하는 무슬림을 비난하면 도리어 보복을 당한다고 불안해 한다. 왜 그러한가? .
최근 서방에서 이슬람 테러를 연구하는 자들은 이슬람에서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은 코란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강조하면서 코란을 인용한다. 테러가 이슬람 공포증을 일으키는데, 무슬림들은 이것을 응징하지 못하고 여론으로만 나쁘다고 할 뿐이다. 이유는 코란은 “불신자들에게는 폭력을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여기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 네델란드의 국회의원이 작년도 피드나를 동영상을 제작, 전 세계에 배포하였다. 그 내용은 테러는 코란에 근거한 것임을 역설하는 이맘의 설교를 편집한 것이다. 최근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 출신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슬람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다. 지하드를 촉구하는 코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해답해야 한다고. 코란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위하여 싸우고, 믿지 않는 자들은 사탄을 위하여 싸우나니, 사탄의 무리와 싸우라, 실로 사탄의 교활함은 허약할 뿐이라.”(수라 4:76).
“하나님과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선지자가 금지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한 자드리-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유대인과 크리스찬)이라 하더라도-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싸우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수라 9:29).
이상 인용한 코란 외에도 폭력을 선동하는 코란 구절이 더 있으나 여기서 생략한다. 분명한 사실은 코란이 지하드를 선동한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대형 테러 때는 영향력 있는 이맘이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지시하는 것이 최근 녹음되어 얼마 전 CNN이 그것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예를 들면 작년 11월 하순 인도 뭄바이 호텔 폭파 때 이맘이 테러리스트에게 일일이 행동 사항을 지시한다. 중요한 내용은 순교하는 것을 하늘이 기다린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지하드 수행을 이슬람 교리가 적극 권장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산 소령도 영향력 있는 이맘의 교육을 받았다고 보도한다.
7) “마호메드가 선지자이다.“
최근 한국인 이슬람 학자들은 공공연하게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같은 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왜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을 공격하라고 하는가? 같다면 신앙 내용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분명 이슬람은 도리어 신명기 18장의 그 “선지자”와 요한복음 14장의 보혜사 성령은 바로 마호메드라고 주장한다. 코란 3장81절을 그래로 인용하면,
하나님이 예언자들과 성약을 하사 성서와 지혜를 주셨노라 그 후 한 선지자가 진리와
함께 오나니 그를 믿고 그들 도울 것이라 이에 확신하노뇨 너회들에게 내린 나의 성약
을 지키느뇨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확신하나이다. 그러면 증언하라 내가 증인으로써
너회와 함께 있을 것이라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위 인용한 본문에 대한 한국어 코란 주석은 성경의 선지자와 보혜사는 마호메드임을 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 신명기 18:18에 무함마드가 온다는 것이 예언되어 기록되어 있고, 아랍국가의
창설은 이사야서(Isaiah, xlii)에 언급되고 있는데, 케다르(Kedir)는 이스마엘의 아들로
그 이름이 아랍국가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4-16,
15-26, 16-7(Gospel of St. John xiv 16, xv 26, xvi 7)에서 무함마드가 예언되고
있다. [[성 꾸란:의미의 한국어 번역], (파하드 국왕 꾸란출판청 이슬람역 1417년),
101면).
코란 다른 분문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한다.
"하나님이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말하는 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벌을 막지 못하리니 그분의 뜻이라면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와 그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게 되노라 천지의 권능이 하나님에게 있으며 그 사이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며 뜻이 있을 때 창조하시니 하나님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니라"(5:17).
5:72-73: "하나님이 마리아 아들을 메시아라 말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메시아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나의 주님이고 너희의 주님인 하나님만 경배하라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 하나님께서 그들에의 천국을 금하시고 불지옥을 그의 거주지로 하게하니 죄인들에게는 구원자가 없노라."
그러나 지금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꿈과 환상을 통하여 많은 무슬림들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이적이 일어나고 있다. 꿈과 환상에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적과 환상을 중시하지 않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도 이것을 무조건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4. 우리의 입장
우리는 남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 오바마가 카이로 대학에서 행한 연설처럼 우리는 이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슬람 테러와 정복적 자세의 이슬람 과격주의를 배제하며 이슬람화를 거부한다. 이슬람화는 이슬람이 정치 사회 모든 분야위에 군림하며, 종교다원화를 거부한다. 동시에 비민주적인 사회를 조성한다. 민주주의와 다원화의 우리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와 다원화를 거부하는 종교를 거부한다. 대 테러 전쟁은 바로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임을 강조한다. 우리들은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들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갈등을 예의주시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천명한다.
1) 모든 종교는 서로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2) 종교도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슬람이 한국에서 선교하는 만큼 이슬람 국가도 종교와 선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이슬람만이 절대 진리임으로 자기들만 선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사상은 독선이다.
3) 인권과 종교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이다. 이슬람 국가도 종교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4) 이슬람이 다수일 때도 정교분리의 한국 헌법은 존중되어야 한다. 결코 종교가 정치 위에 군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5) 현실적으로 이슬람이 가는 곳에 문화충격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의 무슬림들도 한국 시민으로 한국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6) 이슬람은 민주주의와 함께하지 못한다.
7) 무슬림 남자들과 한국여성의 결혼 시 많은 피해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더 심각하게 여성을 차별한다. 일부다처 제도는 우리사회에 적용될 수 없다.
8) 테러는 이슬람이 아니라면 왜 이슬람국가는 여론이나 법으로 이것을 억제하지 못하는가? 이슬람 테러의 근본적 원인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코란의 가르침이다. 이슬람은 여기에 답해야 한다.
9) 한국의 이슬람은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임을 강조하며 아브라함의 한 자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자기나라에서의 기독교선교는 못하게 하는가?
10) 이슬람은 십자군전쟁에 관해 언급하며 기독교와 서구문명의 정복전쟁과 잔인성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십자군 전쟁은 로마 카도릭이 한 실책이라고 본다. 그것을 개신교 기독교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아랍도 먼저 종교전쟁을 수행하였다.
11) 결론으로 이슬람은 비민주적 종교라는 것은 이슬람 국가가 증명하고 있다.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실제로 보여주어야 한다. (끝)
전호진 박사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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