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선교사의 만주 선교 방법론
▲존 로스 선교사의 만주 선교 방법론 ⓒ한국 순교자의 소리
그리스도 십자가의 본질은 인간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칭 기독교인이라 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이한 의식들도 대부분 그러한 믿음을 밑바탕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옥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죄가 실체입니다.

연옥의 어떤 불도 죄를 살라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고행해도 죄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헌금을 내고 고해성사를 해도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벌받아도 죄를 무효로 돌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죄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죄는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죽음에 내어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다 털어주어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약한 기도도 누군가의 부정한 죄를 씻어내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교회, 모든 교인들이 모든 노력을 다해도 한 영혼의 죄도 멸하지 못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아무리 신조를 낭송하고 향을 피우고 고행해도, 불교에서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염불을 외우고 향을 피우고 고행해도 아무 효험도 없습니다.

지옥은 그림자입니다. 죄가 실체입니다. 실체를 제거하십시오. 그러면 그림자는 바로 사라질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실체를 제거하지 못하면 그림자가 남을 것이고 남겨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죄를 제거하십시오. 그래야 지옥을 이깁니다.

죄를 계속 갖고 있어 보십시오. 지옥을 파괴하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의 특수한 교리 전체가 오류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참뜻에 반대되는 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모든 방법도 불교의 유사한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무익할 뿐만 아니라, 부러진 갈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믿는 사람의 손을 찌릅니다.

구원은 죄의 형벌인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 형벌의 원인, 즉 죄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화해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제거하여 하나님과 화해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렇게 화해하지 않으면, 이렇게 연합하지 않으면, 이렇게 부모 자식 관계가 되지 않으면, 평생 지옥 구덩이를 파게 될 것이고 거기에서 구출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 지옥입니다. 장소 면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듯이 지옥에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옥에 임하여 계신다는 사실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게 진짜 큰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이 죄에 빠져 하나님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되려면 죄를 제거해야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자비롭게 베풀어주시는 방법 말고, 죄를 제거하는 다른 방법이 인간에게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늘 말고, 죄에 흔들리는 영혼이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다른 곳이 발견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했고 연합했다는 증거는 변화된 생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죄의 행위를 사랑한다면, 죄가 우리 마음에 여전히 자리를 틀고 앉아 우리 마음이 애착을 갖는 것들을 지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으로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나 죄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죄는 하나님이라도 제거해 주실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서 돌아섭니다. “악에서 벗어납니다.” “선을 행합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회개합니다. 죄를 외면합니다. 죄를 버립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옳고 선한 일을 하면서 기뻐합니다. 의무감에 부담을 느끼며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기쁨에 이끌려 나아갑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서 못 견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기뻐요!” 구원받은 사람은 그렇게 기도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워집니다. 그 결과로 새로운 본성을 얻습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전에는 그 사람의 뜻이 그 사람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열매를 맺었겠습니까? 이제 그 사람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전에는 천한 본성을 따라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 사람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그 사람의 기쁨입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한 그대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거룩한 새 삶 속에 다시 태어납니다. 그 사람이 존재하는 데는 거룩함이 꼭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거룩한 삶에서 기쁨을 맛봅니다. 그 사람은 악한 것들을 기뻐하지 못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3장 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범죄하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의미한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물리적인 걸림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을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어둠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태양의 본질에 반합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는 어둠의 일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녀 안에는 하나님과 도덕적으로 꼭 닮은 면이 있어서, 이것이 죄짓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도 여전히 불완전하므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일어서자마자 말합니다. “그 짓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 짓을 결심하고 결국 넘어진 것은 진짜 내가 아니야. 가짜 내가 잠시 나를 지배했던 거야!”

새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고, 그렇게 살면서 기뻐합니다. 새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평화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생각에 기쁨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그 사람이 움직일 때 하나님이 늘 앞서가며 안내해 주십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손발보다 더 가까이에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발췌: 존 로스 선교사의『만주선교 방법론』
번역: 순교자의 소리(www.vomkorea.com), 감수: 리진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