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상황화에 따르는 위험 요소"(The Danger of Contextualization)란 주제로 죠이선교회관에서 Call of Hope Korea 주최 '제3회 이슬람 세미나'가 열렸다. 이 행사를 주관한 TMS International 정진환 대표는 "한국교회도 여러 선교 전문가, 선교사, 학자들이 참여해 '이슬람 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지침서'를 공동으로 만들어 이슬람 선교에 혼란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지는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할 예정이며, 다만 발표자는 주최 측의 요청대로 익명으로 처리해 전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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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게 맞게 복음을 적용하는 일" (Adapting the Gospel to Islam)

알라를 섬기는 선교적 방안

일상적으로 우리는 전세계 이슬람으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는데, 그것은 목회자와 전도자들을 위하여 세미나를 열어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과 인도 남부, 북부 등지에서 2008년 전반부에도 여러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런 세미나 요청은 끝이 없다. 이런 세미나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슬림들에게 나눌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계속 질문한다. 우리는 2009년에도 나이제리아, 가나,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세미나에서 정기적으로 선교사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복음을 이슬람에 맞도록 상황화 하려고 한다.

모로코에서 우리는 B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울은 B의 모델이었다

B은 모로코에서 사역하는 미국 선교사였는데, 어떻게든지 무슬림들을 구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바울은 그의 모델이었다.

B은 자신이 무슬림처럼 보이고 싶은 나머지 너무 앞서 나아갔다.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영어 사용은 포기했고, 이름도 모하메드로 바꿨다. 신앙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그는 “나는 무슬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무슬림처럼 수염을 기르고, 그들과 같은 옷을 입었다. 사람을 만나면 앗살라무 알라이쿰(알라의 평안이 함께하기를)라 인사를 했고, 음식을 먹거나 마시기 전에는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했다.
 
그 도시 최고급 식당에서

그러던 중 그 부부의 은혼식 날, 최악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아내를 최고급 식당으로 초대했다. 너무 유명한 집이라 예약도 해야 했다. 부부는 제일 좋은 테이블을 배당 받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여러 명 사환이 둘러 서서 시중을 들었다. 주인이 직접 나타나 인사를 하며, 오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선교사 부부는 마치 왕이 된 것 같이 느꼈다. 음식은 감미로웠고, 시중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선교사는 계산서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식당 주인이 테이블에 다가와 “형제여, 그대는 내 특별 손님입니다. 나는 전혀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식사 대접은 내 작은 감사 표시입니다”라고 말했다.

선교사는 이런 말에 감사하기 보다는 당황했다. 그래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만, 왜 내게 감사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라고 더듬거렸다.
 
“당신이 무슬림이 된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식당 주인의 답변에 선교사는 경악했다:

"형제여, 그대는 미국인이면서 우리와 함께 살았고, 게다가 우리 종교인 이슬람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니 이는 기독교란 거짓 종교이며, 이슬람이 유일한 참 종교란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오늘 내 손님이 된 것입니다. 내 작은 감사 표시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를 믿기로 결정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상적인 선교 방법

2006년 3월 나와 이샥 얼슨은 인도네시아에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또 다시 우리는 이슬람 세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하는 질문을 대하게 되었다. “이상적인 선교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지역  우리 조국의 무슬림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복잡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효과적이고, 비용이 크지 않고, 고통이 없고, 무엇보다도 무슬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이런 방법은 없다. 우리는 다시 반복하는 것은, 무슬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가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쥐어 주는 것이란 대답이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느냐에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들이 3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우리는 누누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읽으므로 눈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놀라운 전도의 무기

인도네시아에서 세미나를 하는 중 젊은 전도자가 우리에게 나왔다. 그는 놀라운 무슬림 전도 방법을 발견했노라며, 자신이 그것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선교사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상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책자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낙타 훈련 교재’라는 것이었다. 낙타방법이라고 알려진 이 소책자는 파키스탄에서 사역하던 미국인 선교사가 저술한 것이다.

책 표지에는 안경을 끼고, 터번을 두르고, 성경을 읽는 낙타의 그림이 있었다.

예수는 알라의 100번째 이름이다

그 소책자 제목은 근동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무슬림 전설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전설에 따르면 알라는 사실 99이 아니라 100 개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알라가 99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이슬람의 가르침은 상식처럼 되어 있다. 낙타의 비밀이란 바로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조사에 의하면 이런 전설이 이슬람 세계에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슬람교에 의하면 낙타가 알라의 100번째 이름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할 정도라는 것이다.

반기독교적인 책이 선교사의 도구란 말인가?

그러나 이 소책자는 간단한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 5단계를 통하여 무슬림과 사귀면서, 그들을 개종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첫째와 마지막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의 내용이 코란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코란에 기초하여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전하려 하는데, 그 근거를 반기독교 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코란은 확실히 반기독교적이다. 코란은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부정한다. 예를 들면, 수라 19:88-90가 그러하다.
 
이것은 코란과 이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그리고 또한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수많은 경우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코란 같은 책을 통하여 예수를 구주라고 증명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낙타가 해답을 갖고 있다

세미나에서 우리에게 소책자를 전해 준 그 젊은 인도네시아 친구는  낙타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낙타 책은 표지부터도 아주 우스웠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선교사들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특별히 아시아 지역에서 각국어로 번역된 책이 많았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을 못주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코란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사실은 코란이 상황화의 방법으로 일부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복음적인 선교학자들이 가르치고 선도하고 있었는데, 특히 미국이 주도적이었다.

상황화는 선교의 문제인가?

일반적인 의미로 볼 때, 상황화란 전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연지사이다. 내가 무슬림 지역 선교사라면 당연히 무슬림 앞에서 짧은 바지 차림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돼지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데, 이는 그들을 사랑하며 존경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처신은 상황화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화란 복음을 이슬람에 맞추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복음을 그들에게  맞추려는 목적은 아무런 마찰도, 문제도 없도록 하려는 것인데, 다른 말로하면 전혀 핍박을 없게 하려는 것이다.

무언가 다른 세계

어떤 복음적인 선교 단체에 갔다가 또 다른 독특한 상황화를 대하고 몹시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단체의 이슬람 전문가는 오랜 기간 아시아에서 사역한 서구인인데, 우리에게 당신들은 알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슬람의 알라는 반기독교적이고, 반성경적인 존재로서 우리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우리는 선언했다. 그 선교사는 분명히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는 서랍을 열고, 칼라 세계지도를 꺼내어 우리에게 넘겨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지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그 지도는 보통 지도인데, 몇 군데 오류가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모양이 보이지 않았고, 카나다는 좀 작게 그려졌고, 일본 열도 중 몇 개가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는 그럴 듯 했다. 우리들은 그 지도가 세계지도이기는 한데, 약간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요? 알라도 마찬가지랍니다. 대충 그는 우리 하나님인데, 몇 군데 다를 뿐이지요.”
 
“코란은 아랍에 계시한 하나님이다”

우리들은 복음적인 선교 단체소속의 선교사가 알라와 하나님의 차이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코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코란은 알랍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다. 우리는 아주 그것을 존중하고, 우리 친구들이 성경과 더불어 코란을 읽도록 권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를 따르므로 나는 훌륭한 무슬림이다”

또 다른 상황화 방법으로 자주 권고하는 것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 읽은 선교 저널의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한 무슬림의 간증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나는 내 친구와 실제로 이런 대화를 했다.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자네는 어느 종교를 따르는가?- 나는 대답했다: 나는 무슬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나는 대답했다: 예수는 그리스도인들만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온 세상을 구하러 오셨다. ”

무슬림에서 개종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간증에 이르기를 자신이 성경을 읽는 것은 코란이 분명히 그렇게 하라 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이슬람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대화를 마치면서 그는 무슬림 친구에게 물었다:”그래, 자네는 이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인가?” 그 무슬림은 “그건 자네 마음일세. 내 생각에는 내가 한 분 하나님께 복종하고 예수를 따르니 나는 훌륭한 무슬림이라 생각하네”라고 말했다. 이로 보건데 상황화를 주창하는 방법에서 그들은 알라와 하나님을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다.

이슬람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특별히 무슬림을 위해 번역한 성경들이 있다. 우리는 오래 전에 레바논에서 이런 번역본을 본 일이 있다. 출판인에게 왜 이런 성경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다: “우리는 우리 동료 무슬림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전도를 하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이슬람에 맞도록 했습니다. 무슬림 성경에서 무슬림을 자극하는 모든 단어는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단어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죄’라는 단어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더러움, 수치’라는 단어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나는 이 세미나를 방해하러 참석했다”

이런 방법 뒤에 숨어 있는 문제를 잘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면서, 왜 이런 세미나가 중요한지를 생각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는 작년에 나이제리아에서 아주 고무적인 경험을 했다. 우리는 며칠 간 상황화 방법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다. 거의 끝날 즈음에 그곳 나이제리아 선교연합회의 중진이 이런 발언을 했다. “친구들이여, 나는 이 세미나 소식을 듣고는 즉각 등록 신청을 했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요, 세미나를 방해하러 왔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단체는 바로 여러분이 금지하는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의를 듣고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더욱 더 내 방법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하여 주님은 내 눈을 여시고, 이제 나는 전도하는 중에 주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코란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슬림에게 다가갈 때 코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