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전 세계 오픈도어 사역 책임자가 한곳에 모여 전략회의를 갖는다. 올해는 오픈도어 본부가 있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였는데, 주요 아젠다가 오픈도어 DNA에 대한 것이었다. 내게 맡겨진 주제가 바로 오픈도어의 네 번째 핵심가치인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다’였다. ‘왜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오픈도어의 DNA를 돌아봐야 하는가?’ 발제를 준비하면서 줄곧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었다. 그렇다. 이제 오픈도어의 창립자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 정신만큼은 오랜 시간을 두고 변치 않도록 다음세대가 지켜가야 할 영적 유산이다.
1995년 한국에서 오픈도어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제 곧 한 세대를 마감하게 된다. 2025년이면 30주년을 맞게 되는데, 오픈도어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다시 깊게 생각하게 된다.
“言教不如身教, 身教不如境教。”(말로 가르치는 것은 모범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모범으로 가르치는 것은 환경으로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편집자 주)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일한 나는 자연스럽게 중국식 사고에 천착 되어 있다. 선구자들이 걸어갔던 길을 어떻게 다음세대와 공유할 수 있을까? 이러한 화두를 던지며 소통할 때 돌아왔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말로 가르쳐지는 가치, 함께 부대끼며 몸에 장착된 일상, 그리고 수많은 일상이 모여 만들어지는 문화와 전통, 이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세대와 세대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국교회의 선교도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 가는 도상에 있다. 오픈도어는 박해받는 교회를 섬기며 그들이 박해와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그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아 주님의 사명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와 함께하는 오픈도어 선교 방식도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들에게 전달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이다.
미디어가 그렇게 발달되지 못한 시절, 매 주말 찾아오는 KBS 명화극장이 있었다. 그때 만난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이 던진 메시지는 지금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이 영화는 덴마크 여류 작가 카렌 브릭센(Karen Blixen)의 원작을 아름다운 영상과 멜로디로 담아냈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해안가 마을에 세워진 소박한 교회, 청교도의 금욕적 삶으로 한평생 헌신한 목사님과 두 딸, 그리고 아웅다웅 삶을 영위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모두 청교도적 가치를 따라 한평생을 도전하고 살아왔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서로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프랑스에서 도피해 온 바베트라는 한 자매의 헌신적 삶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 프랑스 복권 당첨금 1만 프랑으로 준비한 프랑스 최고급 요리가 펼쳐지는 만찬에서 사람들은 서로 화해하며, 진정한 행복을 경험한다. 이 여운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잔상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세워 갈 수 있는가?
지난 8월 7일부터 11일까지 한동대에서 선교한국 대회가 열렸다. MZ세대들 1,400명이 모여서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업을 고민했다. 오픈도어도 모든 간사와 함께 이들을 섬기기 위해 찾아갔다. 부스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만나며, 8월호 회지에 소개된 오픈도어 사역 스토리 ‘한 영혼을 향한 멈추지 않는 기도의 힘’을 들려줬다. 그들의 눈매에 감동의 눈망울이 맺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픈도어는 박해 현장의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함께 기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10년 전 오픈도어는 에티오피아의 랄리스를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랄리스는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이 교회를 개척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것이다. 오픈도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독일 출신의 한 젊은 여성이 랄리스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만난 적도 없는 에티오피아의 여성, 랄리스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약 10년이 지나고 그녀는 오픈도어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녀가 어떻게 랄리스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으며,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오픈도어 사역자들은 감동했고, 랄리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 랄리스는 재혼을 하여 가정을 이뤘고,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도 마쳤으며,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간다.”
그렇다.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다.” 오픈도어 사역도 줄곧 기도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 이것은 오픈도어 창립자들이 삶으로 보여준 일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컨퍼런스 중간중간에도 논의를 멈추고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에도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이 오픈도어와 함께 만나야 한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전 세계 박해현장의 고통 가운데 있는 랄리스와 같은 지체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일신과 교회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더불어 전 세계 고난받는 교회와 성도들을 기억하는 기도가 병행되어야 한다.
11월 5일은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The International Day of Prayer for the Persecuted Church, IDOP)이다. 한국오픈도어도 전 세계 박해현장의 긴급한 기도요청들을 나누며, 여러 지체와 연합하여 기도할 것이다. 한국교회 성도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더불어 전 세계 연약한 지체를 돌아보는 주님의 긍휼함을 깨닫는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김경복 선교사(한국오픈도어선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