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팎의 이슬람화 전략의 실체를 객관화하고, 국내 이슬람권 이주자를 더욱 열매 맺는 섬김으로 잘 섬기고자 열린 BTM(Back To Muslim) 2010 서울 포럼이 지난 2월 18일(목)과 19일 강남YMCA 다애교회(담임 이순근)에서 있었다. 다음은 이 자리에서 정마태 선교사(한국인터서브)가 발표한 "영국 상황과 비교한 한국내 무슬림들을 향한 한국 복음 주의의 반응"(요약)으로써, 5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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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이러한 주제와 관련된 성경적 렌즈
 
필자는 B장에서 성경의 렌즈와 C장에서는 역사의 렌즈에 심각하게 관심을 집중할 것입니다. B장에서 성경의 렌즈는 왜 이런 종류의 리서치가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한국내의 이런 무슬림 상황과 같은 경우를 한국인들이 어떻게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 볼 것입니다. 이러한 두 렌즈, 즉,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D장에서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무슬림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살펴 볼 것입니다.

1. 이러한 연구가 왜 중요한 가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 (예)들
 
21 세기에는,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무슬림들과의 새로운 의미 있는 관계, 새로운 접근과, 새 길을 위하여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관계의 새로운 관점 (렌즈)에서 신구약 성경과 꾸란을 통하여 참신하고 적절한 해석을 개발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라고 들었으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구약을 올바르게 재해석해 드린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래의 성경적인 이유들이 이런 유의 리서치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적절하고 건설적인 방법들을 찾기 위하여, 무슬림들과 이슬람에 대한 현재의 두려움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하여, 예레미야 23:16-32에 나타난 것처럼, 무슬림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그들 자신의 생강으로 해석한 것들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 한 것인지를 살펴 보기 위하여, 무슬림들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갖기 전에,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그들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 하고 있는지 살펴 보기 위하여, 무슬림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무슬림들과 이슬람에 대하여, 잘못된 증거를 피하면서,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무슬림들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개방되고 건설적인 의논을 하기 위하여,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무슬림들과 이슬람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성경적인 예들을 아래와 같이 제시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당시 자신 주위의 종교들에 대하여 잘 알았습니다.

-모세 이집트 궁전에서, 40년을 보냈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면서, 언어들과, 문화들과 전통들과 이집트의 정치에 대하여, 당대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내에서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출 1-4장)

-바울의 예 : 그는 당대에,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 세 언어를 알고, 텐트 만드는 기술과 함께, 로마시민권을 가진 유태인이었습니다. (행 18:1-3, 22:25-28) 그는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 5 - 6)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인의 조상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모든 유대인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였습니다. (행 22: 3)

-예수의 모델: 누가 복음 2: 46-47에 나타난 예수는 12살 나이였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공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나타난 사실 입니다.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잘못된 증거로 무슬림들에게 어떤 행동이나, 반응을 하기 전에, 예수께서 보여 주신 이러한 종류의 리서치와 반응은 정말 중요합니다. 즉, 선생들중에 앉으시고,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며, 예수 당시의 이슈들과 신학 사상들에 대하여 이해하시며, 적절히 답변을 하신 일들은 우리가 정말 본받아야 예들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이 리서치를 하는 종국적인 주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궁극적으로는 성경적인 태도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알리는 일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 대해 가졌던 열정을 가지고 (롬 9: 1-3, 10: 1-4), 한국 복음주의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무슬림과 같이 엠마오 (Emmaus)의 길을 걸어 가야 합니다. (눅 24:13-49)

2. 영국과 한국내에 있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관계에 관한 상황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 (예)들.

무슬림 이웃들에 대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본성의 반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여러 명령을 순종하는 중에 그들의 이웃에 대한 관계와 관련하여 ‘너희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이해할 때,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그들에게 하셨는지를 알면 우리 모두는 놀라게 됩니다. 단순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보다 ‘너희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성경에 더 많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 명령은 두 근본에서 나옵니다. 첫번째 근원은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신다’ (신명기 10:18) 는 하나님의 바로 그 본성에서 흘러 나오며, 두 번째 근원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전에 애굽땅에서 나그네 되었고, 여호와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신’ (신 10:19-22)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수 무슬림들 속에서의 소수 기독인들의 그들에 대한 바른 자세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 이삭,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주변의 대다수 종교 인들에게 대했던 반응처럼, 유일신을 섬기는 소수인들로서 이스라엘의 믿음이 있는 백성들이 대다수 종교 인들 속에 살면서 이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 훌륭한 예들이 또 있습니다. 즉, 이집트의 요셉, 페르시아에 있었던 에스더, (베냐민 자손인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에스더 2:5, 15), 바벨론 제국의 다니엘등은 그들 주변의 대다수 종교 백성들이 사는 이방 문화와 사회정치적 환경가운데서 경건한 사람들로서 올바른 태도를 보여 주었던 신실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소수의 무슬림들에 대한 다수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자세

반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인 영국이나 한국에서 유일신을 섬기는 소수인 무슬림들이 어떻게 느끼고 사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대다수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세 신을 섬기는 다신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경건한 고넬료가 드렸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바 되었습니다. (행 10: 1 - 4) 그리고 그와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치’와 ‘땅’에 대한 성경적 관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에서 ‘권력'과 그들의 영토에서 ‘땅’ 그리고 그들의 ‘종교’에 대하여 고군분투했습니다. 결국, 뼈아프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간섭들을 통해 그들이 많이 배웠고(이러한 것들-권력, 땅, 종교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들) 드디어,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영역에서 교회와 정부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정부의 역할과 형태를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할 때, 4세기의 콘스탄틴 대제의 정부 형태를 생각하는지? 존 칼빈 선생의 신정정치 형태를 생각하는지? 오늘날 21세기의 복수주의 사회, 민주주의 사화에서의 정부형태를 생각하는지를 잘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잘 이해함도 이런 것을 고려할 때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 개념도 올바르게 이해해야 올바른 무슬림 접근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정화 작업과 심판

바벨론 군대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가 되도록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 하신 것을 한국 복음주의자들은 어떻게 이해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들을 섬기므로 인해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여러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될 것을 분명히 예언했지만, 그들은 이런 예언들을 결코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현실을 한국 교회에 대한 경고 사인으로서,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면, 한국내 무슬림의 존재를, 교회 성장과 부흥에 대해 교만한 자세를 갖고, 세속화되고, 물량화되는 한국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정화 과정의 일부로 볼 수는 없겠습니까?
 
다중 타문화 도전들

어떻게 한국 복음주의 주의자들은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이방 여인을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타문화 이슈들이 산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났습니다.

즉, 남성-여성 문제, 다른 종교 문제, 대낮에 이방 여인을 만나는 문제, 대낮에 이방 여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에 있어서 예수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서 오해 받을 위험의 문제, 예수께서 그 여인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 방법 (요한 복음 4:1-42)등에 대한 여러 다중 문화의 도전을 예수께서는 통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슬림을 도울 때, 위에서 본 것과 같은 다중 타문화 장애들이 있습니다.
 
공동체 (Community)를 기초한 관계

루디아와 로마 간수와 그들의 가족들은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과 같이 (사도 행전 16: 15, 34), 무슬림들도 그들이 (종교 문화적으로) 움마 (Umma-Community) 공동체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 올 때, 공동체로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이들과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한국인들이 무슬림들과 매일 관계를 맺을 때에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후, 새로이 믿게 된 몇 사람들이 직면하는 박해와 큰 어려움을 받을 때, 시도행전에 나타난 비슷한 간증처럼,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그 공동체에 남아 있도록 어떻게 도와서, 그들이 이런 도전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한국 복음주의자들의 다른 역할들 (바울 또는 바나바)

한국과 문화적으로 비슷한 배경을 가진 무슬림 배경에서 새로이 믿게 된 무슬림들을 위하여, 매우 겸손한 방식으로 한국성도들이 의미 있는 바나바가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무슬림들이 미래의 바울이 되도록. (계속)

정마태 선교사 (한국인터서브 대표)
http://www.inters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