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봄, 부활절을 맞아 저는 북한강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여러 명이나 되는 세례 대상자가 흰 가운을 걸치고 거룩하고 엄숙한 침례식에 참여하였습니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성가복을 입은 찬양대의 부활 찬송이 마치 천국에서 들려오는 노래 같았습니다.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제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습니다. 그간 저를 교회로 인도한 누님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고, 별 노력을 다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고, 소식조차 듣질 못했습니다. 아직 살아계시길 바라면서 조용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참 깊고 오묘합니다. 우리 생각과 지식과 능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십니다. 하루는 저와 함께 일하는 회계사와 대화하는 도중, 저를 전도한 누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누님의 성함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제 친동생이 목회하는 LA의 한인교회에서 그 '누님'의 성함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때만 해도 '설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회계사에게 "그분이 미용실을 한 적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용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작년 추석 무렵 드디어 누님과 전화로 연결되었습니다.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리운 마음은 하나도 변함이 없었죠. 안부를 물어보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꽤 오랜 시간 통화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조율하여 마침내 지난 5월 저는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입니다.
LA국제공항 입국장에서는 내내 기쁨과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출장으로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이때만큼 긴장됐던 적이 없었습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누님은 걸음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을 때의 환한 미소는 그대로였습니다.
소원대로 누님께 저녁 만찬을 대접했습니다. 작은 선물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53년 전 '동생'이었던 그 청년에게 "어떻게 그렇게 잘해 주셨냐"고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저처럼 머리에 하얀 살구꽃이 핀 누님이 눈가에 웃음 주름을 만들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 삶의 빛이 되신 예수님을 동생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 그리고 청년이 열심히 살려는 것 보고 안타깝기도 해서 도와주고 싶었지."
저도 대답했습니다. "누님 때문에 저도 사랑의 빚쟁이가 되어서 가족, 동료, 직원 전도에 한 평생을 바쳤지요." LA의 봄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봄날보다 화창하고 들떴던 하루입니다.
이장우 일터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