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복음의 사명을 우리도 이어 가겠다”

명성교회 베들레헴성전 1층 로비에 마련된 추모관.
▲명성교회 베들레헴성전 1층 로비에 마련된 추모관. ⓒ명성교회 온라인 추모관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은 그는 또 다른 영혼들에게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22년 전 척박한 파키스탄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10년 뒤 2009년 11월, 주일찬양예배 설교에서 그는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말했다고 한다. “선교는 사랑으로 시작되고, 사랑으로 행해야 열매가 있습니다.”

파키스탄 현장에 부름 받아, 주님의 사랑과 열정으로 현지인 영혼들에 복음의 씨앗을 부지런히 심던 고(故) 이준재 선교사가 지난 14일 코로나19로 다시 주님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떠났다. 향년 67세.

이 선교사는 파키스탄의 가난한 오지 마을 등에서 22년간 문맹 퇴치를 위해 미션스쿨 사역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이 선교사는 현지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의료장비가 부족해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급속히 상태가 악화됐다. 이에 파송교회인 명성교회의 노력으로 에어앰뷸런스를 타고 급히 귀국시켜 치료했으나 14일 소천했다.

이에 명성교회는 15일 오전 6시부터 17일 오전 10시까지 베들레헴성전 1층 로비에 추모관을 열어 성도들이 생전 그의 헌신적인 사역과 희생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했다. 또 온라인 추모관(바로가기)을 만들어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이준재 선교사를 추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준재 선교사의 생전 사역 모습.
▲이준재 선교사의 생전 사역 모습. ⓒ명성교회 온라인 추모관
명성교회는 온라인 추모관에 사도행전 20장 24절(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말씀을 소개하며 “고 이준재 선교사의 사랑으로 뿌린 씨앗이 하나님 나라에 귀한 열매로 맺혀질 것”이라며 “복음의 사명을 우리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추모예배는 18일 주일찬양예배에서 드린다. 유족은 사모 이미영 선교사와 2남이 있다.

한편, 미국에 거주하는 이 선교사의 어머니(95)와 누나 이영재 씨(68)는 코로나 시국에서 해외 입국자 2주 자가격리 조치 때문에 방한하지 못했다. 이 씨는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동생을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애타는 심정을 담은 애도의 글을 17일 본지에 보내왔다.

이영재 씨는 “이준재 선교사님은 3남 2녀의 장남이고 미국에 계신 어머니는 올해 95세다. 어머니는 ‘나는 이제 얼마 있다 천국에서 이 목사 만날 거다’ 하시면서 우셨다”며 “코로나로 인해 화장을 한다고 하니, 더 할 말을 못 하시고 같은 찍은 사진만 보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동생 이 선교사님은 주의 복음만 위하여 22년간 파키스탄 오지에서 사역하며 많은 고생을 했다”며 “이 선교사님의 섬김과 희생, 죽음을 통해 파키스탄 온 땅이 복음화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영재 씨가 보낸 애도의 글.

이준재 선교사의 생전 사역 모습.
▲이준재 선교사의 생전 사역 모습. ⓒ명성교회 온라인 추모관
사랑하는 이준재 선교사님에게 드리는 글.

파키스탄에서 사역하시던 이준재 선교사님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주님 곁으로 소천 하였습니다.

파키스탄 선교사로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세상의 부는 전혀 욕심 없었던 정말로 신실한 이준재 목사님. 그렇게 주의 복음만 위하여 22년의 파키스탄 오지에서의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이렇게 하늘나라에 간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인가요?

하나님! 어찌 그리 갑자기 주님 품으로 부르셨는지요?! 눈물로 하나님을 부르며, 이준재 선교사 이름을 불러보고, 불러봅니다.

이제 사모도 힘들고 여러모로 몸이 노후해서 후임자를 찾아서 인수하고, LA 와서 노모를 돌보며 선교를 홍보하며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준재 선교사님은 이 코로나 전염병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내가 이 목사라고 부르면, 선교사라고 부르라고 하며 선교 사명을 위해 살아온 이준재 선교사 님. 그 많은 공부를 한국에서 하고 ‘일반대학, 일반대학원, 장신대원, 미국에서 풀러신학에서 선교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 왜? 오지 선교사로 가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선교학은 학문으로 배웠으나, 선교는 현장 선교를 경험해야 한다’고 하면서 파키스탄으로 떠났습니다.

떠날 때 우리 식구들은 그렇게 22년을 파키스탄에서 사역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파키스탄 오지에서 물, 전기, 모든 생활수단이 불편한데 오직 주의 복음만 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사경을 헤맬 때 교회의 배려로 에어앰뷸런스(Air ambulance)로 한국에 왔으나, 산소호흡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파키스탄에서 산소 결핍으로 모든 장기가 손상되었기에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의식도 없기에 마지막에 식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코로나란 병명 때문에 무덤에 장사도 못 하고 화장을 해야 한다니 더 가슴이 아픕니다. 늘 전화로 기도해주던 이준재 선교사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맴돕니다.

연로하신 노모의 눈물은 부활의 생명을 믿기에 위로받습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평안의 안식의 삶을 사시겠죠.

허나, 계속되는 눈물에 하나님, 하나님! 꼭 그렇게 하여야만 하셨습니까?? 그렇게 많은 분 의 기도를 못 들으셨는지요…. 하나님을 원망도 해보나, 우리가 어찌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의 갈 길에 앞서시는 주님.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삼하 22:33)라는 이 말씀으로 위로받습니다. 이준재 선교사님의 순교하신 그 공로로 파키스탄 온 땅이 주의 복음화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준재 목사님, 아니 선교사님. 모든 근심 걱정 없는 천국에서 편하게 쉬세요. 우리가 언젠가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겠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의 품에 계신 모습을 그리며 선교 사역하시던 여러 장의 사진을 봅니다.

그동안 이준재 선교사님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감사드립니다.

동생 목사님을 사랑하는 부족한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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