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Covid-19(코로나)가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코로나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정부 공식 자문기구인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자문위)는 Covid-19의 재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호흡기 감염병과 Covid-19가 동시에 유행할 수 있는 ‘멀티데믹’(Multidemic)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우리는 현재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상당 기간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국가마다, 지역마다 감염될 위험이 있는 곳에는 가지 말아야 하고, 마스크를 안전하게 착용해야 했으며,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더욱이 사람들은 서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떨어져야 했고, 심지어 실험용 백신을 몸에 맞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들은 그렇게 겁에 질린 채 자유롭지 못한 삶에 매여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에 빠진 채 사람마다 영적 평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 고난은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없고 발견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어떤 인생의 고통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작정’ 속에서 선(善)한 열매를 맺게 된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그 어떤 고난이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미래의 소망이 분명하게 주어졌다. 비록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겪을 수는 있지만, 마침내 그들의 고난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기쁨과 영광으로 승화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묘사한다. “그러나 너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이유로,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당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받는 고난은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과는 결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증거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고난받는 교회에게도 로마교회에 전해졌던 바울의 메시지가 동일하게 선포되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만약 그리스도인이 전능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궁극적 목적이 있음을 명확히 알린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히 주일마다 지역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이 땅에서 예배자이자 주님의 제자로서 삶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3절에서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하며, 타락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망으로 ‘하나님의 구원론적 공의’를 위해 고난의 자리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상 이 땅에서의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지금도 죄악된 현실을 마주하며 죄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본래 죄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이 세상은 우주 만물을 비롯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인간이 처한 저주, 즉 궁극적으로 죽음의 죄의 형벌과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1절은 전한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만약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고 가정할 경우, 그는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결코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 죄와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들만이, 이 땅에서 잠시 받는 고난의 의미를 하나님의 구원 작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인간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사람이 죄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첫걸음은 인간이 죄로 인해 분리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복음을 들음으로써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발생하는 영적 공황과 고통을 결코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 작정과 창조 섭리에 속해 있고, 절대자이신 하나님만이 인간의 영혼을 보전(保全)하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고난은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적 평안과 소망은 그저 먼발치의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교회는 두려움에 떠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비록 이 땅에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이 많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고난은 비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과는 그 의미와 박해에 있어 치환(置換)할 수 없는 차이를 갖는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교회는 고난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땅끝까지, 쉼 없이 증거한다. 잠언서의 저자인 솔로몬은 전도서 1장 2절에서 이렇게 증거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듯 하나님 없이는 이 땅에는 결코 소망이 없다. 그리고 소망이 없는 이 세상에는 이생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방황만이 자리 잡을 뿐이다. 2023년 현재 지구촌 한쪽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총성과 포성이 그치질 않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기근과 침수, 강압적인 정치적 압제, 그리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가난한 자들의 신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아주 적절한 기회가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린도후서 6장 2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오직 복음전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고난받는 교회를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손을 들어 ‘주의 날’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현실 속에 있을지라도, 이 땅의 고난받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위해 복음전도(Evangelism)를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배춘섭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선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