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안식
한국인이 바쁘고 일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선두를 달린다. 한국의 아빠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하루 고작 3분으로 OECD 평균 47분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한국인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9명은 평소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행복도는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지금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70년 대비 100배나 많아졌지만 행복수준은 밑바닥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주말입니다”라는 환호성이 나오는 영어 단어가 TGIF(Thank God, It's Friday)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금요일 이후 주말은 출근길의 교통 전쟁, 끝없이 밀려오는 일거리, 스트레스 등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는 고마운 시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주말에 잠시 쉬고 난 후 힘을 보충하면 월요일이 TGIM((Thank God, It's Monday)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월요병이라고 할 만큼 일주일 중 가장 힘든 날이다.
우리는 일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고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휴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진정한 휴식과 쉼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기독경영원리 중 하나인 ‘안식’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안식은 히브리 원어로 ‘메누하(menuba)’이다. 메누하는 충만한 휴식, 몸과 마음이 평안을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메누하에는 노동과 수고를 그만두는 것 이상인 ‘완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가 가장 평화스럽고 평온한 상태를 상상할 때 떠올리는 시편23편의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도다’에서 쉴만한 물가가 메누하(the waters of menuba)이다.
기독경영 원리로서 안식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정서적, 육체적 쉼과 평안을 누리는 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안식의 원리는 ‘영혼의 풍요’, ‘그침과 쉼’, ‘관계의 누림’이라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영혼의 풍요
‘영혼의 풍요(Fullness of Soul)’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것,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영적 평안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 58장 11절의 말씀인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을 생각하면 창세기의 안식일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안식에 관한 최고의 명저 ‘안식’의 저자인 아브라함 헤셸에 의하면, 안식일은 수고를 접고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쉬는 중간다리가 아니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날도 아니다. 안락함과 휴식만을 받아들이는 날도 아니다. 안식일은 시간이라는 영적 실재와 만나는 날이고 자신의 시간을 영으로 채우는 날이며 몸과 마음이 진정한 쉼, 평안을 얻는 메누하를 누리는 날이다.
우리는 예외 없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주중 엿새 동안은 사고팔기라는 것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있다. 주일에는 육체적으로 활동을 잠시 멈춘 것일 뿐 마음과 정신은 쉬지 않는다. 내가 얻어내야 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걱정한다. 우리의 온 신경과 마음의 밑바닥에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영혼의 풍요, 즉 진정한 메누하를 누린다는 것은 첫째,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시간을 영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누구에게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이다. 다른 하나는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 나에게만 있는 주관적인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이다. 우리가 하루 중 아침이나 저녁 시간, 또는 일과 중 잠시라도 조용한 시간(quiet time)을 내어 하나님의 임재와 영혼의 풍요를 채우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게 카이로스이다. 우리가 카이로스 의미를 제대로 새긴다면 크로노스라는 일상(日常) 속에서도 얼마든지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안식일은 진정한 메누하를 누리면서 카이로스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날이다. 아브라함 헤셸은 메누하를 누리기 위해 안식일에는 땅에서 씨름하던 것들, 물질을 얻는 노력들을 그치라고 한다. 물질적인 소유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영혼의 씨앗을 보살펴 자신의 시간을 영으로 채우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라고 한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한다면 그것이 메누하이다. 주중에는 매일 저녁 잠자리 들기 전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묵상을 하는 중에 카이로스를 경험할 수 있다.
둘째, 영혼의 풍요는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안식은 '나의 힘으로 얻어내야 한다'는 것을 내려놓을 때 얻어진다. 이 점에서 안식은 소유하고 쟁취하는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식과는 다르다. 휴식은 나를 잠시 쉬게 하여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재충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진정한 쉼도 없고 자유를 얻을 수도 없다. 안식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처럼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안식일 동안 모든 노력과 수고, 내일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것을 배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진정 하나님이 되심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오는 진정한 쉼, 여유와 자유를 얻는다. 이에 대해서는 마틴 루터가 정확하게 언급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에서 특별히 의도하신 영적인 쉼은 노동과 거래를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며, 우리의 모든 능력을 다해 우리 자신의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의 언급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는 그냥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이 앞장서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유함을 누린다면 진정한 안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계속)
류지성 박사(삼성경제연구소)
함께 볼만한 기사