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절반은 자체 운영하는 일에 허덕이고 있고, 나머지 50%에서 30%는 안정권에 있지만 건축이니 증축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면서 재정이 어려워 허덕이고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20% 정도나 그 이하가 한국 교회의 선교를 주도하여 나가고 있다고 하면 가히 틀린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20%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첫째, 지나친 개교회주의다. 대형교회는 버스로 성도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교회의 성장과 편리를 도모하는 것이 이제 보편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 교회만 부흥하고 탁월한 성장을 이룬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내 교회, 우리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가? 이러한 의식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선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둘째, 교인이 조금만 늘어나면 교회를 증축 혹은 신축한다. 이러한 일은 인간의 기본 욕구일 것이지만, 큰 지도자라면 오히려 신실한 동역자들에게 살림을 내주어 함께 편만하게 세워져 가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한국의 몇몇 교회가 이러한 시도를 이미 행하지 않았는가? 좋은 본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한번 시도해 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의 크다고 하는 교회는 어딘지 모르게 비만증에 걸려 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화려하고 고급이다. 그들만의 교회, 더욱 많은 숫자를 채우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총력전을 벌인다. 복걸복인가? 이것은 성공주의를 내세운 세속정신은 아닌가?
넷째, 지나친 소유형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재산을 늘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교회가 크면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돈 관련 문제들이 끝없이 발생한다. 교회 재정을 운용하여 사업을 하는가 하면, 도에 지난 시설을 비롯하여 공동묘지까지 구입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아성을 쌓아간다. 돈이 있으니 어디에 쓸까 안달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 필요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교회가 그러한 일까지 해야 하는가? 본질을 상실하지 않았나?
한국교회를 위한 불편한 제안
요즘 한국의 많은 국민들이 역사 이래 없었던 살 빼기 열풍에 빠져 있다. 바보처럼 손을 흔들면서 아파트 주위나 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희한한 풍경이라’, 한국을 방문할 때면 매번 느끼는 생각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잘하는 일이다. 여기에 발 맞추어 교회도 더덕더덕 붙어있는 군살을 빼야 한다. 비곗덩어리를 제거하여야 건강한 교회가 된다. 그러한 방법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첫째, 성장하는 교회는 기본이 안정되면 그 이후는 증축이나 신축이 아니라 분리 개척하는 방법이다. 누가 그러한 일을 좋아하겠는가? 명예와 존경과 재정이 모이는 일을 버리고 공생의 길로 나가는 일은 모두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같은 성공 시대에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도 키우고 후배도 키우고 한국교회도 살리는 일석삼조가 아닌가? 신실한 부목회자에게 교회 중직들과 함께 교회를 떼내어 주어 한국의 미래를 개척하게 하는 것이다. 존재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이 한번 도전해 볼 문제이다. 당대만 바라보는 것은 비전의식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지역에 현지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에 몇 개씩 있다. 그들의 사역 현장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큰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수십 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자를 보내고, 물심양면 지원하며, 인적자원을 보내서 개척사역을 해나가는 것인데, 이런 방법으로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둘째, 모두가 함께하는 동반자의식을 가지고 공생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미자립교회는 농어촌 미자립교회와 도시 미자립교회가 있다. 농어촌은 도시교회의 후원이 없으면 목회자가 살 수 없는 곳이다.
도시 미자립교회는 개척으로 시작하여 많은 경우 친인척에 의지하며 어렵게 목회하고 있는 교회들인데,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여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목회자 한 가정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교회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목회자를 적극적으로 도와 영적 리더십을 공유하여 지도력의 성장을 도와 사역과 삶에 낙심치 않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많은 경험과 자원을 가진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미자립교회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필요를 채워야 한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든든히 서간다.
셋째, 소유의 목회가 아니라 존재의 목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깊이 고민해볼 말인 것이다. 교회를 개척해 주고 비디오로 설교를 듣도록 하는 것이나 재정 독립을 시키지 않는 일은 무슨 일인가? 지나친 소유 집착증에 빠진 병적인 지도자의 모습이다.
한국교회는 수십 개의 교회에 얼마씩 나누어 지원하는 일은 잘 하고 있다. 명분도 있고, 체면도 살리고,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시골 목회자들로 하여금 이곳저곳 손을 벌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돈 얼마씩 보내서 형식적으로 생색내는 일보다 실제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거대 기업들은 모두가 살 빼는 작업으로 조직을 분산시켜 전문화·분업화하면서 혁신을 이루어가고 있다. 교회는 왜 이렇게 못하는가? 성공주의에 종이 되어 움켜쥐려는 천박한 명예욕 때문인가? 이제는 서로가 함께 공생하여야 한다. 나누어야 한다. 대형은 한번 고장 나면 전체가 멈추어선다. 스피드 시대에 맞지 않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공생으로 열어나가야 한다.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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