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난 후 제 삶의 변화를 잠깐 나누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제가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난 해는 2001년 1월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10여 년 동안 대학 교직원 생활을 하며 신앙생활을 여느 사람들과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매년 연말이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빛과 소금’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막연히 북한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왔습니다.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가르칠 수는 없어도 등굣길에 오고 가는 북한 대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정답게 인사하는 제가 눈에 선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줄 수 없지만 마음으로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며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후 1997년 여름, 일주일 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정작 개인적인 기도는 나오지 않고 저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북한에 대한 기도가 계속 터져 나왔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말입니다. 신기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01년 드디어 10여 년 동안 재직하던 대학을 사직하고 하나원에 입사했습니다. 그곳이 북한이탈주민들이 있는 곳인지도 모르고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아무 준비도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입사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을 처음 만났기 때문에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무기도 없었습니다. 당시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전문서적 또는 논문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구글 또는 학술전자도서관 검색창에 ‘북한이탈주민’이라고 치면 수천 개의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은 남북한 통일에 있어 그들의 역할이 통일의 시금석이며 교량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주민들과 그 성격이 다르고 90% 이상이 노동자 또는 하층계층이기 때문에 공적 부담금을 가중시킬 ‘짐’이라고 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인 잣대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면은 북한 주민들을 실제로 만나지 못하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잘 적응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북한이탈주민, 제3국 체류 시 60% 이상 기독교인

o1.jpg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은 아동, 청소년, 성인, 여성 등 계층과 세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은 1997년 1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과 1999년 7월 8일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가 개소된 이후 체계화되었으며, 민간 참여가 확대되었습니다. 현재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2014년 기준 2만 6천여 명입니다. 이들은 북한을 떠나 제3국에 체류하면서 힘겹게 살다가 브로커 또는 선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제3국 체류 시 종교생활 경험을 조사한 결과 약 60% 이상이 기독교입니다. 또한 한국에 입국하여 합동심문센터 및 하나원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약 80% 이상이 교회에 출석합니다. 이렇듯 북한이탈주민들이 기독교에 많이 분포하는 이유는 제3국 체류시에는 생존하기 위해서이며, 하나원 기간에는 입국을 도와준 선교사에 대한 의리, 외부인들과의 교류, 마음의 평안 등입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지역사회에 편입된 이후에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적응을 위해, 입국 선교사에 대한 의리 등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기독교 분포는 정착기간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의 교회생활 지속 및 중단 이유

북한이탈주민들이 기독교 분포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것은 입국 초기 ‘도덕적 삶을 사는데 도움이 돼서’, ‘남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알 수 있어서’, ‘남한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라는 교회생활 이유가 감소하고 점차 믿음을 얻기 위함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종교생활을 지속하는 이유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교회생활을 중단하는 이유는 ‘직장생활이 바빠서’, ‘예배, 모임에 참석하라고 강요당하는 것이 싫어서’, ‘교리를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예배 의식이나 교리가 북한체재나 주체사상과 유사하여’, ‘목회자나 남한 교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데에 실망해서’ 순입니다(전우택, 유시은, 엄진섭 2009). 이러한 교회생활 유지와 중단 이유를 살펴보면 한국교회의 역할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교회생활 지원을 위한 노력

첫째, 북한이탈주민들의 교회생활은 그들의 적응과 믿음생활을 위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북한이라는 종교화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수 많은 문화충격을 받는 존재이며,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교회생활을 하며 좋은 사람을 만나 적응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교회를 통해 한국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바람직하며 안정적인 관계에서 작은 한국사회를 선경험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만나주시고 필요를 채우셨듯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줌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병행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에서 배운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와 하나님에 대한 차이점을 성경공부 및 대화를 통해 인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북한이탈주민들과 영육간의 교제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의 직장은 3D업종계열이며 이마저도 불안정합니다. 월평균 소득은 한국인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들은 남한생활뿐만 아니라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고 싶지만 직장 또는 심신의 피곤함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북한에서의 강제 동원식 생활 총화와 김일성의 신격화 교육으로 인해 기독교 교리에 대해 혼란을 표현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이유로 인해 신앙생활을 했던 북한이탈주민들이 교회를 떠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이 교회생활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들이 지금 현재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성도와 교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성령님이 우리를 중보하듯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영육간에 중보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선행되어야 하며 기본이 되는 자세는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는 목회자와 성도가 북한이탈주민들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허다한 죄를 용서하시고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북한이탈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이해하기 보다는 판단하고 거리를 두며 남한 사회를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갖기도 합니다. 또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북한이탈주민들을 섬기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만났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축복입니다. 큰 자가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병든 자, 죄지은 자인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제자이며 자녀이기 때문에 배우고 은혜를 입은 그 모습으로 그들을 만나고 이해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우리는 아무것도 그들에게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는 사랑의 물줄기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것을 준다고 자만하거나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 물질, 재능으로 북한 중보해야

2년 만에 하나원을 퇴사하면서 제가 가장 통탄한 것은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허탈감이며 실망감이었습니다. 자괴감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북한이탈주민을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상담도 하지 안을 것이다’라고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게 하신 것이 ‘사랑하라’는 계획이 있으셨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온전한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 제3국,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인생을 주시려고 이 땅에 내셨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어두운 마음의 감옥’에서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교회는 북한 및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고, 발을 닦이시고, 삶의 기준인 말씀을 가르치시고, 죄 사함의 십자가를 순종함으로 지셨습니다. 여러분은 북한 및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어떤 기도와 행동을 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나누어주십시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물질과 재능으로 중보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보화가 천국에 쌓이는 통로입니다. 이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통일을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유시은(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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