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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식사는 끝났으나 우리는 그대로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교회의 아침 예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나는 그 교회의 아주 젊고 풋내기인 부교역자였다. 교인들은 낡은 건물 대신 새 예배당을 짓는다는 계획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기존 건물에 대한 교인들의 애착은 컸지만 너무 오래된 데다 교인 수도 늘어나 비좁았다.

아침 메시지는 이 계획에 초점이 맞춰졌다. 목사님은 교회의 확장된 사역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했다. 그는 교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자신이 얼마나 강하게 느끼고 있는지 설명한 다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관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간증했다.

그런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 모두에게 ‘메마’로 통하는 내 아내의 할머니 루시 라티머 여사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왜 나한테는 통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지 모르겠어.”

견고한 믿음과 온전한 헌신의 여인에게서 흘러나온 청천벽력 같은 이 단순한 한마디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나 그분의 인도에 관한 그럴듯한 말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하나님은 할머니의 그 말을 통해 내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그런 그럴듯한 말들이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외부인처럼 만든다는 사실을 생생히 깨달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그 말의 뜻이나 자신의 경험이 일어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혼란과 열등감을 느끼고 아주 불편해진다.

나는 그들이 급기야 모든 하나님의 인도를 맹목적인 힘, 즉 엄격하게 우리를 통제하는 힘으로 치부하며 하나님의 뜻을 한낱 운명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았다. 인간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 탓임이 분명한 경우에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 때문이라는 개념으로 쉽게 발전했으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다.

사실 할머니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며 사셨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할머니는 정작 그 경험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다는 개념과 연결시키실 수 없었다. 하나님과의 우정 관계에서 대화적 측면을 이해할 길이 막연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인간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고 믿는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찾아와 말씀을 거시는 하나님, 에녹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시는 하나님은 모두 인류의 종교사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순간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이 본질상 어떤 존재인지를 감안할 때, 우리의 진정한 삶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 안에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거룩한 경험이 종종 우리 눈을 멀게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앞을 보게 해주는 빛에 눈이 부신 까닭에 오히려 실체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가려진 물체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신자들뿐 아니라 심지어 불신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몇 년 전 ‘신에게 말하기: 미국인의 기도 방식에 관한 심층 분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번 주 미국에는… 직장에 출근하거나 운동하거나 성관계를 갖는 사람들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모든 미국인의 78%가 최소한 매주 한 번씩 기도하고 절반 이상(57%)은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한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미국인의 13%에 달하는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도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매일 기도한다.”

기도의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받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과 지도가 없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온갖 오류에 빠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로렌스 수사가 했던 말을 상기해 보자.<북코스모스>

“이 세상에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는 삶보다
더 달콤하고 기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천하고 경험하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기에서 그것을 행하기를 권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험을 연습함에 있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 아니다.
오직 사랑으로써 행하라.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음성』 중에서
(달라스 윌라드 지음 / IVP / 392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