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1.jpg지중해를 발칵 뒤집은 광풍이 276명을 태운 여객선을 덮쳤다. 유라굴로라는 태풍이다. 14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맥없이 표류하는 선객과 죄수들은 죽음의 공포로 오돌오돌 떨고 있을 뿐이다. 위험경고를 묵살한 채 큰소리치던 선장과 선주도 아예 속수무책이다. 오늘을 사는 인간 모두에게 돌풍은 사정 두지 않고 매몰차게 덤벼든다. 방향도 모르고 주소도 없는 망망한 바다 곳곳에서 마냥 마주쳐야만 한다. 겨우 올라갔다 싶으면 사다리를 걷어차는 몹쓸 인간들로 인해 가슴이 멍들고 시리도록 아프게 살아야 한다. 어둠은 물러설 줄 모르고 길을 감추고 있다. 모질게 습격하는 공격을 이기지 못해 작년 2014년에도 우리 백성들이 1만 3,836명이 자살을 택했다. 그것도 20, 30대가 급증 추세란다. 손잡아주는 그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 절박한 시점에, 절망쯤이야 두 발로 꾹 눌러 밟고 사는 한 사람이 선명한 기쁨으로 외친다.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젯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고 희소식을 전한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너와 함께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셨으니...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음식까지 권했다.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라는 소망을 심어주며 식탁을 차려 풍랑 중 잔치를 벌였다. 배는 비록 두 물이 합치는 곳에서 깨어졌으나 드디어 멜리데란 섬에 상륙하여 전원 구조를 받은 사도행전 27장의 장면이다.

바울 사도 역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풍파를 겪은 사람이다(고후 11장). 그것도 머리털 하나까지라도 상치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후의 일이다.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극복할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면서 신앙과 용기를 키워 가신다. 질그릇으로 살려면 800℃의 열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값진 도자기로 살려면 1,250℃를 견뎌야 한다. 뜨겁게 달굴수록 불순물은 빠져나간다. 바다를 가보지 않은 어부는 바다를 어거할 힘이 없다.

하나님은 말과 경주할 때를 대비하라신다.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요단강의 창일한 물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 12:5 표준) 90% 헌신한 100명보다는, 100% 헌신한 열 사람이 더 강한 힘을 가진다. 하늘나라에는 약골이 없다. 마귀를 능히 이길 장수를 만들어 내신다. 광풍의 몰매 맞아 가슴이 먹먹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보내시는 작전이시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사 46:3~4) 공포에 허우적거리며 신음하는 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급파하신다.

전쟁으로, 빈곤으로,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해 막막히 신음하는 자, 그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하나님의 아픔이요, 우리의 과제다. 이 진리를 일찍 깨달은 미국의 보스톤에 있는 공원거리교회(Park Street Church)는 교회재정의 70%를 선교와 구제로 쓴 교회가 되었다. 독립전쟁 전에 세운 250년이 훨씬 넘은 교회인데 대통령이 두 명이나 탄생된 교회다. 교회건물, 의자,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이고 걸을 때마다 마루가 비뚝거렸다. 런던의 악명 높은 깡패가 잡히는 날이다. 온 시민이 저주를 퍼붓는 가운데 끌려갔다. 이때 12살 되는 소녀가 다가와 깡패 손을 꼭 붙잡고 “아저씨! 제가 경찰서까지 함께 갈게요” 같이 걷는다. 그 순간 그는 마음이 녹아 내렸다. “너는 꼭 예수님 닮았구나.” 구세군 부쓰 대장 부인의 일화다.

하나님과 밀착된 바울, 그 한 사람을 통해 276명의 생명이 건짐 받은 것처럼, 파선 당해 표류하는 난민들의 절규를 들어라!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바울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