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모든 선지자들의 주된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혼합된 신관, 즉 우상숭배와 다른 한 가지는 사회악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를 위한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외침은 회개를 촉구한 내용이었다. 회개하지 않을 경우엔 엄청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신명기 28장을 배경으로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회개란 습관화된 입술의 회개가 아닌, 의지적 행동의 변화를 말한다. 오늘날 회개의 문제는 평생 동안 회개 아닌 회개를 하는 것이다).

요즘, 연말이 다가올수록 한 해를 정리하고 평가하며 뒤돌아 보고 있는데, 심히 염려가 많다. 여러 기독교 신문들을 통하여 들려오는 소식이나 한국의 大 장자교단, 大 교회, 大 G 선교회의 소식은 매우 탄식할 수밖에 없는 뉴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 100년 이래 이렇게 암울한 때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이다. 교회가 이러니 어찌 나라가 바로 방향을 잡고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형교회들이 소송에 휘말리고, 유명한 목사들이 돈 문제에 걸려 넘어진다.이름 있는 기독대학들의 비리, 돈과 인사 문제로 인하여 세상이 떠들썩하다. 놀라고 탄식하다가 이제는 지겹고 역겹기까지 하다.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러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오죽하면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가?

언젠가 이야기하였지만, 전후 세대, 한국 산업혁명시대를 지나오면서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세속철학이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을 지배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몇십 년 씨를 뿌려오던 것이 이제야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한참, 아니 한 세대가 지나도록 이러한 비리로 인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 본다.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큰 것을 좋아한다. 최고, 장자의 명분, 대교단, 대선교회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덧붙여 공금 횡령, 혹은 유용이라는 것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지도자들의 독단도 최고요, 이기적인 처사도 최고이다. 거짓말도 최고이다. 둘러치기 하는 것이나 술수를 부리는 것도 최고이고, 오만함도 교만도 최고이며,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최고이다. 무식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최고이다.

G 선교회는 이사 임원들이, 파송한 사역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임원 이사들은 사무총장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이유로 파면을 시키면서 기독교 공동체 역사에 오점을 기록하였다. 온통 야단이다.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 정죄를 당하고, 세상의 재판관이 당회장 자격을 주고 빼앗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교회의 일을 세속 법정에 가져가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 차라리 개인적으로 손해 보고 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도 2005년경 사역자간에 재산문제로 약 5년을 다투며 현지 법정에 고소되어 시비가 지속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법정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

그때, 대선교회는 결국 이 문제를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핑퐁게임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 사회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이미지와 한국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너희들은 다 물러가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무시당한 역사적인 경험이 있었다.

이제는 필자가 약자의 편에 서서 대선교회의 현재 발생한 사건들을 바라보니, 사회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목격한다. 힘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와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회법정에 고소하는 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힘있는 자들의 세력 남용, 언론플레이, 안하무인으로 대처하는 태도가 사회법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개인의 손해라면 차라리 당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일을 바로잡고 기관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서 최선의 방책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정부도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 아닌가?

장자교단이나 큰 교단, 혹은 대선교회는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어야 하는 사회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큰 것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연자맷돌을 목에 걸어야 함을 염려하여야 할 것이다. 책임 있는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며, 일반적인 몇 가지 고언을 드리는 바, 과히 책하지 말기를 바란다.

첫째, 하나님 앞에 정직한 인격을 회복하여야 한다. 신앙인의 인품 중 중요한 하나는 정직함이다.

목사가 되기 전에, 성직자가 되기 전에, 설교자가 되기 전에, 선교사가 되기 전에,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정직함이다. 어떤 때는 믿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정직함이 아닌가? 총신대학원 교정의 돌비에 새겨진 글귀는 첫번째가 ‘인격자가 되라’,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목회자가 되라’는 교훈을 하고 있는데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인정받는 것은 개인적인 관계이지만, 사람 앞에 정직함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신앙인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은 죄(罪)다. 정직함의 기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손익과 관련되어 양심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남의 돈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깨끗하여야 한다.

요즘 한국사회에 가십거리가 되고 있는 교단, 교회, 선교회가 고소당하는 문제의 핵심에는 언제나 대형이라 자부하며 우쭐대는 사람들로 일어난 것이 아닌가? 덩치로 보면 거인이지만 실속을 살펴보면 부정하기 짝이 없는 이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의구심이 간다. 결국은 깊이 들어가 보면 돈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둘째, 명예와 권력의 노예를 속히 벗어야 한다. 목사가 명예와 권력에 빠지면 그것은 이미 생명을 다한 것이다. 명예를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술수를 부린다. 술수에는 온갖 거짓과 음모와 부정함과 타락이 생겨난다. 이것은 성도의 일이 아니다. 오늘의 가장 심각한 병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누가 명예를 싫어하겠는가? 누가 힘 있는 자리를 마다하겠는가? 인간이면 다 원하는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함과 공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힘을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과 신앙인으로 책임을 감당하여야 한다. 이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것이다.

셋째,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을 잘못 벌였으면 당연하게 사과하고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과 기본이 통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만연한 기독교 지도자의 모습이요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과 교회가 희롱을 당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영적 지도자로 세워져 한국교회를 인도하고 있으니 어찌 한국교회가 바로 나갈 수 있겠는가? 물신(物神)의 포로가 된 한국교회의 세력 있는 몇몇 목회자들은 상식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 신앙이 있다면 이제라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도 중요하지만 신앙 공동체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넷째, 생명을 사랑하고 오래 살기를 원하는 자는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에서 거짓말을 금할지어다. (시 34:12)의 말씀을 나누고 싶다. 성직자들은 한번 원수가 되면 영원한 원수가 된다. 잘 풀지를 못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차라리 술 한 잔에 모든 것을 담아 삼키며 화해하고 둥글게 살아간다. 그런데 유독 잘 믿는 사람일수록 입술에 독이 가득하고, 분이 충만하며, 거짓에 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 아닌가? 명심할 일이다.

한국교회와 거룩한 공동체의 회복을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