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갈 무렵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뚜껑이 열려있는 맨홀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만약 제가 맨홀에 빠졌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텐데, 천만다행으로 쇄골 부위만 다쳤습니다. 결국 이전 직장을 정리하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3G테크놀러지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이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으니 다들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겠습니까. 저도 연이은 사고에 '하나님께서 정신 좀 차리라고 이곳에 보냈는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27세 때 입사하여 일한 지 올해로 26년째, 인생의 딱 절반을 보냈네요.
회사에 입사하고 매주 사내예배를 드리는데 내심 기뻤습니다. 믿음 생활을 다시 하고 싶었는데, 몇 년 방탕하게 살던 습관이 발목을 잡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늘 제 가슴 속에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데에는 저희 아버지의 역할도 컸습니다. 아버지는 믿음 생활을 하지 않으셨지만, 성경을 삼독하셨습니다. 우리 4남 2녀 형제들에게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독서를 꼭 해야 하는데, 성경은 꼭 읽어보아라. 성경에는 삶의 지혜가 많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큰 형님이 교회에 나가면 혼을 내시면서도, 막내인 제가 잠들기 전에는 꼭 안아주시면서 성경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삭, 야곱, 모세 이야기까지 저는 성경의 인물들인지도 모르고 아버지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전래동화라고 생각하며 잠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면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졸업 후 전투경찰로 입대를 앞두고는 "서울에 교회가 있으니 꼭 서울로 배치해달라"고 새벽에 기도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복무하게 됐을 때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당시 서울은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거친 시위가 잦아 모두가 기피하는 지역이었지만, 저는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교회에 들를 수 있을까 싶어 안도했습니다.
흔쾌히 허락은 받았지만, 막상 모임에 필요한 성경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 월급은 5천 원이었습니다. 세 명의 부대원이 월급을 모아 헌책방을 다니며 성경을 모았습니다. 성경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주시는 책방 주인분들도 계셨습니다. 우리는 20권의 성경과 찬송가를 사서 소대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출신 부대원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김신기 3G테크놀러지 생산부 부장(5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