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괴팍한 성미로 변해가자 보다 못한 동네 선배의 추천으로 중학생 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받는 것보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선물과 간식이 좋아 나갔었죠.
손재주가 좋은 저는 부산에서 금형기술을 배워 일했고, 제대 후엔 서울의 대기업 협력회사에 스카우트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4~5년 후에는 금형기술사가 됐습니다. 월급도 많고, 경쟁사 간 스카우트도 많은 시절이었는데 사회 선배를 통해 1988년 2월 18일 향상공업(현 3G테크놀러지)을 소개받았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이장우 회장님(당시 향상공업 사장)은 "이것 할 수 있느냐" "저것 할 수 있느냐"며 꼬치꼬치 따져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천연덕스럽게 "잘 못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밑에 수십 명을 데리고 금형 일의 책임을 맡아 봤던 저로서는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혹여 일을 더 시킬까 봐 일부러 못한다고 둘러댔습니다.
월급이 아주 적었는데도 제가 향상공업으로 오게 된 이유는 이장우 3G테크놀러지 회장님(당시 향상공업 사장) 때문이었습니다. 대화할 때 숨기지 않고 진실하게 말씀하시고 성실하셨기 때문에 됨됨이가 바른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만 다녀볼 심산으로 제품 개발 업무를 맡았습니다.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죠. 이장우 회장님께서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일을 시켜 보니 책임감 있게 일 잘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회장님과 저는 성향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제가 방향을 설정하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회장님께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조언을 참고하여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나갔습니다. 회사 이름처럼 기술이 계속 '향상'되었고, 품질과 기능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월급도 올랐고, 덩달아 회사에서 책임도 커졌습니다. <계속>
고영구 3G테크놀러지 사내 협력업체 일출정밀 대표(6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