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태 목사
▲배성태 목사
오래전 마틴 루터 킹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에겐 두 개의 생일이 있다.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날이고 다른 하나는 사명을 아는 날이다. 목숨을 바칠 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신학교에 다닐 때 들었는데, 삶에 큰 도움이 되었고 종종 떠올립니다. 두 개의 생일, 어떻습니까? 내겐 이 생일들이 분명합니까?

예레미야 32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명으로 받고 이에 목숨을 걸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얘기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 예레미야만은 아닙니다. 성경엔 이렇게 살다 간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사실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어져 오고 있다 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가 인생 말년에 겪었던 일입니다. 이를 보며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때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통치 10년, 유다 멸망 1년 전이었습니다. 이미 나라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고 상황은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그즈음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세 번째 침공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멸망은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있었습니다(1:13~16). 언제일지 몰랐을 뿐 하나님의 긍휼로 오늘까지 유예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멸망의 요인은 그들이 대대로 지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예레미야는 감옥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3절).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 그가 차지하게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를 가감 없이 왕과 지도층에게 전했습니다만 그들은 여전히 거역했습니다. 그리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더라면 그렇게 비참한 결과를 맞진 않았을 것입니다. 상황은 또 유예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신호등이요 역사의 신호등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죄인 된 인간의 실상과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구원의 길 되심을 담대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복음보다 위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는 복음이 인간의 운명에 영원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집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그룹과외를 하는 어느 교우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지혜롭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공부하는 책상 유리판 아래 교회에서 만든 전도지를 가지런히 펼쳐 두었습디다. 그러면 아이들이 전도지 내용에 대해 묻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물었죠. ‘이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전도지는 어떤 거냐?’ ‘0+1=100 100-1=0’이라고 했습니다. 수학 공부방이니 셈이 안 맞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면 복음과 함께 설명해 준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큰 사명입니다.

배성태 명선교회 원로목사, 우모하(우리 나라·모든 나라·하나님 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