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he Union Seminary Magazine, Vol. XXII,(October-Noveember, 1910, No. 1. pp. 226-235)에 있는 자료로써, 1910년 6월 17일 Scotland의 Edinburgh에서 열린 세계 선교 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에서 S.A. Moffett박사가 "복음화 사역에서 현지 교회가 차지하는 위치"(The Place of the Native Church in the work of Evangelization)란 주제로 발표한 발제문이다. 현재 에든버러 정신을 계승하고자 '2010 한국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선교단체와 신학자들이 협력해 만든 '한국연합선교회' 홈페이지(http://k-edinburgh100.org/)에 공개되어 있다.

나는 이런 주제를 한 선교사에게 맡겨 발제하게 할 때 요구되는 것은 그 주제를 추상적인 언어로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기초로 한 구체적인 실례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민족을 복음화시키려 할 때 현지 교회의 현재의 위치가 어떠한지 또는 그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할 것인지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 그 나라에서는 1,200만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그곳 교회가 결연히 일어선 나라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수십 만 명을 효과적으로 복음화시키는 놀랄만한 전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또 기기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성령을 부어주셔서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들 앞에서 주어진 주제를 가장 훌륭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바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교회는 복음화 사업을 펼쳐나갈 때 너무나 적극적이고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모트 박사(Dr. Mott)와 주의를 기울여 그곳 상황을 살펴본 관찰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비기독교 국가들 가운데서 복음화되는 첫 국가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우리는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 등 이웃 나라들과 같이 군사 대국이나 통상 대국이 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나라가 하나의 기독교 국가, 하나의 영적 강대국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마도 중국과 일본, 심지어 러시아까지를 포함하는 열강 제국들에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치는 극동 지역의 영적 대국(a spiritual power)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들이었던 앗시리아, 바벨론과 로마에 복속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기까지 했던 작은 유대 나라를 들어 세계의 위대한 영적 대국으로 만드셨던 하나님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가장 큰 치욕을 당하고 있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 땅을 통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님을 보내셨던 것이다. 우리 주님은 거기에 그의 교회를 세우셨고, 거기서부터 유대 나라가 예속되어 왔었던 바로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것들을 실패로 끝나게 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보시라. 보잘 것 없고 멸시를 당하며 다 나라에 예속되어 부끄러움을 당하는 한국을 통해 모든 극동 지역에 풍성한 영적 축복을 가져다주고, 한국을 열국 가운데 하나의 정치적 강대국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강대국으로 삼으심으로써 그의 권능을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대회가 열린 처음 이틀 동안에는 다른 모든 사실들 보다 우선적으로 이 한 가지 사실이 강조되었다. 즉 어느 지역을 완전히 복음화 시키는 일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현지인 목사들과 복음 전도자들, 기독교 사역자들과 교사들이 있는 현지인들의 교회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달성되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다른 어떤 선교 현장에서보다도 우간다(Uganda)가 아닌 한국에서 아마 여러분은 그런 교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회는 현지인 일군들을 통해서 그리고 한국 교회와 자원해서 나선 현지 사역자들의 지원을 받는 현지인 목사들과 복음 전도자들에 의해 전국 복음화를 향해 신속히 진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땅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서 주재한 것은 25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the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를 대표하는 스코틀랜드 사람 하나가 처음으로 한문으로 된 성경 말씀들을 한국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일은 1865년과 66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1866년에 그는 잡혀서 토막 살해되었고 평양 인근의 대동강 둑에서 불태워졌다. 그 후 계속해서 만주에 들어와 있던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이 만주와 압록 강변을 따라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많은 회심자를 얻어 세례를 베푸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25년 전까지 한국에는 선교부가 세워지지 않았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미국 선교사들이 서울에 주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2년간의 사역이 끝났을 때 그곳 세례 교인은 9명이 되었고 10년간의 사역을 마쳤을 때 그 수는 400명이 조금 못 되었다. 그러나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그리고 그 때 그는 그의 섭리 하에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을 통해서 그 나라 전체를 흔들어 놓으셨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난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기서는 복음전도 운동이 꾸준히 활발하게 계속되어 왔다. 그래서 지난 15년 동안에 그 교회는 6만 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4만 명의 초신자(원입교인)가 있을 만큼 엄청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서 약 2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대열에 서려고 너무 너무 크게 무리지어 모여들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회심자들(converts)을 양육시키고 훈련시켜 달라고 선교사들에게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죄를 의식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요, 그분을 기꺼이 영접하고 그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대로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20년 전 내가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 도시나 그 지방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9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도시에서 15마일 반경 안에 50개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평안도 지역 전체에는 300개의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그 지방에서는 이제 전체 인구의 4/5가 어느 교회에서 3마일 반경 안에 살고 있는 셈이 된다. 서울에는 이제 15개의 교회가 있고, 송도(개성)에는 4개의 교회가 있다.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한 도(道)에는 42개의  교회가 있는 셈이고 남쪽에 있는 한 도에는 24개의 교회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땅 전체에는 2500개 이상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고 수백 개의 마을들의 주민이 주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민의 1/5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평양과 같은 그런 도시에서의 생활은 기독교가 그 최대의 변수로 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선천은 주민의 1/3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기간에 일어난 이 놀라운 변화를 증언해왔을 뿐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한국교회의 특징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을 언급하고, 나아가서 이 교회가 그 나라의 복음화를 위해서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를 보여주려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 교회는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요 성경말씀을 배우는(studying) 교회이다. 그 교회는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구원해주신다는 그의 약속을 믿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영적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인자와 한국교회를 복음화 사역을 하기에 적절한 위치에로 올려놓은 것은 바로 훌륭한 성경 사경반(査經班: Bible Training Classes) 제도였다는 나의 확신을 피력할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나 성서는 복음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사역에서 그것은 확실히 좀 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왔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그것이 가진 능력과 영성, 기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 그리고 말하자면 전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 몰두해왔다는 사실로부터 얻은 열린 마음 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성경 사경반과 양육반들은 교육과 양육, 그리고 그 교회 전체를 하나의 전도하는 공동체로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사경반들을 통해서 전체 교회 곧 노소와 유 무식을 불문하고 모든 교인들이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사경반들 가운데 일부는 선교 본부에서 주관하는 사경회(査經會)들이다. 그런 모임은 선교 본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체 지역을 위해 기획되는 것으로 대부분 선교사들이 직접 가르친다. 일부 사경회 모임은 좀 더 좁은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서나 어느 한 교회의 교인들을 위해서 열리기도 한다. 그런 경우 일부 선교사들이 가르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거의 한국인들이 그 집회를 맡게 된다. 일부는 남자들만을 위해서 열리고 또 어떤 일부는 여성만을 위해 열리기도 한다. 중앙에서 주관한 사경회는 처음에 단지 일곱 명의 남자들로 시작했는데 점점 더 커져서 서울에서는 500명이 모여 공부하게 되었고 대구에서는 800명이 재령과 평양에서는 각기 1,000명이 모여 배우게 되었으며, 선천에서는 심지어 1,300명이나 모이기까지 했다. 다른 한 편 여성들을 위한 사경반들은 송도(개성), 부산, 대구, 공주, 평양, 선천 등지에서 열렸는데 150명으로부터 700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어떤 여인들은 거기에 출석하기 위해서 심지어 200마일의 길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이런 사경반은 전국에 걸쳐 2,500 개 이상의 교회나 집단들 하나하나에 가능한 한 남자반과 여자반을 열도록 배려되고 있다. 이런 지방의 사경반에 참석하는 인원은 5명에서 500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일을 위해서 좀 더 나은 교육을 받은 남녀 인물들의 큰 능력이 그들이 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준다. 물론 성경이 그 주 교재가 된다. 그런 공부반들은 전체 교회에 널리 공급되는 영적 전력(spiritual electricity)을 생산하는 상설 발전소들이 되는 셈이다. 어느 선교부의 보고에 따르면 그 선교부 산하에 그런 공부반이 262개 있고 거기에 13,967명이 등록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볼 때 그 수는 2,000개가 넘을 것이고 참석자는 100,000명 이상의 남녀가 거기에 참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선교부에서만 그 참석자가 70,000명이 넘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런 성경 사경반들의 영향력을 누가 바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한국교회는 위대한 영적 축복을 받았고 영적 진리를 깨달아 아는 능력도 얻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었고 또 물질적인 축복보다 훨씬 뛰어난 기독교의 영적 축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 성령의 위로, 부활과 영생의 소망 등의 기본적인 위대한 영적 진리들이 이 백성들을 사로잡아왔고 그들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소망이 충만하게 해주었으며 그것이 그들의 생활과 성품을 변화시켜왔다. 그리고 그 사경반들은 그들에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박해나 치욕, 물질적 손실 등이 어떤 것이든 감수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사경반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면 그들은 한 가지 메시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 메시지를 가지고 길거리에나 골짝 골짝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찾아들어가는 것이다.

복음 전도일  약정서(a subscription of the days of preaching)로 알려진  놀랄만한 형태의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발전시킨 것도 이런 사경반에서였다. 그 약정서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에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면서 복음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약정된 수의 날을 보내는 것이다. 그 운동은 두 곳의 지방 사경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 그것은 전국적으로 열 곳으로 퍼져나갔고, 지금은 문자 그대로 수십 만 일의 전도하는 날이 약정되고 있다. 약 5년 전에 그것이 처음 시작될 때에는 한 곳에서 35명의 사람들이 900일을 약정했고 다른 곳에서는 2,200일을 약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올해까지 계속 증가하여 그 보고서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한 교회는 840일을 약정했고, 공주에서는 150명이 6,428일을 약정했으며, 평양 중앙교회의 성도들은 22,150일을 약정했다. 그리고 1월 1일부터 4월 1일까지 올해 들어와서 꼭 3개월 만에 이미 복음전도 사역에 78,066일의 온전한 날을 드리기로 약정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보고서는 실제로 행해지는 것의 절반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지역들에서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나 마을들에 복음을 전하는데 교회들이 공동으로 협력 사역을 펼치기 위해서 겨울에 약 15일 씩을 따로 제쳐두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한 순회 전도 여행에서는 45명의 사람들이 10일 동안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에 가서 전도 활동을 함으로써 이전에는 전혀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지역에서 일단의 새 신자들 모임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런 운동과 더불어 선교사들도 간절한 복음 전도의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순회 전도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또 그리스도인들 안에 그런 정신을 고취시키려고 애써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는 하더라도 그런 엄청난 규모의 전도 운동과 한국에서의 엄청난 영혼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로는 성령의 역사하심 아래에서 일한 한국 교회에 돌려야 마땅하다.

선교회를 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온 것도 이런 사경회를 하는 중에서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제주도에 사는 10만 주민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와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50만의 한국인들, 그리고 만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들이 파송한 일군들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지금 평양에 있는 연합 대학교(the Union College) 학생들은 칭따오에 있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일할 학생 자원자를 보낼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내가 처음 평양에 왔을 때 나를 돌로 쳤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처음 목사로 안수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은 그가 한국교회가 파송한 첫 선교사라는 것은 내게는 개인적인 기쁨이 아닐 수 없다.

1907년도에 일어났던 놀라운 부흥운동도 역시 이런 사경회 모임들을 통해서였다. 그 운동은 그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어왔다. 평양에서 있었던 도시 사경회와 관련해서는 지난 3년 동안 체계적인 축호전도가 이루어져왔으며, 교회들은 말씀을 갈망하는 청중들로 매일 밤 붐볐다. 매일 밤 믿기로 결신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5년에 1,000명 이상이 믿는 사람의 이름에 올랐으며, 한 주일에 247명의 원입 교인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908년에는 1,000명 이상의 회심자를 남기면서 같은 장면들이 반복되었다. 1907년에는 기도의 영이 선교사들에게 덮쳐왔고, 겨울 사경회 기간의 저녁 전도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때 성령께서 공적으로 임재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죄의 무서운 결과들을 깨달았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그들 대신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그의 사랑도 깨달았다. 그들은 몸부림치며 괴로워했고 그들 중의 일부는 거의 기절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한 용서를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 위안이 찾아왔다. 그 도시의 교회와 학교들, 그 다음에는 지방에서 모이던 예배 모임들, 방학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대학과 중고등 학생들, 이 모두가 이런 체험과정을 모두 겪었다. 그 다음에 성서학원들과 신학교에서,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른 선교부들로, 그리고 전국에 있는 교회를 통해 그 운동은 확산되어갔다. 사람들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며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또 그 운동은 수십 만의 불신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이 때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일에 대한 증언을 가지고 돌아갔던  고포드 씨(Mr. Goforth)를 통해 한국으로부터 만주와 중국 각지로 확산되기도 했다. 우리는 한 발 비켜서서 한국교회에 이런 큰 일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런 운동은 한국인 스스로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화 사업을 펼쳐나갈 때 그것을 맨 앞에 내세운다.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지난 겨울에도 서울의 한 교회는 643명의 새 신자를 얻었다고 보고했고, 평양의 한 교회는 700명의 새 이름이 교적부에 올랐다고 했으며, 그 도시는 한 달 안에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 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지로 이 모든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행한 개인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올해 이런 사경반들을 통해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 있는 모든 가정에 마가복음 한 권씩을 비치할 수 있도록 쪽 복음서 마가복음을 발행하려고 한다. 한 달 전 내가 한국을 떠날 때, 이미 70만권이 발행되어 팔려나갔다. 대구에 있는 한 반은 16,432권을 구입했고, 서울에 있는 한 교회는 단지 60명이 15,000권을 구입하여 보급하였다. 시골에서 사경반을 운영하는 한 선교사는 소가 끄는 수레에 가득 실린 복음서를 받고 놀랐다. 그의 아내가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그 사경반에서 단 몇 분 만에 26,427권이 예약 주문되었다는 것이다. 그 수는 그가 받은 복음서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다른 어떤 사경반은 26,000권을 구입했고 또 다른 사경반은 33,000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10권을 사고 어떤 사람은 100권, 또 어떤 사람은 심지어 1,000권을 구입하여 복음 전도의 날을 약정한 사람들이 그걸 들고 나가서 배포할 수 있게 했다. 참으로 한국에서는 올해 100만권의 마가복음서가 배포될 것이다. 나는 백만 명의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그 복음서의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현지인들의 교회가 자기 민족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 땅을 복음화시키기 위하여 그 교회가 차지해야할 자리이다.

둘째로 복음화 사업에서 한국교회가 차지할 위치는 그 교회가 하나의 자립하는 교회(a self-supporting church)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교회가 자립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지기까지는 어떤 교회도 그 민족의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립이 좀 더 빨리 좀 더 완전하게 이루어질수록 그 복음화 사업도 더 빨리 더 완전하게 이루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의 자립 교회로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자기들에게 지워지는 재정적 부담을 감당해내는 식으로 특이할 정도의 넓은 마음과 기독교적 확신과 성품이라는 장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회 건물과 초등학교의 건물들을 모두 자기네 힘으로 지었다. 한 선교부의 관할 하에 지어진 840개처의 교회 중에서 그 교회 건축을 위해서 해외기금을 받아서 건축한 교회는 20기처도 되지 않았다. 아주 대형 건물을 건립한 몇 개의 교회도 보조를 받았지만 그것도 건축비의 1/3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였다. 589개의 초등학교 건물은 실지로 모두가 한국인들 스스로의 모금으로 그 비용이 충당되었다. 어느 한 선교부에서 봉급을 받고 일하는 1,052명의 한국인 일군들 가운데 94%는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생활비가 지급되고 있다. 자립이라는 이런 정책을 확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런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버리고 싶은 유혹은 많았고 자주 찾아왔다. 그러나 그 정책이 가진 훌륭한 가치를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모두 더욱더 감사헤게 받아들여왔다. 이제 한국인들 자신들보다 더 그것을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그것이 개인의 성품과 교회의 장점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제주도와 시베리아에서 선교 사역을 펼쳐나갈 때 그 정책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성서 공회들은 이제 이런 자립이라는 정책이 그들의 사업에도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성경 말씀들과 전도용 소책자들도 그냥 주어버리지 않고 값을 받고 팔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올해 병원비로 지출된 것을 제외하고도 총액 131,000 달러를 각종 목적을 위해 연보했다. 사역의 이런 면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자기희생과 관대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한 권의 책을 모두 채울 것이다.

여성들은 그들의 결혼반지와 머리카락 자른 것, 그리고 그들의 장신구들을 가져다 바쳤고, 어떤 가정들에서는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려고 쌀을 내다 팔고 조를 사서 조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수백 가정이 십일조 헌금을 드렸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 소득의 1/3 씩이나 바치기도 했다.

그 능력이 닿는 데까지 그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이 복음화를 위한 현지 교회(the Native Church in Evangelization)의 자리이다.   

셋째로 교회 지도자로 선택을 받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는 대로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교회 정치의 책임도 져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과 전도사들로 세움을 입어 최전선에 세워져야 한다. 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순회 선교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냄으로써 그리고 사경회를 통한 수년간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교회의 사역자들로서의 봉사를 위한 자질을 갖추어 왔다. 실지로 모든 목사들과 전도사들은 먼저 지 교회에서 직분자들로 훈련을 받아왔고, 다음으로 조사(助事)로서의 시험 단계를 거친 다음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인도하고 사경반에서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교회를 통솔하고 기도회를 인도하며, 자발적으로 마을마다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개인적인 일을 하며, 교회 직분자들을 위한 제직 특별 수련회에 참석하여 교육을 받고 무거운 책임을 지는 등을 하면서 이런 복음 전도자들은 잘 양육되어 헌신적인, 유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믿을 만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사역의 짐을 맡겨도 되는 것이다. 이런 복음 전도자들에게 특별한 신학적 훈련을 받게 한 뒤에 우리는 25명에게 안수하여 사역 현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현재 다른 250명 이상의 학생이 두 개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 석진 목사와 김창식 목사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894년 그들은 실컷 두들겨 맞고 차꼬에 채워져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으면 처형해버린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그들은 굳세게 버티었고 결국 형장으로 끌려 나왔다. 마지막으로 하던 주장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목을 벤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순간 바로 처형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거기서 풀려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생을 주님께 드렸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교회를 세우는 데 쓰셨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한 목사는 열네 교회를 세우는 도구로 쓰였고, 그 중 한 교회는 성도가 400에 이르는데 그는 3년 전에 목사로 안수를 받고 그 곳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김 목사(감리교 목사로 한국 개신교에서 최초로 안수를 받은 목사: 역자)는 다른 분야에서 이와 비길만한 선한 일들을 해오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길선주 목사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는 한국교회 최고의 능변의 설교가이고 가장 큰 영적 능력을 받은 분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진리에 근거한 설교 원고를 들고 회중 앞에서 그 말씀을 전할 때 평양 중앙교회의 1500명 회중을 마음대로 휘어잡는다. 그는  대 부흥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을 듣기 전에 여러 해 동안 몇 달씩 산 속에 들어가서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 어느 해 그는 3개월을 깊은 골짜기에 혼자 들어가서 가능한 한 적게 먹고 거의 말은 하지 않으면서 성냥불로 다리를 지지거나 옷을 벗고 냉수를 끼얹거나 얼음으로 눈을 비비거나 하면서까지 맑은 정신으로 진리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는 복음 이야기를 듣고 그의 죄를 깨닫는 기도의 아픔을 통해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줄곧 영적 능력이 충만하게 지내오고 있다. 나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중의 하루는 1907년 10월에 있었다. 그 때 여러 해 동안 그래함 리 목사(Graham Lee; 李 吉成)와 나, 그리고 많은 목사님들의 조사(助事)로 일해오던  길 목사가 안수를 받고 중앙 교회의 목사로 취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그를 돕는 조사의 자리로  한발 물러섰다. 나는 사람들이 목사로서 안수받을 준비가 되는대로 바로 그들의 은사에 따라 그들의 민족을 복음화하기 위해 지도자로서 책임있는 자리에 앉혀져야 한다고 깊이 확신한다. 그런 자리에 앉을 만한 귀중한 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그들이 그런 자리에 앉기 위해 훈련을 빨리 받을 수 있으면 빨리 받을 수 있을수록 선교 사역의 성공 확률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간을 내 달라고 구두로 그리고 서면으로 요청을 하면서 주어진 주제는 한 마디로 “한국에서 복음전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한국 사람들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한 교회를 불러내어 큰 영적 능력과 복음전도를 향한 열정을 갖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보다 더 나은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의 은혜와 그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명백히 드러내시고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교회로부터 나온 그 메시지를 우리의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 즉 한 민족을 복음화시키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하나의 수단은 그 자신의 말씀이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내리신 복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역이 보여주는 하나의 아주 당당한 특징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주어진 그 자리, 그 최고의 자리, 아마 거의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자리였다.       

토의 - 다음은 한국의 선교사 Dr. S. A. Moffett 목사의 발제 후에 이어진 토론의 모두 발언이다.

마펫 목사(미국 장로교회가 파송한 한국 선교사): 나는 여기에서 인도의 복음화나 중국이나 만주의 복음화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외국 돈을 쏟아 부음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외국의 원조로 들어오는 돈을 공급해줌으로써 그 일이 좀 더 빨리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성취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수백 만 불씩이라도 쏟아 부어라.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는 우리는 확실하게 외국에서 들어오는 돈이 한국의 복음화를 성취하기 위해서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자국민 일군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마구 쏟아 부어져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자국민 전도자들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현지 교회가 깨닫고 그 일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미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1,200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이 일어나게 하고 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모든 마을에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문제가 한국교회 앞에 던져진다고 할 때 몇 년 전만 해도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는 더 많은 유급 전도자들에게 급료를 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확보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강력히 주장한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그 일을 지원하기 위한 짐은 첫 선교사에 의해 거기에 모이게 된 자기들의 어린 교회가 마땅히 져야한다고 하면서 우리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서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인 지도자들이다. 중요한 점은 모금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인 사람을 파악하는 문제요, 현지 교회에서 찾아낸 인물의 장점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마 한국 사람이 가진 장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람의 됨됨이를 바로 파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이 만족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확실히 보아왔다. 그리고 이제 한국인들 스스로 우리를 찾아와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에게 짐을 지운 일에 대해 감사한다. 그리고 초창기에 우리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가진 장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서 그곳 교회의 최초의 신자들에게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들을 거지 근성에 젖어있는 가난한 사람들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또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의 짐을 질 수 있는 한계점을 파악하고 그 선을 넘어서서 도움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선을 넘어서서도 사려분별이 분명한 현명한 도움은 분명히 베풀어져야 한다. 그러나 내가 믿는 바로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우리의 후원 이사회(Boards)들이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사역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돈을 쏟아 붓지는 않을 것이다.           

by Rev. Samuel A. Moffett. D. D. (번역 : 서울장신대학교 이용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