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한국세계선교협의회(대표회장 강승삼, 이하 KWMA)와 한인세계선교사회(KWMF) 주최로 열린 제5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가 개최 됐습니다. 본지는 이번 대회 분야별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발표들을 발표자들의 동의를 얻어 계속해서 게재합니다. 다음은 국제문화예술기구(TCI) 대표회장인 김민섭 목사가 발표한 "문화예술선교의 배경과 전략방안" 발표 전문입니다. (NCOWE V 관련기사)

kms.jpgⅠ. 들어가는 말

선교는 그리스도를 다양한 문화 속에서 증거하고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성서적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에 주어졌다. 즉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 속에 주어진 것이기에 성서적 진리를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사람은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역사 문화적 상황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상 초문화적이나 적용상 문화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문화가 성서적 진리를 전하는 효과적인 매체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의 문화가 불완전할지라도 그의 뜻을 인간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인간의 문화를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 사용하신다. 최초의 선교사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보내셨다(요 1:14). 성육신(incarnation)은 인간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며 방법이다.  
   
본 연구는 문화선교의 신학적인 배경과 한국선교 초기의 문화예술, 스포츠영역에 선교사들이 끼친 영향을 조명하고, 현대에 와서 문화예술, 스포츠선교의 현황을 살펴보며,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문화예술, 스포츠선교의 세계선교 전략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문화선교의 선교신학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왜 세계선교에 있어서 문화선교가 있어야 하는 지를 확신 할 수 있으며, 예술, 스포츠, 문화를 선교적인 전략과 사역에 적극 수용 할 수 있다.

Ⅱ. 문화선교의 신학적 배경

1. 문화의 선교적 근거
  
촬스 크라프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화에 대해 크게 네 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교차문화적 선교의 관점에서 이 네가지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문화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God against Culture)
  
문화를 “세상”과 동일시하는 급진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세상은 악한자의 통치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반대(요한일서 2:15~16, 5:19)하는 입장이다. 문화의 본질은 악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거룩한 삶을 위하여 문화로부터 도피하거나 세상을 저주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모두 문화를 세상과 동일시한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입장은 현대의 교차문화적 차원에서 그렇게 바람직 하고는 볼 수 없다. 인간은 문화 속에, 문화 주위에 있으며, 문화의 산물이며 문화는 복음을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2) 문화 속의 하나님(God in Culture)
  
하나님과 문화 사이에 근본적인 일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을 그들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창조하여 하나님을 상대화 시킨다. 즉 하나님이 인간의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 속성을 부인하게 되기 때문에 현대선교에 있어서 매우 위험한 입장이다.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니 신학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 한다.
  
크리프트는 이러한 입장이 하나님을 특정한 문화 속에만 계신 하나님으로 가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은 어느 특정한 문화에 갇혀있을 수 없다. 오늘날 서구교회는 서구문화라는 형태를 강조한 나머지 복음과 서구문화를 동일시하는 선교사들의 오해로 말미암아 그동안 잘못된 선교를 수행했다고 스스로 비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서 유대주의를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였다(롬 3:29-30). 

(3) 문화 위의 하나님(God above Culture)
  
하나님은 문화 위에 그리고 문화 밖에 계시며 더 이상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다고 본다. 크라프트에 의하면 이러한 입장은 이신론과 서구 문화 속에 있는 보편적인 사고라고 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이신론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인본주의자들(humanists)이다. 이신론을 주장하다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부인하든지 아니면 “영원한 원리”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비인격화시키든지 한다. 그들은 신자들이 교회, 기도, 예배와 같은 기관들과 의식들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 없는 것으로 또는 해로운 신화로 여긴다.

(4) 문화 위에 그러나 문화를 통한 하나님(God-avove-but-Culture)
  
하나님은 문화 위에 계시지만 그 문화를 인간과의 교제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견해이다. 즉 하나님을 초월자와 절대자 되신 하나님으로서 문화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문화적 구조를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하여 왜곡되긴 하였지만 본질상 중립적인 도구 또는 환경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하나님과 인간 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며, 모든 인간적 이해와 성숙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으로 보고,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도록 고안된 여러 형태들로 구성된 일종의 ‘도로 지도’(road map)이다.
  
인간이 문화적 형태들(forms), 양태들(patterns), 과정들(processes)로부터 사용되는 것은 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문화의 그 어느 부분도 순수한 동기로 인간에 의해 쓰여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후 6:2). 그리고 구원 받은 인간은 문화적 형태들, 양태들, 그리고 과정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이 변하기 때문에 문화적 형태들과 과정들은 언제나 변화를 겪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결과로 인하여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문화 밖에 계시고 인간은 문화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담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그의 인간과의 만남의 장소로 선택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수단으로 인간의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문화를 철저히 사용해 오셨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인간의 문화를 사용하는 것을 선택하시며 어떤 점에서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화의 능력에 자신을 제한시키시는 것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문화 위에 계시지만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문화를 기꺼이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교차문화적 선교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는 성서적 진리를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인간의 다양한 문화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5)바람직한 문화관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는가? 문화를 무조건 선하게 여겨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아니며 아울러 문화가 악하다고 하여 폐기하는 입장도 취해서는 안 된다. 문화의 선한 요소는 장려하며 악한 요소는 인지하고 그것을 그리스도안에서 변화시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문화명령은 타락 이전에 주어졌고 따라서 타락 이후에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들이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성경을 자세히 보면 문화명령이 인류 타락 이후에도 다시 두 번이나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 9:1, 7).”라고 말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타락한 이후에도 문화명령이 주어졌다는 것은 문화명령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타락 이후 모든 것이 왜곡되었음에도 이렇게 하나님이 문화명령을 주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문화의 악한 요소와 선한 요소를 잘 파악하여 문화를 개발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과 사명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성경에 따라 문화를 폐기하자는 주장을 하는 자들은 성경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다.
 
타락 이후의 문화명령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더 적실하고 온전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와 같이 자연계가 완전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회복되었고 완전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은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임하여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already, and not yet" 이라고 간단히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속으로 인한 자연계의 회복이 아직 완전하게 완성되지는 않지만 이미 이루어져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타락 이후 주어진 문화명령은 더 강화되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주권 하에서 계속 더욱 힘차게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문화선교의 이해

(1) 문화의 정의 이해
 
문화의 정의 다양하다. 우선 어원적으로 문화를 정의해 보면, ‘문화’라는 말은 ‘경작하다’, ‘개간하다’('to till' or 'to cultivate')라는 뜻의 라틴어 ‘colore'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땅을 가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 마음, 또는 감정을 포함하는 의미도 지닌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다음과 같이 정의 될 수 있다. “도구, 언어, 추상적 사유의 체계를 사용하여 지식을 배우고 다음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종속하며, 사고와 언어와 행위의 가공물의 형태로 구체화된 인간의 제반행동 양상과 그 부산물이 문화이다.”
 
김영한은 문화를 정의하기를 문화(culture) 또는 문명(civilization)은 “교양화시키는 행동 혹은 교양 받은 결과로 이루어진 상태”, 더 좁게 말하면 “정신적 도덕적 훈련이나 문명이나 풍습 또는 취미에 대한 세련을 통하여 가져오는 개량, 개명, 연단 같은 인간 개발을 염두해 둔 말”이다. 따라서 문화란 인간생활의 한 부분 뿐 아니라 전 부문을 발달시키는 것을 말한다. Hiebert는 “문화란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바를 조직하고 체계화하는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공유된 사상, 감정, 가치, 그리고 행동에 연관된 유형과 산물의 통합된 다소의 체계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태는 문화에 대한 정의를 학자의 의견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Tyler는 문화란 복합적인 전체로서 지식, 믿음, 예술, 도덕, 법, 관습, 사회 구성원인 남성에 의해 획득되어진 습관과 다른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린톤은 문화란 특정한 사회 구성원에 이해 나누어지고 전수되어지는 지식, 태도, 습관적인 행동 패턴의 총체물로서, 예술품을 포함해서 상징에 의해 획득되고 전수되어지는, 행동을 내연적이고 외연적인 패턴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선교인류학자인 Paul E. Hiebert는 문화란 사회를 특징짓는 행동, 사상, 생산물의 배운 패턴의 통합된 제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의 정의를 볼 때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문화가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것과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화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2) 문화의 특징
 
김영한은 좀 더 포괄적으로 문화의 특징들을 여덟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문화는 사회적인 성격을 지닌다. “문화의 본질적 사실”은 “영구한 그룹으로 인류를 조직함”이다. 이 영구한 그룹은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 안에서 구성원들은 공동적 생활양식과 관습을 발전시킨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문화이며 이 문화는 인간들이 전수받고 전수하는 사회적인 것이다. 둘째, 문화는 “인간적 성취”로 특징짓는다. 문화는 인간의 목적 지향성과 노력에 의해서 자연을 가공함으로 산출한다. 셋째, 문화는 “가치체계”를 특징으로 지니고 있다. 자연이나 자연적 사건은 그 자체로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인간적 성취이므로, 이 인간의 노력에는 항상 목적이 설정되어 있다. 넷째, 인간이 이룩하는 가치체계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는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인간들이 성취하는 모든 사회적 업적과 관념과 이상들은 항상 인간의 복지와 인간 삶의 지적 정신적 향상을 위하여 만들어지며 봉사하되 이 유용성의 척도도 인간이다. 다섯째, 문화는 그 모든 형식과 다양성에 있어서 가치가 시간적으로 물질적 양태로 현상하는 특징을 지닌다. 여섯째, 문화적 활동은 “가치보존”과 관계한다.
 
문화적 가치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는데 물질적인 가치인 검물, 학교, 교회, 도로, 기계, 기념탑, 공원, 동상, 명승고적 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항상 새롭게 보수되어야 한다. 일곱째, 문화 할동의 특징은 복수주의(pluralism)로 규정될 수 있다. 문화활동에서 추구되는 가치는 다원화의특징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가치들은 그 사회의 수많은 단체들에 의해서 서로 상이하고 다양한 목적과 이해관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덟째, 모든 문화는 종교적 특징을 가진다. 도슨(Christopher Dawson)은 종교를 전 문화 영역을 지배하는 원동력으로 본다.
 
이와 같이 문화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인간의 물질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본다. 또한 문화란 시대와 장소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항상 유동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란의 철학자 C.A. van Peursen은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의 개념이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의복, 스포츠, 레져, 음식 등 인간에 관계된 모든 것, 즉 인간이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문화라고 말하고 있으며, 어느 특정한 계층이 아닌 모든 계층이 이러한 문화를 생산해 낼 권리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좁은 의미로는 미술, 음악, 문학, 연극, 뮤지컬, 스포츠 등을 말하는 예술로서의 문화를 말할 수 있고, 넓은 의미로서는 인간 삶의 전반적인 면을 말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3) 문화선교의 성경적 근거
 
문화의 어원을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문화란 말은 라틴어 'Colere'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은 경작(Cultivation)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Latin Vulgate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경작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썼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8)"고 하였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었다(창 2:15). 여기서 동산을 다스리라는 것은 바로 원예를 말한다. 이 원예는 영어로 horti-culture이다. 이것은 바로 아담의 노동(Adam's cultural labors)인 것이다. 아담은 우주의 한 존재로서 문화 창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이근삼은 성경적인 문화에 대하여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과시해 가면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철원은 성경적인 문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모방하는 모든 인간의 활동과 그 결과들이다. 인간의 활동은 하나님께서 창조에 넣어 놓으신 무한한 가능성들의 계발과 그 활용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세계를 포함한 모든 창조세계의 법칙들과 본성들의 탐구와 그 활용을 문화라고 할 것이다.
 
성경적인 문화를 웨버의 말을 빌려 요약해 보면 문화란 하나님의 피조세계 내에서의 인간 활동의 결과이다. 사람은 피조계를 개발하고, 자기 헌신의 반영인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문화 활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피조계를 개발하여, 모든 문화 영역이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4) 문화적응선교의 이해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헬라 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국제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그가 살았던 다소시는 세계의 교통로이었으며, 당시의 국제어인 코이네 헬라어는 그의 모국어가 되다시피 되었으며, 헬라의 사상과 이교의 사상도 잘 알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통역의 도움이 없이 설교할 수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언어와 사상의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얻기 위하여 적응하는 태도를 취했다.
 
바울은 상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대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유대인들에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대하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없는 자처럼 대하였다.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접근했는데,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적응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었다.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그의 소신 때문에 어떻게 듣도록 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실재로 복음은 진공상태에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독특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파의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융통성을 갖고 창안될 필요성이 언제든지 있는 것이다. 바울의 이 적응의 원리는 겸손을 의미하지만 선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후대 선교의 모델로 부각되어진다. 마테오릿치, 사비엘, 허드슨 테일러 등 많은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바울의 적응의 원리를 실천하였다.
 
한편 선교는 문화, 문화적 충격, 그리고 문화적 장벽이라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선교는 선교와 문화의 풍속에 잘 적응하여 현안의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 복음이 유대에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갈 때 할례 등의 유대 문화와 의식을 “어느정도 이방인 교회에 부과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총회를 소집하였다. 이 총회는 신약 최초의 총회로서 정기총회가 아닌 선교를 위한 총회이었다. 그 결정은 복음과 유대의 의식과 문화를 분리하고 더 이상 유대인의 의식을 이방인에게 부과하지 않고 다만 이방인의 부도덕을 금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정식으로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행 15:28-29).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도 문화와의 조화 문제를 볼 수 있고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 융통성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처럼 되었다. 이것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메시지 자체는 융통성이 없었다. 전파하는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가며 시도했지만 그가 전하는 복음 자체는 아무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 자체가 그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 철두철미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다만 복음을 위탁받아 전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을 변질시킬 수가 없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운 천사라도 복음을 변질시키면 화를 받으리라고 엄정하게 단언하였다. 아무리 신속히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파한다고 하더라도 그 메시지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별 의미가 없게 된다.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는 유대식 이름을 썼으나 선교를 떠나면서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라 칭하였다. 이것은 복음적 접변을 위해 훌륭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선교는 동질 의식과 공감성을 갖지 않고서 접근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유대인을 위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었으며(행16: 3),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한 후에 하지 않아도 무방한 결례와 서원을 행하였다.(행21: 17-26).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같이 치세하는 동일화(identification)를 실천하였는데, 이것 역시 토착화에 있어서 적응의 원리의 실례가 될 수 있다.
 
오늘날 토착화를 말할 때 선교지 문화에 적응하다 보면 복음의 변질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리하여 아세아의 선교 중에는 혼합주의(syncretism)의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그 당시의 바울에게 있어서는 복음의 변질이 없이 선교 현지에 복음을 잘 전달했다는 것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점이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토착화의 효과적인 방편인 적응의 원리를 사용하여 선교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방인을 구원의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타문화에의 적응성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가 선교한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선교하지 않았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의 문화배경이 다른 점을 감안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교했는데,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되었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같이 되었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마저 변화 시키려는 토착화의 시도와는 다른 것이다. 복음의 본질은 하늘의 천사라도 변질시킬 수 없지만 선교 방법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적용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울은 복음의 내용에 관한 한 강경하고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할 수 는 없다는 것이었다(갈1: 6-9). 그러나 그는 그 밖에 일들에 관하여는 매우 융통성이 있었다. 이는 단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 즉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제 1차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선교여행을 떠남과 동시에 그가 접촉하는 세계가 로마세계 였으며, 또한 로마의 영행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는 바울이 선교 여행시 복음과 문화와의 조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의미이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놓고 볼 때, 그 당시에 그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바울만큼 적절한 사람이 없었다. 첫째로 그는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었으므로 각처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들과 회당에 쉽게 접근하여 전도할 수 있었다. 둘째로 그는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것이 유대인들을 대할 때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유리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셋째, 그는 헬라 문화권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헬라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그 속에서의 활동이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유리하였다. 넷째는 그가 로마의 시민권 소유자였다는 것이고 다섯째는 그가 노동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유식한 율법학자였으면서도 천막 깁는 기술을 가지고 필요할 때마다 천막 깁는 노동자들 속에 섞여 노동하고 유숙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여섯째는 그 자신이 개종자였다. 열광적으로 복음을 배척했다가 개종한 그 자신의 경험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의 일을 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선교사라면 모름지기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할 것이며(마 10:16), 가능하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전 10: 32).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를 전하는”(엡 3: 8)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바울은 기꺼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바울은 우상 숭배를 무엇을 만들고 그리며 예술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우상 숭배를 영적인 간음, 하나님을 배반하는 육체의 음행, 속임, 잘못된 정육 등으로 해석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임을 강조했다(고후 4:4).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표현했다(고후 4:7).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몸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질그릇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리스도이시고, 그 분의 성육신 자체가 생명의 나타남이요 예술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생명이 보이는 그리스도로 나타나심은 그 자체가 가장 숭고한 예술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 도구이다. 바울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말씀했다(고후 4:18). 하나님의 선교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을 표현”하는 예술 선교야 말로 21세기의 뱡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력은 그 예술 작품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그 생명을 전달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리스도인들의 창조적 삶의 표현이자 봉사와 선교의 기능을 발휘한다.

3. 문화선교의 성서적 이해
    
(1) 창조와 문화명령
 
에덴에서 시작한 인류 최초의 문화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족하실 문화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화의 원형인 것이다(창 2:16-17).
 
아더홈즈(Arthur F. Holmes)는 그의 저서 '기독교 세계관'(Contours of a World View)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다음 일곱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무에서 유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이루셨다. 둘째,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자신 밖으로(ad extra)창조하신다. 다섯째,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 독자적인 실재를 부여하신 바, 이 세상은 선한목적을 위한 질서 있고 구조적이며, 법칙 통제적인 세상이 된다. 여섯째,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가치의 근거가 된다. 일곱째, 기독교 창조 교리에 내포된 마지막 구성요소는 창조과제나 창조 명령에 대한 관심이다. 하나님께서 문화 명령이라고 알려져 있는 피조물에 대한 권력을 인간에게 위임하였다(창 1:2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피조된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문화명령을 통해 구체화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있는 '다스리라'(domination, 창 1:26, 28), '정복하라'(subdue, 창 1:28),'다스리고 지키라'(창 2:15, 23)는 세 가지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발전시킬 책임 있는 문화적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확고히 하는 명령들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시고 자신의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인간을 그의 형상을 따라 영적 존재로 지으시고 창조를 발전시킬 '문화의 일꾼'으로 부르셨다. 창세기 1장 18절에서 20절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은 인간이 창조에 담긴 가능성을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 충만에 이르기까지 발전시킬 것을 명한다. 인간은 이 명령을 수행하되 그 인격의 중심인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길 종교적 본성을 기반으로 창조에 주어진 '법적질서'아래서 하도록 되어있다. 이와 같이 문화는 인간에게 주신 신적 사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사람에게 주권을 위임하셨다. 그 첫째 위임은 타락하기 전 인류의 대표자 아담에게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라는 명령으로, 인간의 전 문화 영역, 거주지, 농업, 산업, 상업, 정치, 사회 등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위임의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문화에 대한 청지기적 사명은 피조세계-자연계 뿐 만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 수반되는 통치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는 것을 소극적으로 보존 관리하는 것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이를 조작, 개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한편 이와 같은 인간의 문화적 사명은 노동의 규례로 좀 더 구체화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즉 노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역할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노동의 규례는 인간의 이중적 사명, 즉 피조된 환경을'개발'하고 '보전'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문화 형성은 개발, 경작과 더불어 피조세계에 대한 참된 돌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는 인간이 창조되는 순간부터 시작 되었으며 이후로 인간이 사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문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에덴에서 시작한 인류의 최조의 문화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고, 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족하실 문화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화의 원형인 것이다.

(2) 죄의 타락과 문화오염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동산을 가꾸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규례(창 2:16-17)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스스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졌으며 파멸과 더불어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에서 떠나,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붕괴와 소멸이라는 원리에 따르게 되었고 모든 자연적 물리체계는 그 이후로 내내 무질서 상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범죄의 결과는 인간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비조세계 전 영역에 까지 확장되어 물질 세계와 생물 세계에도 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역시 이러한 죄의 영향은 문화의 영역에도 미쳤다. 에덴에서의 인간의 문화적사명은 '의존적 창의성'을 가진 것이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피조계를 발전시키되, 우주의 질서나 구조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그 발전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율성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것은 자신의 '독자적인 창의성'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고, 우주의 구조 안에 있는 질서와 의미와도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삶의 전 영역에서의 인간의 문화적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고 있는 것을 나타나게 된다.
 
이정석은 문화명령과 타락에 대해 다음 몇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문화명령은 에덴동산에서 주어졌으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전제된다. 인간의 범죄와 그로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은 문화 창조의 방향을 혼돈 시켰다.
 
둘째, 문화명령은 동료인간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전제되었다. 한 가족으로서 문화 창조의 협조자라는 사랑의 관계에서 경쟁적이며 투쟁적인 상대로의 관계전락은 미움과 반목의 문화를 초래하였다.
 
셋째, 문화명령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전제하였다. 타락은 자연에 더 이상 하나님의 정원으로서 관리(stewardship)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자의적인 남용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적용 하는 대상이 되었다.
넷째로, 문화명령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올바른 관계를 전제하였다. 인간은 범죄 하면서 영적 죽음의 상태에 이르고 영적 종속과 영육의 도착적 지배를 결과하였다. 이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계를 혹은 도착시켜 진정한 문화 창조에 심각한 장애를 유발시켰다. 죄는 인간과 자연을 변질시키고 모든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담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다고 해서 인간에게 주신 문화명령이 소멸되었거나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악은 결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를 불필요하게 하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를 실패하게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이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질서를 혼돈스럽게 만들었으며, 거룩한 삶의 궤도를 이탈시키고 말았다. 또한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문화의 영역도 오염되고 말았다. 원래 창조주만의 영광을 위하여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타락한 문화를 양산해 내었다. 그러나 비록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문화가 타락하였을지라도, 여전히 인간의 문화적 책임의 유효성은 소멸되지 않고 여전한 것이며, 정성구의 말대로 “인간의 문화적 책임은 인간이 땅위에 사는 날까지,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Ⅲ. 한국교회의 초기선교와 문화

1. 스포츠문화의 전래와 선교사의 기여

조선시대 말엽에 그동안 굳게 닫혔던 쇄국의 문이 열리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갑오경장(1894년)을 전후로 근대스포츠가 한국에 최초로 들어왔다. 1895년 고종이 내린 교육초서는 교육의 실제가 지육, 덕육, 체육의 3가지에 있다고 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가볍게 여겨왔던 체육을 강조하였다. 이 교육초서에 따라 각급 학교는 체육과목을 마련하게 되고 운동회를 자주 갖게 됨으로써 근대 스포츠의 각종 경기가 점차 퍼져 나가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운동경기는 영어학교의 교사겸 선교사인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의 지도아래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던 해에 개최하였다. 허치슨은 1897년 6월 동대문운동장 자리인 훈련원에서 오늘날 육상경기대회와 영어학교대운동회를 개최하여 체육계뿐만 아니라 교육계의 공로자로 인정도어 1897년 5월에 고종으로부터 종2품 금장을 특별히 하사 받은 인물이었다.   
  
1905년 야구가 미국인 선교사 ‘짐례’에 의해 들어왔고, 1906년에는 한국 최초의 축구팀인 ‘대한 체육구락부’가 탄생되었다. 이어서 자전거경기의 개최, 1907년에는 농구가 역시 미국인 선교사 ‘짐례’에 의해 ‘황성기독청년회’(지금의 중앙YMCA전신) 회원들에게 소개되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국가의 기반을 다지기 전에 6.25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종전 후 1960년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선교의 업적은 미미하지만 외국선교사로부터 스포츠선교의 태동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2. 한국교회의 스포츠문화 선교 역사

체육인선교회는 1976년 경희대학교 앞 “해바라기식당”에서 이영무 선수가 라면 한 그릇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식당주인 김기화 집사가  예배처소를 내어주어 이광훈 전도사와 피어선신학교 신학생8명으로 구성된 “해바라기선교회”로 시작되었다. 그 해 해바라기 식당의 신축공사가 완공되면서 “체육인교회”를 설립함과 동시에 “한국체육인선교회”를 창립하여 스포츠선교를 시작하였다. 체육인선교회는 한국의 체육인을 복음화 시키고, 그 복음화 된 체육인을 통해 국내선교와 세계선교비전을 키워나가는 것이었다. 1979년 할렐루야축구팀을 발족하여 브라질 빅토리아팀과 자선경기를 치르고, 이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팀을 초청 친선경기를 갖고 1980년 할렐루야축구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1986년 세계체육인선교회로 개명하여 스포츠선교 사역을 전개해 오다가 2003년 한국스포츠선교협의회와 통합하여 (사)세계스포츠선교회로 새롭게 명칭을 변경하여 스포츠선교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스포츠선교회는 조종남 목사(당시 서울신학대학교 학장)가 1982년 홍콩에서 개최된 국제스포츠선교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스포츠선교세미나에 참석하여 스포츠를 통한 복음선교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귀국 후 1985년 6월 3일 창립하여 “스포츠를 통하여 전 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전도표제아래 4가지의 사역 목표가 설정되었다. 첫째, 체육인 전도 및 제자훈련, 둘째, 기독체육인을 통한 국내외 선교, 셋째, 체육목회 개발로 교회 성장촉진, 넷째, 향후 올림픽 선교를 위한 국제협력을 목표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는 선수촌에 “기독교관”을 설치하여 선교하였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기독교선교관”과 “만남의 집”을 설치 운영하여 선교사역을 전개하였다. 올림픽 개최 1년전에 ‘88서울올림픽전도협의회’를 결성하여 11개의 각 분과로 나누어서 선교전략을 세워 괄목할만한 큰 선교의 열매를 거두었다.
  
한국스포츠선교회는 국적, 교파, 직분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헌신된 65명의 선교정예 요원으로 하여금 각국 선수들에게 예배, 신앙상담, 영화상영, 문서전도, 선교물품증정 등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올림픽대회 기간 중에 예배횟수가 184회로 참석인원이 4천 273명이었고, 총 신앙상담국은 100개국에서 2천 446명이었으며, 기독교영화 상영은 총 40회로 273명이 관람하였다. 문서전도는 각 나라별로 성경책 12,237권과 전도지 31,000부를 각국의 임원, 선수들에게 전달하여 당시의 적성 국가들과 아랍국가 등에서 온 임원, 선수들로 하여금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적극 복음을 전파하였다.  

2002월드컵대회를 앞두고 한국의 스포츠선교단체들이 모여 국제적인 스포츠제전에 앞서서 스포츠선교의 창구를 일원화 할 필요성을 가지고, 2000년 12월 14일 한국스포츠선교협의회(대표회장 박종순 목사)가 출범되었다. 2001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Goal2002월드컵선교조직위원회’를 결성하여 2002년 6월까지 월드컵선교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한국대표팀이 4강까지 오르는 역대 최상의 성적과 수많은 선교의 열매 거두었다. 한국교회에 스포츠선교에 대한 사명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먼저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국목회자축구대회’를 개최하여 이 대회는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본회는 한일Goal2002선교협력회의를 개최하여 일본에서 한일Goal2002선교대회를 개최하고 한국목회자축구팀과 할렐루야축구단과 일본교회가 연합하여 일본에서의 스포츠선교를 전개하였다.  

3. 한국문화예술의 선교적 역량

Ⅳ. 한국교회의 현대 문화선교 현황

1. 스포츠문화 선교단체와 사역
       (1) 세계스포츠선교회(WSM)
       (2) 한국스포츠선교회(KSM)
       (3) 할렐루야축구단
       (4) 헤브론축구선교회
       (5) TIA태권도선교단
       (6) 세계태권도선교회
       (7) 샬롬스포츠비전클럽
       (8) 국가대표샬롬회
       (9) 국가대표에이레네
      (10) 한국축구선교협회
      (11) 국제스포츠선교연구원

2. 음악 무용문화 선교단체와 사역
       (1) 한국교회음악협회
       (2) 한국복음성가협회
       (3) 한국기독음악인연합회(CMA)
       (4) CCM계
       (5) 유명해국악선교단
       (6) 이애라워쉽찬양단
       (7) OMD
       (8) 예향워쉽댄스선교단
       (9) 음악문화코리아(KMC)
      (10) 한국무용선교회
      (11) 국회합창단

3. 미술문화선교단체와 사역
       (1) 한국미술인선교회
       (2) 미술비전코리아(AVK)
       (3) 청년기독미술인선교(CUSAC)
       (4) 해외미술선교
       (5) 오마이갓(Oh My God)
       (6) 한국기독미술인협회

4. 예술문화선교단체와 사역
       (1) 국제문화예술기구
       (2) 아시아문화연구소 
       (3) 더 프레즌트
       (4) 국제문화교류회
       (5) 쉐카나터치선교회
       (6) 7080연예인선교회
       (7) 극단파도소리
       (8) AM연극선교단
       (9) 샴뮤지컬
      (10) C end J
      (11) Team&Team
      (12) 레일아트
      (13) Transform Korea Connections
      (14) 탤런트신우회

5. 한류문화와 선교적 기대
      
한류에 관한 이야기는 독도문제와 함께 불거져 나온 일본의 혐한류. 중국의 항한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류도 풍성한 성과들과 함께 15년이 다 돼가는 한류 열풍의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내외신 기자 포함 1000여 명이 몰려든 영화 '외출'의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 주연을 맡은 배용준도 또 그를 보러 온 아시아 각국의 팬들도 모두 긴장된 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저희 일본 팬들도 너무 긴장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특히 손예진씨와 러브신, 어떤 장면이 나올까 굉장히 두근두근하면서 영화를 봤는데요. 어떤 그런 베드신과 러브신이라는 이미지보다 하나의 영상미를 추구하신, 너무 아름다운 것에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요." 이들이 보여준 이 짤막한 대화가 바로 한류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있었던 배용준의 팬 미팅 행사. 비가 오는 와중에도 학교 정문에서부터 이어진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배용준의 '외출' 월드 프로모션 행사는 '겨울연가'로 증폭된 한류의 제1기가 끝나고 새롭게 제2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린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 한류가 조금 식은 듯하지만 우리 스타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겨울연가'의 파괴력은 여전해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Q) '겨울연가' 케이크 아세요? A) "아, 그렇습니까?"

한국어 배우기 열풍도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Q) 왜 한국어를 배우나? A) "한글로 배용준씨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싶어서요."

그리고 배용준이 영화 '외출'의 월드 프로모션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일본 사이타마현 슈퍼 아레나에서는 한류 올스타 서미트가 열렸었다. 배용준으로부터 시작된 한류 스타가 권상우, 이병헌, 김승우, 장동건 등 새로운 한류 스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새로운 한류 스타의 탄생은 새로운 부가 수익을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한류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비는 부도칸에서의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일본 내 신 한류 스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으며 장나라와 강타는 중국어권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연기자로 손꼽힐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이 산업정책연구원 등에 의뢰해 발표한 한류의 경제효과는 4조 5천억 원이었다. 4조 5천억 원은 드라마, 음반 등의 콘텐츠 판매량과 간접효과까지를 포함한 금액이었습니다. 이것은 한류가 가져다주는 직, 간접적 경제적 이익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였다.

그래서 한류의 지속적인 확산과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한류문화관광단지인 한류 우드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하지만 배용준의 일본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하고 혐한류라는 일본 만화가 유행하며 중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항한류의 기운이 번지면서 한류를 보다 체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자숙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단연코 2006년 한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한류 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중국에서 최초의 한류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은 쇠퇴한 홍콩영화와 상대적으로 비싼 일본 드라마의 빈자리를 우리 드라마들이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의 수출 가격이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만의 예만 살펴보더라도 그러한 사실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대만 현지 방송국인 '비디오랜드'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 회당 평균 구매액은 2001년 2천 달러 선에서 2004년 5천 달러 선까지 올랐지만 대만의 한국 드라마 수입총액은 2003년 320여만 달러에서 2004년 180여만 달러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의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매출은 오히려 감소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2006년초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민병두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한류 열풍은 5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에서의 스타 마케팅과 스타 프로모션의 부재도 한류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낳게 한다. 권상우, 강동원 등 수많은 한류 스타가 등장하고 있지만, 스타의 직접적인 수입원이랄 수 있는 광고는 배용준, 류시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 그리고 일방적인 문화 수출로서의 한류는 조금씩 그 역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류의 백과사전적 의미는 1990년대 말부터 동남아시아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다. 바람은 어느 순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무한한 경제,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한류. 한류에 대안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난 시대의 홍콩영화와 일본대중문화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2006년. 한류 제2기의 도약을 도모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6. 영화문화선교
       (1)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2) 서울기독교영화제

7. 청소년선교
       (1) 한국청소년동아리


Ⅴ. 한국 문화선교의 대안전략

1. 문화전문선교단체(TCI)와 일반선교단체와의 협력선교 체결 

2. 문화예술, 스포츠선교단체와 현지선교사 사역과의 협력

3. 한류문화의 기독교문화로의 창작진흥 사업과 문화선교 협력

4. 교회문화예술교육과 교회스포츠문화 양성 및 선교지 협력사역

5. 사회문화예술선교 양성과 직장선교의 문화예술,스포츠 선교

6. 청소년동아리문화의 세계선교화

7. 다문화선교의 양성과 선교사 발굴

8. 문화예술선교교육과 전문인선교사 양성

9. 정부, 지자체 관계의 문화선교프로젝트 강화

10. 국제관계의 문화선교 교류를 통한 문화선교프로젝트

Ⅵ. 문화예술 선교의 대안

1. 기독교문화예술교육과 전문인선교사(강사) 인력양성

1) 예술강사의 전문인선교사 교육기관 운영과 지원사업

(1) 사업목적 : 기독교 문화예술을 교육할 수 있는 예술강사의 전문인선교사 교육 사업을 활성화하여 분야별 전문인력이 선교현지의 교회, 학교 방문 교육을 통해 기독교문화예술교육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전문교육 인력을 양성화 하고 선교현지인의 기독교문화적 소양과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여 기독교문화예술 진흥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감을 목적으로 한다.
(2) 예술분야 : 국악, 전통문화,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미술, 만화, 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등 예술문화 분야의 교육 지원사업
(3) 추진사업 :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의 분야별 문화예술교육 전문인선교사 양성 사업을 활성화하고, 전문인 예술강사의 선교현지 학교에 장,단기선교사로 파송하여 기독교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확대 및 기독문화사업을 확대해 간다. 
(4) 선교사의 재교육 : 현지선교사의 기독교문화예술 교육지원 사업을 통하여 현지교회 교육 및 기독교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지원한다.
(5) 예술문화 교육의 질 재고 : 예술강사 교육활동과 평가 연수 등 역량 강화를 통한 교육의 질을 재고하여 향상시킨다.

2) 예술전문인선교사(강사) 선발 배치

(1) 선교지 선정 및 예술전문인선교사(강사) 선발 : 모집공고 및 지원신청서 접수 -> 예술강사 서류심사 -> 예술강사 면접/실기심사 -> 예술전문인선교사 교육 -> 평가결과 및 심사결과 -> 선발결과 정리 및 교육현지 배치 -> 선발 및 선교대상 현지학교배치 -> 예술강사 연수 및 파송 -> 예술전문인선교사 지원 및 운영
 
3) 교육 기자재 지원

(1)선교현지의 초,중,고등학교, 교회학교, 특수학교, 선교현지의 대안학교에서도 수준 높은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교육 콘테츠 및 기자재를 지원한다.  
(2) 기자재에 대한 세부품목 및 지원대상을 확정하여 해당 기자재를 교육현장에 지원한다. 분야별로 연극은 연극수업용 조명기세트, 무용은 수업 진행을 위한 음향기기, 마화애니메이션은 감상 및 이해관련 실습 기자재, 디자인, 공예, 사진, 음악, 미술 등 각 분야별 체험교육을 위한 기자재를 지원한다.

4) 예술전문인선교사 강사의 교육평가 및 선교현지학교평가

(1) 평가 :매년 예술전문인선교사 강사의 교육활동과 지원대상 교육장의 상황을 평가하고, 차년도 예술전문인선교사 강사의 선발과 선교현지 대상학교를 선정할 경우 평가 결과를 반영하여 예술전문인선교사 강사와 지원 학교의 역량을 강화한다.
(2) 평가대상은 예술전문인선교사, 지원체제, 교육장(학교교육장, 교회교육, 사회교육장) 평가이며, 수업준비 및 교육활동 능력 등 분야별로 평가하여, 예술전문인선교사 강사 선발, 지원대상 교육장 선정시 반영한다.

5) 분야별 교육위원회 운영

(1) 세계문화예술교육원(가칭)에서는 분야별 예술교육의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위원회를 두어 예술분야의 전문교육을 지원한다.
(2) 예술전문인 강사의 교육활동 평가 및 자문과 현장방문평가위원으로 활동하여 지원한다. 교육위원회에서는 예술전문강사들의 교육활동과 평가계획을 수립하고 지도한다.
      
6) 명예교수 사업운영

(1) 해당분야의 명성이 있는 기독문화예술인으로서 교육사업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을 위촉하여 교육현장에서 수준 높은 교육의질을 체험케하여 예술문화 교육의 질을 촉진시킨다.
(2) 국내외 선교현지에서 예술문화 분야의 대표성을 가진 기독교 인사들을 위촉하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문화교육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며, 문화예술의 전문가들의 재능을 통해 사회적 나눔을 실현한다.
(3) 명예교수 프로그램 유형 : 해설이 있는 연주회 공연, 이야기가 있는 전시, 음악있는 미술전시, 함께하는 창작수업, 예술캠프, 예술기행, 마스터클래스,
(4) 프로그램 기획 : 프로그램의 형식은 명예교수 교육콘텐츠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운영하며, 참석자나 교육장의 요청을 반영하여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5) 명예교수와 학생들의 만남을 지원함으로써 다양한 문화적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수준높은 문화예술의 접촉으로 성숙한 문화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 사회문화예술교육과 선교

3. 문화예술의 국제협력선교와 예술선교 교육개발

Ⅶ. 나가는 말

김민섭 목사 (국제문화예술기구(TCI)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