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기본기를 다져라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2-17절 / 고린도전서 3장 11-15절
서론
프로와 초보를 갈라놓는 핵심, 기본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세워지고 있는가를 점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초보와 프로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초보는 기초적이고 단순한 것을 하고, 프로는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화려하고 어려운 기술을 구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프로에게는 오랜 경험과 숙련된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나 예술을 비롯하여 어떤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진짜 프로일수록 화려한 기술보다 기본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를 보십시오.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베테랑 타자도 경기장에 나오면 배트를 잡는 자세부터 점검하고 기본적인 타격 훈련을 반복합니다. 프로골프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고 특별한 기술만 연습하지 않습니다.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 어드레스가 바른지, 스윙 궤도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합니다. 축구 선수는 패스와 슈팅을 반복하고 농구 선수는 드리블과 기본 슛을 수없이 연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본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기본이 흔들리면 최고의 기술도 무너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면허증을 땄다고 모두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면허를 따놓고 20년, 30년 동안 운전하지 않으면 흔히 ‘장롱면허’라고 합니다. 면허증은 있지만 실제 도로에 나가면 초보 운전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20년, 30년 다녔다고 저절로 신앙의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사 임직을 받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고 영적인 기본기가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직분이라는 면허증은 가지고 있는데 말씀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예배가 습관적이며 사랑과 순종이 없다면 신앙의 연수는 오래되었어도 영적으로는 여전히 초보일 수 있습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신비한 비법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와 사랑, 순종이라는 기본기가 삶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느냐가 신앙의 성숙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본론
1. 신앙의 프로는 기본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디모데가 초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사역자였고 교회를 책임져야 하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새로운 목회 비법이나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거하라’입니다. 헬라어 ‘메네(μένε)’는 머물다, 지속하다, 계속 붙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것과 같은 계열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기본을 졸업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배운 복음의 진리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과 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나무가 성장했다고 뿌리를 땅에서 빼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커질수록 뿌리는 더 깊이 내려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기본적인 것을 시시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말씀 읽으라는 이야기, 기도하라는 이야기, 예배 잘 드리라는 이야기는 다 아는데 좀 더 특별한 것은 없습니까?”
그러나 신앙이 무너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운 신학을 몰라서 무너집니까? 칭의론이나 예정론 같은 깊은 교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떠납니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읽지 않고,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소홀히 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미움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실천의 부재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참된 신앙의 성숙은 매주 새로운 지식을 하나씩 머리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오늘의 삶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위기는 어려운 것을 몰라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기본을 놓칠 때 시작됩니다.
2. 신앙의 기본은 위기에서 실력이 됩니다
프로선수들이 기본 동작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속 150km가 넘는 공이 날아오는데 타자가 ‘배트를 어떻게 잡아야 하지? 팔꿈치 각도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늦습니다. 평소 반복했던 기본기가 몸에 배어 있어야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삶이 평안할 때는 누구나 믿음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잘될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질병의 진단을 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며, 계획했던 일이 무너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신앙이 드러납니다.
위기는 없던 신앙을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쌓아온 신앙을 드러냅니다. 평소 말씀과 기도로 내면을 채운 사람은 위기가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습니다. 평소 시편 46편 1절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는 말씀을 붙들던 사람은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반대로 평소 불평과 원망이 습관이 된 사람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먼저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평소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은 위기가 찾아오면 인간적인 방법과 꾀부터 찾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절과 9절에서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엎드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바울의 인생이 편안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를 붙들고 있는 영적인 기초가 튼튼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바울은 그 기초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터 위에 무엇으로 집을 짓느냐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짓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무와 풀과 짚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빨리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과 보석은 얻기도 어렵고 다듬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봉사, 보여주기 위한 경건, 직분에 대한 자랑, 외형적인 성과만으로 신앙의 집을 세우면 겉보기에는 대단해 보여도 불이 임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드리는 기도, 말씀 앞에서 자신을 꺾는 순종, 억울해도 용서하는 믿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하는 섬김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하나님 앞에 남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에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말씀하셨습니다. 평상시에는 두 집의 차이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차이가 나타납니다. 위기는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입니다.
3.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의 기본기는 무엇입니까?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4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결국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막연한 감정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 사랑과 순종이라는 구체적인 기본기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합니다. 기본이라고 해서 초보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될수록 기본은 더욱 엄격해집니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교육과 수련을 거칩니까? 기초의학을 공부하고 임상 교육을 받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에도 실제 의료 현장에서 계속 훈련합니다. 전문의가 되려면 다시 오랜 수련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전문의가 되었다고 기본적인 생체 징후를 무시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위급한 환자일수록 가장 기본적인 상태부터 확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과 관련된 일일수록 기본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전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기계나 시설이 반드시 거창한 문제 하나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부품 하나, 점검하지 않은 나사 하나, 무시했던 안전 수칙 하나가 대형 사고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나사 하나쯤 빠졌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이 생각이 위험합니다. 작다고 무시한 하나의 기본이 전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 하루 안 읽는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오늘 기도 한 번 안 한다고 믿음이 무너지겠어.” “예배 한 번쯤 소홀히 한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 “저 사람 한 명 미워한다고 내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작은 이탈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영적 기초가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수해야 할 기본기는 무엇입니까?
첫째, 말씀의 기본기입니다. 왜 말씀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까? 말씀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신앙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방향이 틀리면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신앙도 열심보다 먼저 방향이 바르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 감정도, 경험도, 세상의 유행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은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영적 방어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도 세 번이나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길을 비추는 등이고, 죄를 막는 방어선이며, 마귀의 거짓을 베어내는 성령의 검입니다. 말씀의 기본기가 없으면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진리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기본기는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내 생각을 말씀 아래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최종 기준으로 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기도의 기본기입니다. 왜 기도가 중요합니까? 기도는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싸우는 신앙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싸우는 싸움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심과 유혹, 두려움과 교만, 미움과 분열 속에서도 영적 싸움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한 후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말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형편을 알려드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십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신앙의 프로는 문제가 생기면 사람부터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화가 날 때 즉시 말하지 않고 먼저 기도합니다. 두려울 때 계산부터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면 기도는 그 검을 들고 실제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영적 호흡입니다. 호흡이 멈추면 육체가 살 수 없듯 기도가 멈추면 영혼은 힘을 잃습니다.
셋째, 예배의 기본기입니다. 왜 예배가 기본입니까? 예배는 내 인생의 중심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예배는 주일 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일에 드린 예배가 월요일의 직장으로, 가정으로, 우리의 말과 돈과 인간관계와 선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일에는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찬양하면서 월요일부터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간다면 예배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예배의 기본기는 내 삶의 중심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맞추는 훈련입니다.
넷째, 사랑과 순종의 기본기입니다. 왜 사랑과 순종이 기본입니까? 말씀과 기도와 예배가 진짜인지는 결국 우리의 삶과 관계에서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은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렸다면 그것이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어려운 사람을 섬기며,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사랑과 순종의 기본기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 기본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말씀은 무엇이 옳은지를 가르쳐 줍니다. 기도는 그것을 살아낼 영적인 힘을 공급합니다. 예배는 내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춥니다. 사랑과 순종은 그 믿음이 진짜임을 삶으로 증명합니다. 신앙이 오래될수록 우리는 “나는 얼마나 특별한 것을 알고 있는가?”를 묻기보다 “나의 기본기는 지금도 살아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4. 신앙의 기본은 반복할 때 내 것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본은 한 번 배웠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프로선수가 같은 스윙을 수천 번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기도에 관한 설교를 들었다고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안다고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가 중요하다고 안다고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복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절과 7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왜 이렇게 반복하라고 하셨습니까? 말씀이 단순한 지식으로 남지 않고 우리의 인격이 되고 습관이 되고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새벽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완전히 새로운 신학적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 고백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매일 하나님께 다시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무엇이 옳은지를 교훈하고, 잘못된 것을 책망하며, 비뚤어진 것을 바르게 하고, 바른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의로 교육합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신앙의 프로는 기본을 졸업한 사람이 아니라 기본이 삶이 된 사람입니다.
결론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초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초보는 기본을 빨리 지나가고 싶어 하지만 프로는 끊임없이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몸에 밴 기본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세월 동안 무엇이 내 영혼에 배었느냐입니다. 직분을 받았다고 신앙의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전면허증을 가지고도 30년 동안 운전하지 않으면 장롱면허가 되듯이 집사·권사·장로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씀과 기도와 예배와 사랑과 순종의 기본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는 여전히 초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기도의 골방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사랑과 용서와 감사와 순종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프로골프 선수가 스윙이 흔들릴 때 새로운 기술부터 배우지 않고 그립과 어드레스부터 점검하듯이 우리의 영혼이 흔들릴 때도 십자가와 말씀과 기도의 기본부터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기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거대한 기계도 작은 나사 하나의 이상에서 사고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작은 틈을 그대로 두면 결국 큰 균열이 됩니다. 말씀 하루쯤, 기도 하루쯤, 예배 한 번쯤, 작은 미움 하나쯤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전문가는 작은 영적 이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음에 거하십시오.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오늘 하나라도 순종하십시오. 신앙의 프로는 특별한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해 보이는 신앙의 기본을 평생 비범하게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바르게 세우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화려함이나 특별한 행사로 세워지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반석 위에 말씀과 기도, 예배와 사랑, 그리고 순종이라는 금과 은과 보석 같은 기본기로 세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기본기가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단단히 뿌리내려 어떤 풍랑과 시험이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으로 든든히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화려한 것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좇다가 정작 신앙의 가장 소중한 기본을 놓쳤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미 배우고 확신한 복음의 진리 안에 날마다 거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시고, 기도로 영적 싸움을 이기게 하시며, 예배를 통하여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게 하시고, 사랑과 순종으로 믿음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인생의 예상하지 못한 풍랑과 불같은 시험이 찾아올 때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평소에 훈련된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시며, 나무와 풀과 짚 같은 헛된 것으로 신앙의 집을 짓지 않고 금과 은과 보석 같은 믿음과 순종으로 집을 세우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굳게 서서 기본이 가장 튼튼한 교회, 말씀대로 바르게 세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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