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세계로 확산되는 이슬람 파워

한국교회가 해외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이다. 1970년대에도 선교사들이 해외로 나갔지만 소수였다. 당시 많은 젊은 선교후보자들은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불쌍한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을 품어야 한다면서 이슬람 국가로 나갔다.

그러나 막상 이슬람 국가에서는 함부로 전도를 할 수 없다. 아직까진 한국 선교사들의 이슬람 선교는 마치 바다에서 낚시질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같이 선교가 강한 종교이다. 아니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 선교 전략은 바다에 그물을 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 국가에서 기독교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도 있다. 한국에서 선교한 사무엘 마펫 박사는 ‘아시아 기독교회사’에서 아시아에서는 기독교가 실패한 것으로 말했다. 그 이유는 외부적인 원인도 있지만 교회 내부의 원인이 더 크다고 했다.

외부적 원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아시아의 비기독교 종교이다. 아시아 대부분 나라들의 종교, 문화, 전통, 정치 등은 마치 무서운 그물망과 같다. 자신이 갇힌 그물이 싫다고 빠져 나올 수 없다. 캄보디아 경우 전체 인구 중 기독교 신자는 불과 2%도 안 된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에 오면서도 불교를 굉장히 신경을 쓴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불교가 국교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선교사들은 너무 신나게 날뛴다고 우려하는 자들이 있다. 캄보디아도 최근 교회 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데 이슬람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무슬림인 고위 공무원이 노골적으로 10년 내에 캄보디아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 변화란 캄보디아가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캄보디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상황이다. 세계 인구 65억 중 무슬림 인구를 15억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계인구의 20%가 무슬림인 셈이다. 기독교 신자를 세계 인구의 30%라고 하는데,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기독교는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단일종교로는 이슬람이 세계 제일의 종교가 된다.

우리는 어떤 종교든지 열심히 선교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권리가 없다. 이슬람이 선한 방법으로 선교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시비하는 것 자체는 잘못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슬람은 자기들 국가와 사회에서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 공격적으로 선교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다. 무역이나 정치 등 모든 분야가 상호 교류하는 시대이다. 종교도 여기에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은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에 파송하여 적극적으로 선교한다. 한국에도 이미 많은 이슬람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금년, 이슬람 국가에서는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거나 비자발급을 거부당하고 있다. 살해당하는 일도 많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며 이슬람이 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이슬람 성장의 원인을 대략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이슬람은 출생종교이다. 이슬람 가정과 공동체에서 출생한 자녀는 무조건 무슬림이 된다. 어떤 여자든지 무슬림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는 무조건 무슬림으로 등록된다. 최근 한국에서 일부 무슬림 남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한국 여자와 결혼한다. 한국교회는 그 무슬림 남자와 결혼한 여자를 기독교인으로 취급하지만, 이슬람 교리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둘째, 다와(전도)이다. 다와란 ‘호소하다, 부르다, 의견의 찬동을 구한다’ 등의 의미가 있다. 이슬람 국가에는 이슬람 선교를 하는 자발적인 전도운동이 많다. 이것을 다와라고 하는데, 이들 선교단체들이 이슬람 포교에 크게 기여한다.

코란 제14장36절은 다와에 대한 기본적 가르침이 잘 나타난다. 그런데 다와란 반드시 전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과 교육사업도 포함된다. 또한 이슬람 사회의 세속화를 막기 위한 운동도 다와이다. 사우디에서는 다와 운동의 일환으로 1961년에 메디나에 대학을 설립하였다. 1962년에는 세계이슬람연맹을 결성하여 다와 운동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 한국이나 일본에 세워진 모스크나 이슬람협회도 세계이슬람연맹의 다와 운동의 결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코란(이슬람 경전)을 보급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한국의 코란 번역과 출판도 사우디 정부가 지원했다.

이슬람에는 원죄사상이 없다. 따라서 천국을 가는 조건으로 선행을 강조하는데 다와 행위와 이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지하드(순교)도 선행에 속한다. 한국에서 많은 무슬림이 열심히 포교하고 있다. 이슬람은 도리어 지식인들, 상인들, 중산계층이 더 전도에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동남아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이슬람 상인들의 역할이 컸다.

셋째, 이슬람은 교육을 중시한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이 학교교육을 통하여 이슬람을 가르치는데 특히 코란 암송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동 국가와 동남아 이슬람 국가에서 ‘마드라사’라는 이슬람 학교가 많이 있으며 특히 파키스탄에 많이 있다. 이 학교들은 이슬람만이 절대 진리의 종교라고 가르친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주로 마드라사에서 교육 받았다. 일부 마드라사는 코란과 총을 옆에 나란히 놓고 코란을 암송하는 학교도 있다.

캄보디아 이슬람은 캄보디아 청년들을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다른 이슬람 국가로 보내 유학시키고 있다. 한국 이태원 모스크에도 이슬람 유치원이 있으며 향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설립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주나 일부 서구 국가에서 이슬람 학교 건립은 주민들의 반대를 받기도 한다.

넷째, 이슬람 선교는 칼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일부 이슬람 학자들도 책에서 이것을 서술하고 있다.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칼이냐 코란이냐’는 말은 다 삭제되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이슬람을 소개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었다. 한국의 이슬람 단체는 이 말이 서양 기독교가 이슬람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며 교육부를 움직여 삭제시켰다.

그러나 마호메트가 메카를 점령한 것이나 그의 사후 부하들이 중동과 스페인과 북 아프리카를 칼로 점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의 무슬림 학자도 초기 이슬람은 정복과 선교와 상업을 통하여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13세기 인도를 휩쓴 이슬람 세력이 칼을 통하여 힌두교 국가에 이슬람 무굴 제국을 세운 것은 너무나 유명한 역사이다.

일본의 한 이슬람 전문가는 이슬람이 지중해를 정복한 주요한 요인으로 하늘의 혜택, 지리적 상황과 인재를 잘 등용하였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늘의 도움이란 당시 기독교는 로마의 기독교와 비잔틴의 기독교가 서로 경쟁하고 로마와 페르시아가 지중해에서 주도권 전쟁으로 지쳐서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을 말한다. 당시 중동의 기독교인들은 서구 기독교로부터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도리어 같은 아랍부족의 침략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다섯째는 이민이다. 한국이나 서구에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민이다. 한국도 지난 십 년 간 무슬림 인구가 늘어난 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유입된 근로자들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무슬림이 타국으로 이민을 가면 가족들이나 친지들을 최대한 초청한다. 한국에서는 초청하는 무슬림이 새로 들어 온 무슬림의 여권을 보관하여 은근히 권리행사를 하는 일도 있다.

호주 등 일부 서구 국가에서 무슬림 이민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자 법적으로 통제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한다. 최근 호주 정부는 이민법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에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면서 학교 혹은 사회적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호주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실례로 호주는 일부일처만 법으로 허용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기 때문에 호주의 무슬림 남자들은 이슬람식으로 부인을 여러 명 두는 것이다. 물론 두번째 여자는 정식으로 부인이 될 수 없다. 법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 없는 자녀로 복지대상자가 된다. 무슬림들이 이런 식으로 호주의 유리한 제도와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섯째, 이슬람 인구의 증가는 높은 출생률에 의한 것이다. 한국이나 서구 국가들의 연인구 증가율은 1.2%에서 1.9%에 불과하다. 즉 한 가정이 평생 동안 한 자녀만 낳은 경우가 많으며 독신자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보통 5자녀 이상을 낳으며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그래서 30년 내에 구라파는 이슬람 국가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수년 전 리비아 대통령 가다피는 앞으로 수십 년 내에 구라파는 이슬람 국가가 될 것으로 호언장담하였다. 이대로 가면 그의 예언은 현실화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 외에도 경제와 무역 정치를 통하여 이슬람을 확산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하다. 이슬람의 국제외교와 경제무역은 어디까지나 이슬람 전파와 확장을 전제로 한다. 경제와 종교, 무역과 종교의 분리는 불가능하다. 작년도 외무부가 주도하여 조직한 한-아랍 소사이어티는 아랍국가와 외교적 제휴를 모색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이슬람 종교가 깊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 문화충돌의 실례

우리는 이슬람의 선교전략을 가지고 이슬람의 선교를 막을 권리가 없다. 이슬람이 우리 사회의 법을 위반하거나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 우리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전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종교의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도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슬람의 활발하고도 공격적인 선교보다도 무슬림들이 가는 곳마다 실제로 문화적, 사회적 갈등이 많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들과 결혼한 많은 여성들의 인권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문제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고 경계한다. 무슬림 게토가 안산을 위시한 많은 도시에 이미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언론은 기독교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는 신속하면서 이슬람으로 인한 사회 문제를 보도하는 데는 주저하는 것 같다.

우리는 구라파나 호주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무슬림들의 문화적, 사회적 갈등을 거울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스위스에서는 모스크의 첨탑 건립이 주민 투표로 금지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구라파 국가들이 이슬람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라파 각 나라들이 무슬림에 대해 갈수록 혐오감 내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여학생들의 차도르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이유 등으로 많은 프랑스 사람들이 무슬림을 거부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2005년 덴마크에서 한 만화가가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만화를 신문에 실었다. 그로 인해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데모가 일어나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교회가 불에 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독일에서도 많은 모스크로 인하여 독일 국민들 사이에 반이슬람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이슬람 테러로, 네덜란드에서는 동성연애에 대한 무슬림들의 지나친 반발에 백인들이 식상해 하고 있다.

지난 달 하산이라는 미국 무슬림 소령이 부대에서 동료 군인들을 무차별 난사한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산은 무슬림 미군 장교로 이라크에 파병 명령을 받자 같은 무슬림으로 어떻게 이라크에 가서 다른 무슬림과 싸울 수 있느냐며 무차별 난사하고 말았다.

이슬람은 움마(전 세계적 이슬람 공동체)라는 교리로 인하여 어느 종교의 신자들보다 전 세계 무슬림들과 강한 동지의식을 가진다. 전 세계로 확산되는 이슬람 파워, 그로 인하여 야기되는 이슬람 공포증과 테러는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호주나 동남아도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호주의 예를 들면 무슬림이 증가하면서 무슬림들의 목소리도 동시에 커져가고 있다. 한 이슬람 지도자는 ‘세계의 모든 땅은 알라의 땅이며 호주 땅도 역시 알라의 땅’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한 무슬림 지도자는 차도르를 하지 않은 여자들은 포장되지 않는 고기와 같아서 남자들이 강간하여도 그 책임은 차도르를 하지 않은 여자에게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10년 전만 하여도 호주에서는 차도르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등 많은 동남아시아도 증가하는 무슬림들이 서서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무슬림들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다니고 이슬람학교로 전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캄보디아 문화에 적응하려고 하기 보다는 도리어 캄보디아를 이슬람화하려고 한다. 태국 남부에서는 작년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1천 명을 넘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의 무슬림 공동체는 ‘무서운 동네’로 소문났다. 기독교인들이 많은 테러를 당하기 때문이다. (계속)

전호진 박사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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