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역사는 항상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외부의 핍박이 심한 것만큼 교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이단의 도전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단 세력은 초기 영지주의 모습으로도 나타났고, 율법주의자의 양상으로도 도전해 왔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적 지도력은 외부의 핍박에 대하여 의연히 대처하였고,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돌보았습니다. 또한 이단의 세력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도자들 간의 갈등과 교인들 간의 분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종종 환란과 고난의 시련을 사용하셨습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문제가 계속 일어나지만, 외부의 적대적 세력에 의해 혹독한 핍박과 시련이 다가오면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우선적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되고, 서로 간에 결속하며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이 되고, 과거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동방요배 강요와 국가신사에 참여케 한 것에 대한 교회지도자들의 철저한 회개와 근신 그리고 용서와 관용과 사랑은 간 곳이 없고, 서로 간에 변명과 비난과 그로 인한 분열과 갈등으로 한국교회는 온통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국내 전쟁사상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6. 25 전쟁을 겪게 하셨습니다. 5백만 명 이상의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당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요, 국제적 전쟁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흙더미, 가마니 위에 앉아서 밤을 지새우며 피난 간 대전에서, 부산에서 연합으로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과거의 죄상을 뼈를 깎듯이 회개하였으며, 서로 간에 사랑하지 못하고, 헐뜯고 연합하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부흥을 경험하였습니다. 영적 축복뿐 아니라 양적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교회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저는 23년 전에 미국의 한 가정집 차고를 개조한 허름한 창고에서 중국 대륙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일라라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화남신학교를 졸업하고, 상해에서 중국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1957년도에 중국공산당에 체포되어 27년간 수감 생활을 한 분입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의 주선으로 미국에 오게 된 분이었습니다. 일라 할머니는 공산화되기 이전의 중국교회가 얼마나 분열되고, 지도자들 간의 다툼이 심하였는지를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산화된 이후 그리고 문화혁명 기간 중에 계속되는 무시무시한 핍박은 중국교회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구하게 하였고, 철저한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여 큰 부흥을 경험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제 삼국의 모처에서 만난 북한지하교회의 지도자도 비슷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일성이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어서 북한에서 종교말살정책을 펼치며, 교회와 교인들을 혹독하게 핍박하는 데는 북한교인들을 회개케 하시며 영적으로 정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교인들은 이로 인해 우상숭배의 죄가 얼마나 무서우며, 교인들이 서로 간에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산 교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교회와 교인들이 왜 그렇게 무서운 시련과 고난을 겪는지 인간적으로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에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선하신 인도하심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김성태 교수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원장/ 한국오픈도어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