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다나 윈터(Ralph Dana Winter, 1924-2009·사진) 박사는 금세기 세계 선교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도자들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선교의 돌파가 이루어진 곳에서 사역을 집중하고 있는 세계 교회로 하여금 미접촉 족속들(unreached people groups)을 복음화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영향을 끼친 분이다.
미국 장로교회 파송 과테말라 주제 선교사로 봉직하면서 그는 신학연장교육(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TEE) 제도를 만들어 신학교육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윈터 박사는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선교역사 교수로 안정된 사역을 그만두고 미접촉 족속들을 위한 개척선교에 헌신하였다.
그는 선교의 펜타곤이라고 불리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미국 센터’(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설립하여 전략적으로 세계선교운동을 이끌었으며, 윌리엄 케리 국제대학교(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를 세워 지도자 개발에 힘을 기울였고, 출판사 ‘윌리엄 케리 도서관’(William Carey Library)을 세워 문서 선교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005년 타임즈 잡지(Time Magazine)는 랄프 윈터를 미국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다.
출생과 성장
윈터 박사는 1924년 12월 8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친 휴고 윈터(Hugo H. Winter)와 모친 하젤 패터슨(Hazel Patterson) 사이에 출생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부친 휴고(Hugo)는 탁월한 토목기사로 로스앤젤레스 시청 도시 설계과의 수장으로 근무하면서 1,200여 명의 토목기사들을 거느리고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체계를 발전시킨 분이다. 윈터의 어머니 하젤 여사 또한 엔지니어의 딸이었고, 대학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윈터의 아버지는 내성적이며, 조용했고, 어머니는 외향적이고 명랑한 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선교에 헌신된 분들이었고, 그들의 집을 개방하여 오늘날 OMF의 전신인 중국 내지선교회를 위한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가진 분들이다.
당시 네비게이토 선교회 본부는 윈터 박사의 집에서 1.6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윈터 박사는 네비게이토 창시자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에게서 개인적인 제자훈련을 받았다. 당시 해군들 중심의 사역을 하였던 네비게이토가 고등학생들을 위한 사역 ‘두나미스’(Dunammis) 사역도 병행하였는데 ‘두나미스’는 줄곧 랄프 윈터의 집에서 모였다. 윈터는 풀러신학교 설립자 찰스 풀러(Charles E. Fuller)의 아들 댄 풀러(Daniel Fuller)와 같이 그 모임에 참석하였고, 후에 도슨 트로트맨의 후계자가 된 론 쎄니(Lorne Sanny)가 그들을 지도하였다.
윈터는 네비게이토 훈련을 철저히 받아 말씀암송을 즐겨하였고, 수백 구절의 성구를 자유롭게 암송하였다. 랄프의 형 폴(Paul)도 랄프와 같이 칼텍(Cal Tech)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여 엔지니어가 되었고, 셋째인 데이빗(David)은 랄프 보다 6살 아래로 인류학을 전공하여 교수가 되었는데, 후에 웨스트몬트(Westmont) 대학의 총장으로 봉직하였다.
교육 배경
랄프는 칼텍에서 1학년 공부를 마칠 무렵 태평양 지역에서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해군에 지원하였으나 칼텍 공부를 마친 후에 전쟁터에 파견되면 더 좋을 것이란 판단 아래 학교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해군 파견학생으로 1년 반을 더 열심히 연구하여 대학을 2년 반 만에 졸업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자 해군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더 필요하게 되었고 그는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해군 조종사 훈련을 다 마치기 전에 전쟁이 끝나게 되어 곧바로 전역하게 되었다.
랄프 윈터의 칼텍에서의 공부는 귀한 학문적인 훈련이었다. 그는 웨스트몬트 대학에 진학하여 헬라어를 배우면서 귀납법적 성경연구를 하였고, 데니얼 풀러와 같이 프린스턴신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빌 브라이트(Bill Bright), 크리스티 윌슨(Christy Wilson) 등과 같이 공부하다가 중단하고, 1947년 풀러신학교가 개교되자 데니얼 풀러를 비롯한 친구들과 같이 패서디나로 돌아와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윈터는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칼텍과 같은 공과대학을 아프가니스탄에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그는 선교지에 영어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10여 명의 평신도들을 동원하여 영어교사로 선교지에 파송하기로 하였다. 자신이 콜롬비아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1951년 TESOL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랄프 윈터가 1951년 코넬대학교에서 언어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여름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간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로버타 햄(Roberta Helm)을 만나면서 그해 12월 그와 결혼한다.
선교지에서 사역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그는 다시 가족을 데리고 프린스턴신학교에 돌아가 신학사(Bachelor of Divinity) 학위를 마치게 되는데 네 딸을 낳아 가족이 여섯으로 늘었다.
그는 늘 도슨 트로트맨이 했던 질문을 자신에게 자주 했다. “나는 왜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하는 방식으로만 하고 있는가?” 다각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 훈련을 받은 윈터는 다양한 선교적 주제를 더 넓은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먼저 정확한 문제를 파악하고 짚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선교사로서의 삶
장로교 선교부(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가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선교사 부부를 찾고 있을 때 언어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목사 랄프 윈터와 간호사 자격을 가진 로버타가 적격이었다. 그들은 해외선교부에 지원하였고 선교사로 영입이 되어 6개월간 교단 선교훈련을 받고 그 후 코스타리카에 가서 1년 동아 스페인어를 배운 다음에 1957년 선교지 과테말라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과테말라의 산지부족인 맘(Mam)족들 가운데서 농사기술, 옷감 짜는 기술, 치과 기술, 의술, 경제, 사진 기술, 목제소 운영 기술, 인쇄소 운영, 그리고 교육사업도 병행하였다. 맘족 인디언 기독교인들 가운데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안수 받은 목사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동료 선교사 제임스 에머리(James Emery)와 함께 현지인 목회자 개발을 위한 방법을 도모하던 중 신학연장교육 방법을 개발하여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퍼져 나가게 했다.
신학연장교육(TEE) 아이디어의 배경에는 지역교회 지도자들이 신학교에 다니기 위하여 자신들과 가족들을 수년간 수도로 이사하지 않고도 쉽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로 안수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학생들은 그들의 읍내나 동네에 있는 분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들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쯤 수도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신학연장교육에 대한 생각은 운동을 일으켰으며, 곧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세계 각처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신학연장교육에 대한 그의 고안을 인정하지만, 윈터는 자기보다 앞서 과테말라에서 사역한 선교사 제임스 에머리가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 자기가 발전시켰다고 말한다.(계속) <출처 : 한국선교KMQ 2013년 여름호 46호>
박기호 교수는 총신대학교 기독교 철학과(B.A. Equiv.)와 신학대학원(M.Div. Equiv.), 아시아연합신학연구원(Th.M.),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M.A./Ph.D.)을 졸업하였다.
GMS 소속 필리핀 선교사(1981~1996)로 사역하였고,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아시아 선교학 교수 겸 한국학부 원장(1996~현재)으로 재직 중이다. 또한 동서선교연구개발원장(2004~현재), 아시아선교학회 설립회장/명예회장(2003~현재), 아시아선교협의회 수석회장(2010~현재), Asian Missions Advance 편집장(2011~현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