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3월 22일 중동 국가 예멘 수도 사나(Sana'a)에서 수백 명의 여성들이 아동혼인 금지 법안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양성 평등으로 향해 나아가는 세계적 추세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으며 이제 예멘도 그 예외는 아님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예멘에서 결혼하는 여성의 절반이 18세 이전이며, 그 중에는 10세 미만도 상당수가 있다. 사실 아동혼인 금지 법안 지지 시위 전날 같은 장소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슬람에 반하는 서구적 가치를 도입하려 한다며 이 법안을 반대하는 시위를 맹렬히 벌였다.

100년 전 여성의 권리가 주요 사회 문제로 부상한 이후 아랍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크게 향상시켰다. 실제로 예전에는 여성 교육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오늘날엔 전통사상이 매우 엄격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대학생의 3분의 2가 여학생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최근 134개국을 대상으로 교육, 건강, 비즈니스, 정치 분야에서 여성이 갖는 기회를 측정한 성(性) 격차 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 의하면, 아랍 14개 국가 모두 하위 30위를 밑돌았다.

예멘이 최하위를 기록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벌어진 두 개의 대립된 시위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아랍인들의 인식 차를 보여주었다. 여권 향상의 장애물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맹목적인 애국자나 보수적인 남성 이슬람 성직자들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권익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자유롭고 부유한 나라인 쿠웨이트의 경우 2005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고 2009년에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자들은 여성들의 무관심과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과 싸워야 했다. 반면 바트(Baath)당의 통치 아래 오랫동안 세속적 근대화를 추구해 온 시리아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시리아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베일과 같은 무슬림 종교 양식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많은 시리아의 엘리트들이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학교와 유치원 그리고 이슬람 사원을 소유하고 있는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슬람 사회 단체 쿠바이시야트(Qubaysiyat)와 같은 단체들이 있다.

이미 1920년대 무슬림 베일을 벗기 위해 싸웠고 1956년부터 투표권을 행사했던 이집트의 여성들은 그 이후로 여성의 권익 향상에 매우 더딘 발전 속도를 보여 왔다. 현재 많은 이집트 여성들이 전통 복장을 고집하고 있다. 2009년 1만5천명의 이집트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67%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할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응답했다. 한편 최근 여성 판사를 임명하겠다는 이집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집트 사법부 법관들을 설득시키는 건 어려워 보인다. 2010년 2월 이집트 판사 380명 중 334명이 여성 판사가 민사 사건이 아닌 소송을 판결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집트 대법원은 여성 판사의 임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판사 사회의 반대로 인해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처럼 아랍 여성의 더딘 발전의 원인은 아직 남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여성 변호사의 법정 입장을 허락했지만 여성 변호사는 가족 관련 소송에서 여자만을 변호할 수 있을 뿐이다.

출처 : The Economist,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7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