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이하 한복협)는 8일(금) 오전 화평교회(담임 김병훈)에서 "새해의 소망과 기도"라는 주제로 2010년 1월 한복협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다음은 주제발표를 전한 허문영 박사(한복협 남북협력위원장, 평화한국 상임대표)의 "민족을 새롭게! 교회를 새롭게!" 발표 전문.

h.jpg1.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 국권상실과 민족분단의 100년에서
                                 
가. 2010년의 의미 : 역사전환의 해

2010년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해다.
 
민족적 차원에서는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일본제국주의는 19세기말부터 ‘정한론'을 시작으로 한반도 침략을 치밀하게 준비·실행해서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했다.
 
남북관계에서는 우리민족의 3중적 분단고착화를 초래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자,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을 최초로 통일원칙으로 제시한 평화통일선언 40주년이고, 남·북한의 최고책임자가 최초로 만나 화해·협력에 합의한 6·15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50주년이자, 산업화 40주년이라 할 수 있다. 4.19혁명 50주년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고, 새마을운동 4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독일통일 20주년이 된다.
 
정리해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발전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우리 선조들의 희생적 헌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19세기 과제였던 ‘근대민족국가 건설(modern nation-state building)’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채, 국권상실 100년과 동족상잔 60년이 다 되도록 그리고 제2차대전 주범국 독일통일 20년이 되도록 적대적 대결의 남북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통렬히 반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 세계 패권 흐름 : 아시아 시대의 부상과 한민족의 기회

‘지는 서방, 뜨는 동방, 21세기 부의 이동, 돈은 아시아로 통한다.’ 신년 일간지의 머리기사다. 아시아세기(Asian Century)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오히려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핵심국가들의 급속한 고령화와 정치·군사적 갈등요인이 아킬레스 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은 세계 패권의 변화과정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492년 지리상의 발견이후, 안정적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주도하는 국가들이 나타났다. 이 국가들을 그 지배적 영향력을 전세계적으로 권위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패권국가로도 칭해진다. 그리고 대체로 100년 주기로 세계패권국가가 바뀌어 왔다. 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 시대, 17세기 네덜란드 시대, 18세기 영국 시대, 19세기 영국 시대, 20세기 미국과 소련 시대로 변해왔다. 그리고 21세기는 G-2시대, 미국과 중국의 시대로 예측되고 있다. 중국이 21세기에 들어와 연평균 10%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세계무역수출분야에서는 독일을 제치고 제1위, 국내총생산(GDP)부문에서는 일본을 누르고 2위 자리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21세기를 중국의 시대 (Pax Sinica)로도 주장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통일한국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단지 우리민족의 번영된 미래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주변 열강인 해양 및 대륙 국가들과 더불어 평화를 이루며 상생·번영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다. 이제 21세기에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동아시아에서 해양국가인 미국·일본과 대륙국가인 중국·러시아의 대결과 갈등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류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가난과 압박 가운데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나라는 바로 식민지경험과 전쟁경험과 절대빈곤을 모두 체험했고, 이를 당당하게 극복한 통일한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모두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변화된 남과 북의 통일나라가 평화한국(Shalom Corea)이 될 것이다. 통일한국(Unified Korea)은 세계를 힘에 의한 평화(Pax)로 이끌었던 이전의 강대국들과 달리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와 평화로 섬기는 평화한국 Shalom Corea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과 더불어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사19:24~25)

2. 무엇을 소망할 것인가? :  통일회복과 세계섬김의 100년으로 도약

가. 민족을 새롭게 : 복음적 평화통일 추진

우리민족의 분단이 3중적(1945년 국토분단, 1948년 체제분단, 1953년 심정분단)으로 이뤄진 것임을 다시 한 번 반성하고, 3중적 차원에서 통일을 이뤄나가도록 통일 대전략을 수립·실천해보자. 분단 70년을 넘기지 않도록 목표를 갖고 노력해보자. 왜 70년을 넘기지 말도록 노력해보자는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신앙적 이유로서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해방’의 상징성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 이유로서 21세기 동아시아 질서 재편과정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 우리민족의 분단과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가운데 민족의 분단이 우리 기독인의 우상숭배와 연계되어 있다는 신앙적 확신이 들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 행위와 이스라엘의 분열, 북 이스라엘 및 남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생활, 그리고 포로생활 70년 뒤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예언한 예레미야와 이를 성경연구를 통해 깨달은 다니엘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의 우상숭배행위와 민족 분단 및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의 황폐화를 영적 포로생활 70년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3중적으로 이뤄졌던 우리민족의 분단 역사가 치유되고, 각각 70년이 되는 해에는 복음 안에서 해방 역사로 전환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고 노력해보자. 국토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는 국토장벽을 넘어 남북한 국민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정도의 통일을 그리고 남북한 교회(종교)교류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적어도 도 인민위원회 소재지에는 교회가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체제분단 70년이 되는 2018년까지는 남북연합을 이뤄 광의의 체제 통일(복합국가 건설)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래서 북한에서도 지하 기독인들이 지상으로 나와서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통일을 이뤄보자. 적어도 시·군 단위에는 교회가 1개 이상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마지막으로 심정분단 70년이 되는 2023년에는 우리민족의 오랜 숙원인 ‘통일되고 독립된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하나님 말씀위에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자.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질서와 제도가 세워지는 복음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하자. 이를 위해 목표의식을 갖고 통일대전략을 세워보고, 기도하고, 노력해보자.

한편 2025년에 중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과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통일대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안이다. 영국의 Independent지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2008.8)하였다. 미국 군사정보국 또한 중국이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북아에서의 패권 확보는 물론 이 지역을 장악해 온 미국의 군사적 대체세력으로 도전장을 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이 미국에게 경제·군사적으로 도전하기 전에,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양대 초강국의 대결구도 속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나. 교회를 새롭게 : 초월적 복음의 평화일꾼(Shalom Corps) 양성

1884년 한국기독교는 전래된 이래 우리민족의 영욕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기 개신교는 약자들에게 일종의 개벽사상이 되었다. 약자를 돌보며,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롭고 평등을 지향하는 종교로서 민족변혁의 기제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후 구한말과 일제초기 선각자들은 민족의 살길을 기독교를 통한 애국계몽운동과 교육운동에서 찾았다. 이후 개신교는 3·1운동을 주도했고,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통해 신앙적 절개와 민족독립정신을 이어갔다. 해방이후에는 건국과 산업화 및 민주화과정에 보수교회와 진보교회가 각각 기여함으로써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등, 민족발전에 대한 공헌을 이어갔다.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새 역사 주체세력으로 평화세대(Shalom Corps)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과 같은 영적, 사회적 지도자들이 일어나야 하겠고, 이 같은 인물들을 한국교회가 키워내는데 주력해야 할 때이다. 분단시대를 살지만 분단의식에 매이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나라 일꾼으로 그 은총을 선취하여, 민족의 복음적 평화통일을 끝내 이뤄내는 바로 그 인물들을 말이다. 21세기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복음통일을 이뤄 세계를 섬기는 민족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안보, 그리고 기도 등 모든 영역에서 헌신한 선배 일꾼들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새로운 나라와 민족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번영도 이뤄갈 수 있는 평화와 더불어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전파해 나가야 한다.
 
그 방법은 인간중심적인 정복과 패권의 십자군 정신이 아니라, 예수중심적인 사랑과 섬김의 십자가 정신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고난 뒤의 영광, 십자가 뒤의 면류관, 사망 뒤의 부활을 신뢰하는 초월적 평화일꾼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새 패러다임으로 성경적 무지개 정신을 발양하면 좋겠다. 무지개 정신이란 7가지 색깔들이 하나의 틀 속에서 제각기 빛을 발하듯이 다양성속에 통일성을 지향하는 관용과 공존의 철학에 기초하는 것이다.

다. 자신을 새롭게 : 성결·경건·정직·화평의 인물로

새해에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에 좀 더 집중하자. 성결·경건·정직한 삶을 살도록 더욱 노력하자.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할 수밖에 없는 죄 3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음란(렘5:7-9),부정부패(렘5:26-29),거짓말(렘9:7-9)이 그것이다. 과연 우리사회는 1997년 11월 IMF 위기관리체제가 도래하였을 당시 보다 나아졌는가? 24조원(2005년 국내총생산 4.1%, 국가예산 10%)을 넘어서는 매매춘 비용, 다소 나아졌으나 여전히 세계 40위에 맴돌고 있는 부패지수, 국제과학계 마저 속인 세계적 학자인 황모 교수의 줄기세포 거짓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면 과연 우리 기독인들은 일반인보다 더 순결하고, 정의롭고, 정직하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또한 평화를 이뤄가며 살자. 국민의견의 다양화를 존중하고, 소통의 사회를 만들어 가자. 국민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획일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우리는 ‘우경 획일화’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오늘 민주정권하에서 극단적인 ‘좌우 양극화’현상 속에 남남갈등을 겪고 있다. 이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또는 관용과 공존, 상생의 사회로 발전하는 길일 것이다. ‘다름’(different)을 ‘틀림’(wrong)으로 오해하지 않는 관용과 공존의 통합적 발상에 기초해서 ‘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이뤄가야 한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지금 우리사회를 피폐화시키고 있는 양극화를 극복하고, 소통의 문화를 창출해서 세계를 섬길 수 있는 통일한국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무지개 다원화’의 균형 사회로 발전해서, 단순히 북녘동포만 포용하는 사회가 아니라 제3세계를 비롯한 고통당하는 민족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좌우 극단주의들인 급진주의와 극우주의의 양분법적 태도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입체·초월적 관점을 확립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노력하자. 입체적 관점이란 좌우 대립의 1차원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후(과거·미래의 시간적 맥락), 상하(천·지·인의 관계적 맥락)도 함께 살펴보자는 얘기다. 오늘의 문제들을 과거 우리 민족의 쓰라린 역사와 연계해서 심층적으로 반성하되, 미래 우리 민족의 발전방향과도 연결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태도이다. 나아가 우리 선조들이 갖고 있던 하늘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태도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시 살려서 분쟁의 국제사회와 악화되어가는 자연환경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는 노력도 병행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초월적 관점은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의미한다. 사망과 부활이, 고난과 영광이, 십자가와 면류관이 연결되어 있음을 뜻하며, 전자 없는 후자는 가짜임을 인식하는 삶의 자세이다.

3.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

가.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지향하자 (마 22:37~40)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Full Gospel + Social Gospel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을 물질적 번영과 동일시하는 물질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정의와 공평과 인애가 넘치는 샬롬적 평화를 전심으로 지향하기를 기도한다. 물론 성경에는 구원과정에서 물질적 번영이 병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많이 있다. 반대로 구원이 물질적 번영과 상관없음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에 구원을 물질적 욕구충족과 연계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후 절대빈곤 극복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믿음’과 ‘번영욕구’가 결합되면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물질적 번영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성경은 얘기하고 있다. 물질적 복 그자체가 하나님의 복은 아닌 것이다. 잘못된 신앙생활을 해도 물질적 번영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종말은 비참하겠지만.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욥 21:7~13)

또한 한국교회가 협소한 복음관을 탈피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속한 교회에 십일조와 찬양대, 교사와 각종 부서활동을 통해 온갖 정성과 열심을 다해 섬기는 성도들이 새해에는 믿지 않는 이웃과 가난한자·약한자·소외된자·병든자·노숙자·탈북자·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사랑 실천으로까지 나아가는 온전한 복음관을 회복하고 실천하기를 소원한다. 물론 일부 교회와 성도들은 잘하고 있지만,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는 복음의 온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나. 온전한 선교(Whole Mission)를 실천하자 (마 20:18~20/ 창 1:28)

선교(Mission) = 복음전도(Evangelism) + 사회봉사(Social Service)
                         지상명령                     + 문화명령

선교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한국교회에 자리 잡기를 기도한다. 지난 20세기 한국기독교계를 비롯하여 세계기독교계에는 선교개념에 대해 대립적인 이해를 왕왕 보여주었다. 선교를 복음전도에 국한시키는 근본주의적 이해, 선교를 사회참여라는 보는 극단주의적 자유주의적 견해, 그리고 선교를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복음주의적 입장이 그것이다. 특히 보수기독교계의 경우, 선교를 복음전도에 국한시켜 매우 협소하게 이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강조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를 유포하는 데 대한 과민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에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구조와 방향을 혼동한 성·속 분리의 이원론(Dualism)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교회 안에서의 신앙적 삶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교회 밖의 일상생활 가운데 신앙적 삶을 사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교회안의 예배·교제·전도·봉사만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의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증거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도 그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존 스토트(John Stott)와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을 비롯한 복음주의자들은 ‘로잔언약’(1974)과 ‘마닐라선언’(1989)을 통해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선교는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복음전도의 반대말은 사회참여가 아니라 복음전도를 하지 않는 것이고, 사회참여도 반대말이 복음전도가 아니라 사회참여 하지 않는 것이 된다. 물론 필자는 우선순위에 있어 복음전도가 사회참여보다 우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선교 (Local Mission) + 영역선교 (Realm Mission)

지역선교도 더욱 열심을 내되, 영역선교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해가되기를 기도한다.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선교를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국한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선교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내에서도 선교를 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삶의 현장 또한 중요한 선교지가 되는 것이다. 복음이 전해지고, 사회적 봉사가 이뤄지는 그곳이 바로 선교지이다. 따라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가정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야 한다.
 
다. 온전한 힘(Whole Power)을 키우자 (슥 4:6)

Smart Power (Hard Power + Soft Power) + Spirit Power

미국 외교전문지 Foreign Policy(’09.12.30)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21세기 최악의 패배자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재정흑자와 밝은 미래를 물려받고도 9·11 테러이후 재앙과 같은 선택만 했다’며 ‘10년간 최악의 패자일 뿐만 아니라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만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평가를 미리 예측한 사람이 하버드대학교 케네디대학원장인 조셉 나이(Joseph S. Nye, Jr)라는 미국 전략가이다. 그는 부시 전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다른 나라와의 협조를 구하는데 소홀히 하면서 일방주의적으로 밀어붙이고, 너무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군사력·경제력과 같은 경성권력(Hard Power)와 더불어 가치관·문화·매력과 같은 연성권력(Soft power)를 적절히 병행하는 ‘똑똑한 힘(현명권력)’(Smart Power)을 구사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바마 정부가 ‘Smart Power'시대를 지향할 것임을 선언했고, 영국 경제전문지 Economist는 2010년에 가장 자주 쓰일 단어로 ’Smart'를 꼽았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Hard Power와 Soft Power를 증대시켜 Smart Power를 열심히 키워도 한정된 자원과 영토로 인해 주변 4대강대국의 국력을 넘어서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세계최대 인구대국이자 빠르면 2025년 늦어도 2050년에는 미국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 세계최대 영토대국이자 자원대국인 러시아, 세계경제대국 일본, 그리고 절대적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문화력을 갖고 있는 유일초강국 미국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Smart Power 개념으로는 우리가 세계를 섬기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 민족이 세계를 섬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의 국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다름 아닌 총체적 국력인 ‘온전한 힘’(Whole Power: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와 스피릿 파워)이다. 필자는 통일한국을 위한 국가전략으로서 '온전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강화에서 나오는 영적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이것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해치는 제로섬 게임적 힘이 아니라 함께 잘되는 포지티브 섬 게임적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점이 있다. 조지 W 부시 전대통령은 확고한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하여도 독선적일 경우에는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 힘(Spirit power)과 총체적 국력(Whloe Power)을 크게 키울지라도, 독선적인 나라가 되면 국제사회에 큰 화를 끼칠 수 있음은 늘 조심해야겠다. 그래서 군사력과 경제력의 패권과 정복의 힘에 의한 Pax Koreana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과 섬김의 힘에 의한 Shalom Coreana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4. 맺는 말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21세기는 문명사적 흐름으로나 세계 경제 중심의 변화구도 속에서 볼 때, 태평양시대라 할 수 있다. 이 태평양 시대가 해양세력 미, 일 대 대륙세력 중, 러 대립 구도 속에서 갈등과 전쟁으로 점철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민족의 분단이 지속될 경우, 태평양 시대의 핵심지역인 동아시아는 계속해서 냉전시대 유산인 이중 삼각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단순히 우리 민족의 미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태평양시대의 평화를 위해 모두 필요하다.

21세기에 통일한국이 피스메이커가 되어 패권과 정복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섬김의 ‘평화한국(Peace Coreana)'시대를 열어야 나갈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먼저 온전한 복음·온전한 선교· 온전한 힘을 기도하고 실천하는 한해와 10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매일 성결과 경건과 정직과 화평의 사람으로 새롭게 하실 것이고, 우리 교회를 통해 한 민족의 복음화와 희망으로 새롭게 사용하실 것이고, 우리 민족에게 평화통일을 주셔서 세계 평화와 세계 선교를 이뤄가는 귀한 사명을 감당케 하실 것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예레미야애가3:23~24)

허문영 박사 (한복협 남북협력위원장, 평화한국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